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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투명성·글로벌·여성인재 3개 카드로 ‘신 롯데’ 일군다

일러스트 박용석 parkys@joongang.co.kr



터질 것이 터졌다고 한다.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라고도 한다. 재계 5위 롯데그룹 얘기다. 롯데는 지난해 7월을 기점으로 한·일 재계를 뒤흔든 ‘형제의 난’을 겪는 과정에서 60여 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그룹의 실체가 드러났다. 신동빈(61) 롯데 회장은 잇단 주주총회 승리로 분쟁의 마무리까지 9부 능선을 넘었다. 그에게 남은 과제는 그룹의 실적·개혁 양면에 드라이브를 걸어 ‘차세대 롯데’를 안정 궤도에 올리는 일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이번 분쟁은 한국롯데를 이끄는 신동빈 회장이 한·일 롯데의 통합경영을 시도하며 겪는 ‘통합통(痛)’이다.



경영권 분쟁 9부 능선 넘어선 롯데 회장

 



잠시 2015년 7월 28일 화요일로 돌아가 보자. 이날은 롯데 경영권 사태의 분수령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동빈 회장은 일본 신주쿠에 위치한 롯데홀딩스 본사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고 아버지 신격호(95) 총괄회장을 대표이사에서 전격 해임했다. 표면적으론 전날 형 신동주(62)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과 일본으로 날아와 자신을 해임한 것에 대한 반격이었다. 그러나 진짜 의미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구시대 경영’에 공식적으로 종지부를 찍었다는 데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실적 부진과 투자 손실 등의 이유로 지난해 1월까지 한·일 롯데의 모든 이사직에서 해임되며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그는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반년에 걸쳐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했고 결국 ‘신동빈이 나를 모함했고, 아버지 대신 롯데를 경영하려 한다’고 설득해 신동빈 회장의 해임 결정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신동빈 회장은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 아버지를 일본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게 하며 스스로 ‘포스트 신격호’ 시대를 열었다.   아버지 카리스마 물려받아 공격적 확장 신 총괄회장은 두 아들에게 신(神)적인 존재였다. 대기업을 일군 강력한 카리스마의 기업인이자 유난히 엄한 전형적인 가부장적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롯데 내부의 증언에 따르면 자식들은 중년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신 총괄회장 앞에서 90도로 허리를 굽혔다고 한다. 1949년 신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처음 사업을 일으킨 이래 롯데그룹은 사실상 1인 지배체제를 유지해 왔다. 한국에도 67년 롯데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매출 81조원에 직원 수만 18만 명(해외 6만 명)에 이르는 거대 기업을 일궜지만 대부분 비상장이었고 지배구조나 의사결정 체계도 공개되지 않았다.



신 총괄회장은 자식들을 무척이나 엄하게 키웠다. 가난에 지쳐 건너간 일본에서 온갖 역경을 이겨 내고 맨손으로 회사를 세운 그는 후계자 훈련에도 철저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90년 일본롯데 이사를 맡으며 경영 수업을 시작했고, 신동빈 회장도 같은 해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이사로 입사해 경영의 첫발을 내디뎠다. 결국 90년대 초부터 ‘일본=신동주, 한국=신동빈’으로 경영이 확실히 나뉘었고, 신 총괄회장의 허락 없이는 상호 침범이나 간섭은 불가능한 구조가 이어져 왔다. 롯데 관계자는 “하는 것을 봐서 더 나은 사람에게 그룹을 맡기겠다는 총괄회장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형제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신동빈 회장은 승부사 기질이 다분했다. 그 결과 신 전 부회장이 일본롯데를 설립 초기 제과기업의 모습에 충실하게 이끌어 온 반면 신 회장은 한국롯데를 유통·석유화학·건설·관광·금융·정보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86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키웠다. ‘도전하면 안 될 게 없다’는 사업적 카리스마 측면에선 신 회장이 아버지를 더 닮았다고도 할 수 있다. 신 회장이 예순의 나이에 아버지의 허락 없이 한·일 롯데의 ‘원톱’을 선언한 것도 ‘저대로 두면 일본롯데는 제과회사로 그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신 회장은 국내 재계 총수 중에서도 숫자에 밝은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실제 신 회장은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왜 저에게 우리나라 경제 전망을 물어보지 않느냐”며 국내외 경기 전망과 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기도 했다.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81년부터 7년간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서 일했다. 신 회장은 이 시기를 “선진 기업의 재무 관리와 국제금융 시스템을 피부로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표현한다. 기업 경영에서도 컴플라이언스(규정 준수)를 중요시한다.



