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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흰자위 드러난 인류 ‘눈으로 말해요’ 가능하죠

다양한 모양을 가진 동물의 눈. 사람을 제외한 그 어떤 동물도 흰자위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흰자위는 사람이 소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덕분에 인류는 서로 협력하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에 각막이식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출연했다. 프로그램 끝무렵에 진행자가 “처음 눈을 뜨고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뭐예요?”라고 묻자 출연자는 “자동차 색깔이 정말로 다양해서 깜짝 놀랐어요. 저는 모두 같은 색깔일 줄 알았거든요. 빨간 자동차는 정말 예뻐요”라고 대답했다.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동물의 눈

이때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는 내가 볼 수 있는 다양한 색깔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며, 둘째는 선천적인 맹인도 색깔 개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부분을 한동안 의심했지만 맹인도 일상 생활에서 색에 대한 단어를 사용하면서 감정을 표현한다고 장애인학교 교사 친구가 확인해 줬다. 맹인들이 비록 흰색·파란색·빨간색을 볼 수는 없지만 흰색은 깨끗하고, 하늘 색깔인 파란색은 차갑다는 느낌을 알며, ‘새빨간 거짓말’ 같은 비유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맹인도 색깔의 개념이 있을 정도면 인간의 삶에서 색깔은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우리가 색깔을 인식할 수 있게 됐을까. 다른 영장류와 포유류, 그리고 다른 척추동물과 곤충도 색깔을 구분할 수 있을까.



 

잠자리의 눈. 작은 눈인 낱눈이 모여 겹눈을 이룬다.



생명체에게 눈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같지만, 생명 역사 38억 년 가운데 눈이 있는 생명이 등장한 것은 불과 5억4100만 년 전이다. 최초의 눈은 바다에 녹아 있던 칼슘이 이산화탄소와 결합해 생긴 방해석으로 만들어졌다. 방해석으로 된 눈으로도 온갖 색깔의 빛이 들어갔겠지만 당시 바다 생물이 그 빛을 해석할 수 있었을는 지는 알 수 없다. 눈이 등장하자 생명들은 삶의 태도를 바꿔야 했다. 눈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주변 환경을 탐색하는 데 결정적인 도구가 됐다. 이제는 무엇을 쫓아가서 잡아야 하며, 누구로부터 도망가야 할지를 알게 됐고, 위장술과 헤엄치는 법을 익히고 개발해야 했다. 뛰어난 시력은 먹잇감을 찾는 데뿐만 아니라 짝을 찾는 데도 반드시 필요하므로 시각은 종의 생존에 결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곤충에게는 여러 개의 작은 눈으로 된 겹눈이 있다. 작은 눈을 낱눈이라고 한다. 곤충의 시력은 종마다 큰 차이가 있다. 낱눈이 보는 장면이 모자이크처럼 모여서 하나의 상을 만들어주므로 낱눈이 많으면 많을수록 곤충은 상을 더 또렷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미 낱눈은 100개도 안 되지만 파리는 3000개, 나비는 약 1만5000개를 갖고 있으며, 잠자리는 3만개가 넘는다. 곤충들은 빨간색을 잘 보지 못한다. 곤충에게 빨간 자동차란 없다. 대신 우리가 못 보는 자외선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꽃 색깔과 곤충이 보는 꽃 색깔은 다르다. 갑각류와 연체동물도 겹눈을 갖고있다.



 



빨간색을 감지하지 못하는 물고기스킨스쿠버 다이버들은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한다. 우리의 눈은 공기층을 통해서만 제대로 선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과 공기 속에서는 빛의 굴절률이 다르다. 따라서 마스크의 유리를 통해 빛이 통과할 때 빛이 굴절해 수중에서의 물체는 실제 위치보다 25% 가까이 그리고 33% 더 크게 보인다. 그래서 갓 입문한 다이버들은 충분히 닿을 것 같은 곳에 손을 뻗지만 실제로는 닿지 않는 경험을 한다.



그렇다면 물고기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물고기는 먹이를 비롯한 물체들이 원래 위치에 원래의 크기대로 보인다. 물고기 눈의 렌즈에 담긴 액체가 물의 농도와 같아서 굴절이 일어나지 않고 직선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고기를 비롯한 수중 동물들은 대개 근시안이다. 물고기의 시야는 약 30㎝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다이버들은 바다에서 상어를 만나면 도망가는 대신 다른 물체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방식을 택한다.) 수중에서 빛은 깊어질수록 거의 흡수돼 약해지므로 홍채로 빛의 양을 조절할 필요가 없다. 또 빛도 적고 항상 젖어 있으므로 눈을 깜빡일 필요도 없으니 눈꺼풀도 없는 게 당연하다. 육상동물보다 단순한 눈 구조는 물고기 시야를 지독한 근시로 만들었다.



물은 투명하다. 그런데 깊은 물은 보통 녹색을 띤 청색이다. 왜 그럴까. 빛은 빨주노초파남보의 색깔이 모여서 투명한 색이 된다. 빛은 물 분자와 부딪치면서 파장이 긴 빛부터 사라지므로 빨간색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색깔을 얻기 위해 수중카메라에는 빨간색 필터를 끼운다.) 그리고 100m만 들어가도 다른 색깔은 거의 사라지고 파란색만 남는다.



