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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이라며 연봉 깎더니 외국서 뛰었다고 신인상 안 줘 박인비

전태풍은 시간 나는 대로 다문화가정이나 보육원 아이들을 찾아 농구를 가르쳐주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KCC 체육관 앞에서 리바운드 시범을 보여주는 전태풍. 용인=김춘식 기자



49 대 48. 한 표 차.



[2016 스포츠 오디세이-4-] 혼혈 선수로 산다는 것

지난달 22일 열린 프로농구 2015-16 시즌 정규리그 시상식. 농구 기자단 투표로 뽑힌 MVP는 울산 모비스의 가드 양동근(35) 선수였다. 전주 KCC의 귀화혼혈 선수 전태풍(36)은 양동근보다 딱 1표 적었다. 통산 네 번째 MVP에 오른 양동근은 베스트 5, 수비 5걸에도 뽑혔다. 반면 KCC의 창단후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전태풍은 어떤 상도 받지 못했다. MVP는 우승팀에서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양동근이 각종 기록에서 전태풍을 근소하게 앞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실력에 비해 유독 상복이 없었던 전태풍이었기에 주위의 안타까움은 컸다.



전태풍에게 MVP를 밀어주려 했던 추승균 KCC 감독은 “태풍이는 성격이 강해 상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팀의 MVP는 누가 뭐래도 전태풍이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는 정말 상에 연연하지 않았을까. 지난달 26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KCC 체육관에서 전태풍을 만났다.



 



“백인 혼혈은 멋지고, 흑인은 무식하다고?”“멍 때렸어요.” 1표 차로 MVP를 놓쳤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느낌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1표 차 탈락에 멍해졌다는 얘기다.



“왜 내가 못 받았을까. (혼혈인에 대한) 차별 때문에 그런 거 아닌가 생각도 했어요. 작년, 2년 전, 3년 전 모두 우승팀 선수가 받았는데. 그날 기분이 안 좋았어요. 깊게 생각 안 하고 좋은 생각만 하기로 했어요. 포기 완전 했어요.”



전태풍에게는 미나 터너라는 지혜로운 아내가 있다. 둘 다 하프 코리언이고 LA의 같은 동네에서 자랐다. “오빠, 작년 이 시간 생각해 봐. 아무 것도 못했잖아. 지금은 정규리그 1등 했고 챔프전 우승하면 MVP 받을 기회 있어.” 아내의 말에 전태풍은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전태풍은 2014~15 시즌 부산 kt에 있었다. kt는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다. 그 전 소속팀 고양 오리온에서도 전태풍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KCC를 떠나 있던 세 시즌, 전태풍은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듯 했다.



2009년 한국농구연맹(KBL)은 프로농구의 수준 향상을 위해 귀화혼혈 선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전태풍은 KCC에 입단해 현란한 드리블과 능란한 패스로 전주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떠듬떠듬 이어지는 한국어 인터뷰도 인기 폭발이었다. 전태풍은 팀 동료 하승진(31·2m21cm)을 ‘큰 사람’이라고 불렀다. 태풍과 큰 사람은 2010~11 시즌 챔피언 트로피에 입맞추었다. 그러나 2011~12 시즌을 마친 뒤 전태풍은 눈물을 흘리며 KCC를 떠나야 했다. ‘귀화혼혈 선수는 한 팀에서 연속 3시즌까지만 뛸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2014~15 시즌을 마치고 FA(자유계약선수)가 된 전태풍의 목적지는 당연히 친정 KCC였다. 계약 발표 일주일 전에 하승진이 전화를 해 “형, 걱정 안 해도 되지? 여기 무조건 계약하는 거지?”라며 조바심을 냈다고 한다. 둘의 우정은 전태풍이 처음 KCC에 왔을 때부터 싹텄다. “한국 들어올 때 조금 긴장하고 무서웠어요. 근데 승진이가 영어로 ‘형은 우리 형이야. 같은 팀이야. 걱정하지 마’라며 안아줬어요. 요즘도 자꾸 내 별명을 지어줘요. 헤어 스타일 바꾼 뒤에는 박나래(개그우먼)라고 불러요. 헤헤헤.”



전태풍은 KCC를 한 마디로 ‘정이 많은 팀’이라고 했다. 허재 감독이 이끌던 당시를 얘기할 때 그의 표정은 소년처럼 천진했다. “허재 감독님 있을 때 좀 타이트 했어요. 레이저 쏘고, 욕도 많이 하고, 소리 많이 지르고, 어후∼” 한 시즌에 레이저 몇 개 맞았냐고 물었더니 “한 60개, 70개? 게임 때만 그 정도고, 연습 때 합치면 100개 넘어요. 선수가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이 레벨밖에 못하나, 정신 차려라 그런 뜻 같아요.”



다시 ‘차별’ 얘기로 돌아가자 전태풍의 표정이 흐려졌다. “귀화혼혈 선수는 3년 지나고 다른 팀 가야 한다는 걸 알고는 많이 힘들었어요. 또 처음 들어올 때 ‘너희는 신인이니까 (연봉) 이 정도만 받아야 돼’라고 했어요. 그런데 시즌 끝나고는 ‘야, 너희는 (다른 나라에서 뛰었으니까) 신인 아니야. 신인상 절대 못 받아’ 했어요. 3년 지나고도 가고 싶은 팀 못 가고, 드래프트로 뽑히는 팀으로 무조건 가야 하고…. 나쁜 생각 안 하고 기쁘게 살고 싶은데 이런 일 뻥 터지면 멘붕이 옵니다.”