신 회장이 이번 경영권 분쟁을 법적 정당성 확보와 지배구조 투명화로 타개해 나간 것도 이런 경험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신 회장은 한·일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이사회 의결과 주주총회 표 대결을 통해 자신의 법적 입지를 공고히 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아버지의 지지가 담긴 위임장과 지시서를 공개하며 후계자임을 주장하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신 회장은 이달 6일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다시 한 번 신 전 부회장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후 롯데에선 “신동빈 회장에 대한 주주들의 지지를 재확인했으며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신 회장이 한국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신 총괄회장과 가장 부딪힌 부분은 바로 기업 투명성이다. 그는 비상장을 고집했던 아버지를 설득해 2006년 롯데쇼핑을 시작으로 주요 계열사 8곳을 상장시켰다. 경영권 분쟁 중이던 지난해 8월 그는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순환출자 구조 해소와 지주회사 체제 도입 등을 약속했다. 올 들어 한국롯데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의 상장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 롯데홀딩스의 상장 의지를 밝혔다.



호텔롯데 상장 통해 지배구조 개선 경영 투명성 확보와 함께 신 회장이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가 기업문화 개선이다.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은 “여성 고객이 많은 유통·식품사업의 특성상 여성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특히 여성 리더들이 경영진의 30%는 돼야 한다는 것이 신동빈 회장의 경영관”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지난해 9월 기업문화개선위원회를 만들고 ▶출산·육아·자녀돌봄휴직제도 확대 ▶퇴근시간 이후 PC-OFF 제도 도입 ▶장애인 채용 확대 등을 단기 추진과제로 정했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들면 20~30대 여성들이 출산·육아 부담 때문에 직장을 떠나는 일을 막을 수 있고, 자연스럽게 여성 중간관리자·임원·최고경영자(CEO) 배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롯데그룹의 지난해 하반기 공채에서 여성 비중은 38%였고, 올해는 40%를 넘을 전망이다.



경영권 분쟁 와중에 공격적인 경영 기조를 유지하는 것도 눈에 띈다. 하이마트·타이탄케미컬(말레이시아)·두산주류 등 롯데의 각종 인수합병(M&A)은 모두 신 회장이 주도한 것이다. 그는 롯데를 내수 유통기업이 아닌 미래 성장동력 후보를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에도 KT렌탈과 뉴욕팰리스호텔, 삼성의 화학계열사 인수까지 굵직한 M&A를 성사시켰다. 특히 3조원을 들인 국내 화학업계 최대 규모의 빅딜을 통해 롯데는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분야에서 수직계열화 구조를 확립하게 됐다.



M&A와 함께 ‘글로벌 확장’도 전기를 맞았다. 분야와 지역을 모두 확대하고 있다. 신 회장은 37년간의 경제제재 조치가 풀린 이란에서 호텔·유통·제과사업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또한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동남아시아 온라인 유통시장 진출을 위해 올 들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기업과 손잡고 관련 사업 진출을 추진 중이다. 베트남의 유명 마트 체인 ‘빅시(Big C)’ 인수도 추진하고 있다. 롯데마트 베트남 법인은 10일 실시된 빅시 예비입찰에 참여했다. 최대 8억 달러(약 95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이번 입찰에는 태국의 TCC홀딩과 센트럴그룹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빅시는 프랑스 소매업체 카지노그룹의 자회사로, 베트남 2위의 마트 체인이다. 풍부한 자원과 젊은 인구를 바탕으로 높은 성장잠재력을 지닌 중동과 동남아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은 것이다.



최근엔 식량 안보와 직결되는 해외 영농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롯데는 러시아 연해주와 흑해 연안을 중심으로 농장·창고·물류망 등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 있는 롯데제과 공장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롯데 관계자는 “신 회장이 ‘러시아의 최근 경기침체가 오히려 투자에는 적기가 될 수 있다’며 승부수를 던졌다”고 전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내년 주총에서 다시 해임안을 꺼내 들겠다고 밝히는 등 8개월에 걸친 롯데 경영권 분쟁사태는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다. 롯데를 바라보는 국민의 따가운 눈총도 여전하다. 그러나 적어도 신동빈 회장이 ‘롯데가 살려면 달라져야 한다’고 인식했고, 실천에 나섰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내년 한국롯데 설립 50주년에 ‘신동빈호 롯데’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경영 투명성과 기업문화 개선이라는 약속을 얼마나 이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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