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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운동화를 닮은 하이든의 피아노 음악

알펜하임의 하이든 피아노 협주곡 음반.



그리스 사모스 섬에는 고대 철학자 피타고라스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있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기리기 위해 모양도 삼각형이다. 피타고라스학파에게 세상은 조화로움 그 자체여야만 했다. 음악의 경우, 현의 길이 변화를 통해 찾아낸 순정율도 이들의 업적이다.



[WITH 樂] 피아니스트 일제 폰 알펜하임

하지만 제자 히파수스가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그것도 스승이 밝혀낸 삼각형의 원리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는 한 변의 길이가 각각 1인 직각삼각형의 대각선 길이를 누설했다. 정답은 제곱하여 2가 되는 수, 루트2다. 1.414…. 나눌 수 없는 무리수다. 이로서 1과 2사이에는 정의할 수 없이 무한히 많은 숫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딱 맞아떨어지는 세상을 그렸던 피타고라스학파는 히파수스를 살려 둘 수 없었다. 그는 청동빛 그리스 바다에 던져진다.



피아니스트의 역사에도 1이나 2처럼 부동의 좌표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다. 알프레드 코르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등등. 하지만 거장의 명성도 팬들의 열광도 없이 좌표계 어딘가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피아니스트들이 있기 마련이다. 일제 폰 알펜하임(89)이 그렇다. 뒤늦게 발견한 나의 ‘루트2’ 피아니스트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주로 교육자로 활동하다가 세계 무대에서 드러난 것은 1970년대다. 음반으로 남아 있는 그녀의 레퍼토리는 넓지 않다. 하이든과 멘델스존 정도가 고작이다. 소박한 이력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남편이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던 안탈 도라티라는 것이다. 1950년대 후반에 둘은 처음 만났다. 하지만 각자의 결혼생활에 충실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알펜하임이 바깥 세상에 알려진 것은 남편 도라티의 노력 덕분이다.



무명의 알펜하임의 연주 중에서 그나마 알려진 것이 멘델스존 음반이다. 하나는 염가반으로 나온 ‘무언가’ 전곡 연주이고 또 다른 하나는 SACD로도 만들어진 멘델스존 피아노 소나타 작품 16을 중심으로 한 피아노곡집이다. 혹자는 그녀의 ‘무언가’를 이 곡의 전설적 명반인 발터 기제킹의 연주에 빗대기도 한다. 또는 현역 최고의 감성연주자 안드라스 쉬프의 것과도 비교한다. 나 역시 어느 정도 공감한다. 실제 알펜하임이 한참 후배 뻘인 쉬프를 높게 평가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연주스타일이 가진 공통점을 추측할 수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세련된 연주. 날렵하지만 가볍지 않은 연주. 알펜하임의 멘델스존 연주에도 봄날의 연둣빛 서정이 흐른다.



알펜하임의 다른 음반들 중에 주목해야 하는 것으로는 남편과 협연한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이 있다.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 역시 바흐의 기하학적인 건반과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피아노 사이에서 소외받았다. 그가 건반악기의 중심이 하프시코드에서 피아노로 넘어가는 18세기 중엽의 사람이어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측면도 있었다. 또한 가난한 집안 출신인 하이든은 음악광인 아버지를 둔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건반 악기의 신동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후배들에 비해 탁월한 건반 악기 음악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나마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하지만 협주곡 전곡 녹음은 드물다. 이름 높은 연주자들이 도전할 만한 수준의 곡은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에는 모차르트의 질주하는 슬픔도, 낭만파 협주곡의 과잉된 삶의 굴곡도 없다. 모든 곡이 장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성도 단출하고, 멜로디의 극적인 긴장도 떨어진다. 그러나 20분 미만의 곡들에는 밝고 건강한 하이든의 정서가 오롯이 기록되어 있다.



알펜하임의 피아노는 여기서 마치 새봄의 나물들처럼, 등교하는 1학년 어린이들의 발걸음처럼 싱싱하다. 연주는 정겹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독특한 색깔 같은 것은 없다. 하이든 연주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빨아놓은 흰색 운동화 같은 색깔이 아닐까. 그녀의 하이든은 밖으로 드러나는 빛을 안으로 끌어안고 있는 연주다.



이 음반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협연자와 오케스트라의 호흡이다. 근래 들어 본 협연 중 가장 사랑스럽다. 늙은 부부 음악가의 대화가 도란도란 정겹다. 오케스트라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을 내비치지 않는다. 나이 차가 많은 아내를 배려하는 느긋한 시선 속에 오케스트라가 위치해 있다. 알펜하임의 연주가 향긋한 프리지아 같다면 도라티는 하얀 안개꽃인 셈이다. 이 음반은 LP외에 로컬버전 CD로만 발매된 적이 있다. 전곡 중 일부가 모음집 형태로 음원 스트림 서비스되고 있다. 조금 더 알려져도 괜찮은 음반이다.



어느덧 봄이다. 하이든의 피아노곡들처럼 밝은 날들이 많은 봄이었으면 좋겠다.



 



 



글 엄상준 KNN 방송 PD 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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