물고기는 빨간 색을 볼까. 간단한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다. 어항을 캄캄하게 만든 후 프리즘을 통해 빛을 쪼이면 물고기는 초록색과 노란색인 곳에 모인다. 그런데 어항에 빨간색 광선만 비추면 물고기들은 그냥 캄캄한 물속처럼 행동한다. 물고기는 빨간색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물속에서는 빨간빛이 사라지므로 빨간색을 볼 기회가 없는 물고기가 빨간색을 볼 장치를 가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 스페인의 상징은 투우였다. 칼로 소를 찔러 죽이는 장면은 잔인했지만 빨간 망토를 흔들어 소를 흥분시키는 장면은 정말 멋졌다. 그런데 투우사가 빨간 망토를 흔든 이유는 소가 아니라 관중을 흥분시키기 위해서였다. 소는 색맹이다. 모든 게 흑백으로 보인다. 따라서 붉은 천보다는 오히려 흰 천이 더 잘 보인다.



소만 색맹인 것은 아니다. 포유류 대부분은 색맹이다. 말·토끼·생쥐·다람쥐·개 모두 색맹이다. 색맹일 뿐만 아니라 시력이 아주 나빠 바로 앞의 세상도 흐리게 보인다. 개가 사냥을 잘하는 것은 시각이 아니라 후각과 청각 덕분이다. 고양이의 눈매는 날카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 시력의 5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생쥐가 고양이에게 꼼짝하지 못하는 이유는 고양이가 시력은 나빠도 눈앞의 움직임에 아주 민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쥐들은 코앞에 있는 물체밖에 못 본다.



원래 흑백이었던 포유류의 시각은 1차로 파란색(B)과 노란색을 구분하는 2색형 색각으로 발전했고, 그 후에 영장류에 와서야 노란색을 감지하는 시세포가 빨간색(R)과 초록색(G)에 민감한 시(視)세포로 분화해서 RGB라는 3색형 색각으로 한번 더 발전했다. 인간과 유인원 그리고 대부분이 구대륙 원숭이들은 RGB를 구분해 감지하는 세포가 있고 이들을 혼합해서 색깔을 세밀하게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장류는 왜 색깔 구별 능력이 발달한 것일까. 지난 100년 동안 과학자들은 빨간색을 볼 수 있으면 짙은 열대 비숲(우림·雨林)에서 잘 익은 과일을 쉽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장류로 실험을 해보았더니 우거진 숲에서 익은 과일을 찾는 데는 파란색과 노란색만 구분할 수 있으면 충분했다.



빨간색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 되는 어린 이파리를 찾는 데 필요했다. 아프리카 식물의 절반은 어린 이파리가 붉은 색조를 띤다. 3300만 년 전 남극이 다른 대륙과 완전히 결별했을 무렵, 지구는 급격하게 추워졌으며 이때 아프리카에서도 숲이 급속히 줄어들었다. 삶이 팍팍해졌을 때 일부 영장류가 빨간색을 보게 됐다. 빨간색이 추가되자 영장류는 가시광선 전체를 볼 수 있게 됐으며, 이들은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결국 자연은 3색각이 있는 영장류만 선택한 것이다. 3색형 색각을 얻은 영장류의 눈 앞에는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졌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ET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 비밀은 눈의 흰자위에 있다.



눈 발달한 새는 날면서도 작은 물체 구분영장류만 빨간색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사람의 시력이 가장 뛰어난 것도 아니다. 조류의 눈은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발달했다. 눈꺼풀이 세 겹이나 되고 망막 깊숙한 곳에 특별한 광수용체가 있어 가시광선 외에 자외선도 볼 수 있으며 망막에는 빛의 반사를 줄이는 돌기가 작은 빗처럼 나 있다. 덕분에 새는 날면서도 작은 물체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아마 공룡도 색깔을 구분하는 능력이 현생 새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림으로 묘사된 외계인들에게 우리는 별로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외계인들은 우리의 친구이기는커녕 무찔러야 할 대상이든지 기껏해야 다른 짐승처럼 보일 뿐이다. 하지만 예외가 하나 있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 ET다. 배만 볼록한 몸매나 비례가 이상한 팔다리에도 불구하고 ET는 우리에게 친근한 이미지다. 왜 그럴까?



 

700만 년 전에 살았던 인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의 상상도. 어느 쪽이 더 사람과 가까운가?



700만 년 전에 살았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의 상상도 두 개(A와 B·아래 그림)가 있다. 사헬란트로푸스 A와 B 가운데 누가 더 사람 같냐고 묻는다면, 대개는 B를 고를 것이다. 왜 그럴까.



 



그 비밀은 눈의 흰자위에 있다. 흰자위가 외부로 드러난 동물은 사람뿐이다. 흰자위 덕분에 우리는 다른 사람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으며 눈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기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감춰야 하는 경호원들은 선글라스를 낀다. 흰자위는 공동체를 이루고 고도의 협력을 해야 하는 인류에게 결정적인 장치다. 흰자위가 드러나지 않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신뢰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무리일수록 자연에서 선택될 가능성이 컸다.



빨간색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동물에게 있어서 엄청난 행운이다. 하지만 인간이 지금과 같은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까닭은 드러난 흰자위 때문이었다.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자연을 보는 능력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보이는 능력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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