국내 프로농구에서 뛰는 선수 중 문태종(오리온)-태영(삼성) 형제, 박승리(SK) 등이 흑인 혼혈, 이승준-동준 형제, 김민수(이상 SK)가 백인 혼혈이다. 한국 사람들은 같은 혼혈이라도 백인과 흑인을 달리 보는 것 같다고 전태풍은 말했다. “백인과 한국인이 섞이면 더 잘 생기고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다니엘 헤니 같은 연예인처럼요. 그런데 흑인 혼혈에 대해서는 힘은 좋아, 화 잘 내, 대학 갔어? 공부는 했어? 이렇게 나쁜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내가 승준이 동준이보다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전태풍은 미국 명문대인 조지아텍을 졸업했다.



 



다문화 아이들 더 힘들게 하는 SNS혼혈 선수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 흑인 혼혈 축구선수 강수일(29)이다. 그는 지난해 6월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서 쫓겨났다.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이 검출됐기 때문이었다. 슈틸리케로부터 “내일 출전 준비하라”는 언질을 받고 꿈에 그리던 A매치 데뷔전을 기다리던 때였다. 강수일은 “멋있게 보이려고 발모제를 발랐는데 거기서 금지약물 성분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출전정지 징계 기간에 음주운전 사고를 냈고, 소속팀인 제주 유나이티드로부터 임의탈퇴(소속팀 허락이 없으면 다른 팀에서도 뛸 수 없음) 처분을 받았다.



강수일은 기약없는 복귀를 기다리며 인천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묵묵히 몸을 만들고 있다. 전태풍을 만난 직후 인천으로 차를 돌렸다. 강수일은 자신이 노출되는 걸 무척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떻게 지냈나.“지난해 10월 발목 수술을 하고, 지인의 도움으로 재활에 몰두하고 있다. 축구선수로서 정점에 있다가 끝없는 추락을 경험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느낌, 내가 지금 뭐 하나 싶은 생각에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눈물을 줄줄 흘렸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가리고 다녔다. 지금은 좀 괜찮다.”



-왜 발모제를 발랐나.“내가 몸에 털이 별로 없다. 좀 튀고 싶었고, 나중에 모델 같은 것도 하고 싶었다. 축구 좀 한다 싶으니까 해이해진 면도 있었다. 눈썹과 코밑, 그리고 입술 밑에 조금, 하루에 두 번씩 발랐다. 그게 문제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징계 기간에 음주 사고를 냈는데.“도핑이 적발된 뒤 프로축구연맹에서 15경기 출전정지 처분을 내렸다. 힘들었지만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구단 자체 징계-축구협회 징계를 거치면서 출장정지 기간이 점점 길어졌다. 열 받고 낙담한 상태에서 친구들과 술을 먹었다.”



-차별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거 아닌가.“옛날에는 누가 내 눈을 쳐다보기만 해도 주먹을 날렸다. 그렇지만 그라운드에서 폭발한 적은 없다. 학교 시절은 물론 프로에 와서도 ‘저 깜둥이XX 잡아’ 라는 말을 들었다. 내 안에 차별받고 무시당한 것에 대한 분노가 잠재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어떤 계기를 통해 폭발하면 제어가 잘 안 된다.”



강수일은 “이번 일은 무조건 내 잘못이다. 나를 믿어준 팬들과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은 그라운드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 뿐”이라며 재기를 다짐했다. 그러면서 현실에 대해 한 마디를 던졌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다지만 더 자극적이고 잔인해진 부분도 있다. SNS를 통해 생각 없이 던지는 한 마디가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한국말 안 배우는 혼혈 선수 아쉬워”김동광(63) MBC 농구해설위원은 혼혈 스포츠 스타 1세대다. 그는 이국적인 외모와 뛰어난 농구 실력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국가대표로 오래 뛰었고, 프로 팀과 대표팀 감독도 역임했다.



그는 전태풍이 MVP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KCC가 우승했지만 모비스도 똑같은 성적을 냈고 상대 전적에서 밀렸을 뿐이다. 팀 공헌도 면에서 전태풍보다 양동근이 조금 더 나았다고 본다.” 김 위원은 귀화혼혈 선수가 받는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그 동안 이들이 손해를 많이 봤다. 이제는 제도를 고칠 때가 됐다.”



혼혈 선수들이 겪는 불평등 자체가 이들이 타고난 신체적 우위와 운동수행 능력을 갖고 있다는 반증 아니냐는 의견도 많다. 전태풍과 강수일도 이에 동의했다. 김 위원은 “태생적으로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선수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난 은퇴하기 직전까지 매일 슈팅 연습을 하고 아스팔트에서 드리블 연습도 했다”고 말했다. 일부 혼혈 선수들이 한국말을 배우려 하지 않는 건 아쉽다는 견해도 전했다.



다문화 세상이다. 다양한 피부색과 성장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섞여 살아야 한다. 스포츠는 이런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전태풍은 이렇게 말했다.



“한 20년쯤 지나면,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대한민국이 좀 좋아질 거 같아요. 그때까지는 꾹 참고 견디면서 살 겁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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