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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마을 발전 사업

달봉마을에 공무원들이 자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군수가 달봉마을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프로젝트를 계획해서 예산을 올리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달봉마을은 군수의 고향 마을과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으며 삼십여 가호가 모여 사는 평범한 농촌마을이었다.



달봉마을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군수의 친구인 대통령(그때는 당선자 신분이었다)이 지나가는 길에 마을 이름을 묻고는 “저 산에서 올해 정월 대보름에 달맞이를 하면서 불놀이나 하면 딱 좋겠소” 하고 언급한 한 뒤에 군수와 기념사진을 찍은 뒤부터였다. 군수를 수행한 문화관광체육과장은 ‘달봉마을’의 이름이 원래 ‘달을 맞는<逢>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성석제 '소설'

군수는 그때 달봉마을에서 대통령 당선자와 같이 찍은 사진 하나만으로 다음에 치러진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경쟁 후보에 비하면 유세도 거의 하지 않았고 초선 군수 시절 군민들의 살림살이를 팍팍하게 만들었다는 비난에는 일체 상대하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많이 내건 현수막에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잘 보이도록 배치했고 기호와 이름을 표시한 게 다였다. 현수막에만 집중했으므로 다른 후보에 비해 절반 정도의 비용만 들어갔다. 어쨌든 군수는 가볍게 재선에 성공한 뒤 달봉마을의 공덕에 보답이라도 하듯 공무원들을 마을로 보낸 것이었다.



달봉마을은 어머니처럼 부드러운 산세로 푸근하게 마을을 감싸안는 달봉을 배후에 두고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달봉은 실상 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다락’처럼 높이 솟은 언덕 형상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지역의 지명연구가도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 걸 몰라도 수천 년 대대손손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리서치’와 ‘스터디’를 거듭한 공무원들이 내놓은 ‘마을 발전 방안’은 서너 가지로 압축되었다. 최종적으로 공청회를 거쳐 군의회에서 확정한 방안은 달봉마을을 ‘발전의 상징’으로 만드는, 정확하게는 달봉마을에서 전력을 발전해 내는 풍력발전기를 설치한다는 계획이었다. 사시사철 바람이 부는-평균 풍력이 초속 5미터 이상인-달봉마을의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풍력발전기를 세움으로써 전력도 생산하고 거대한 풍차 같은 볼거리도 제공하면 관광객들이 몰려와서 달봉마을이 진정 발전하지 않겠느냐는 청사진이 제시되었다.



달봉마을에 풍력발전기를 건설하는 일은 대통령과 군수의 친분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채 중앙정부의 ‘환경친화 지속가능 상생발전모델 시범사업’으로 선정되어 예산지원을 받게 되었다. 사기가 한껏 고무된 군수는 최첨단 풍력발전 기술을 가진 유럽의 대기업에 풍력발전기 건설을 맡기려 했다. 몇주일 동안 군내 고등학교의 외국어 교사들에게 부탁해 만들어 e-메일로 보낸 공사의뢰 제안서는 몇시간 만에 ‘공사 불가’라는 답변으로 되돌아왔다. 풍력발전기 한 기 건설하자고 유럽에서 한국의 농촌마을까지 기술자와 장비·자재를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건설단가 역시 턱없이 높아 예산을 훨씬 넘어섰다. 군수와 보건산업자치과장이 마주 앉았다.



“대한민국에는 풍력발전기 제대로 만들고 건설할 회사가 없나? 올림픽도 성공리에 치른 나라인데?”



“십 몇년 후에는 몰라도 지금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과장의 예언은 맞았다. 어쨌든 십여 년 전 그 당시에 바람 잦은 농촌마을에 풍력발전기를 건설하려면 지자체에서 많은 것을 알아서 해야 했다. 공무원들은 몇 달간 업무를 도외시한 채 전국 방방곡곡의 풍력발전 관련 시설을 돌아다녔고 마침내 달봉마을에 풍력발전기를 건설해줄 회사를 찾아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여서 머뭇거리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재빨리 예산을 송금했고 무수한 시행착오와 3년에 걸친 공기 끝에 풍력발전기가 달봉마을에 설치되었다.



기둥 높이 45m, 날개 길이 23.5m, 날개 끝이 하늘로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는 높이가 70여 m에 달하는 거대한 풍력발전기는 6백㎾의 발전능력으로 달봉마을 전체에 충분한 전기를 공급하고도 남았다. 풍력발전기가 건설되는 동안 달봉마을에는 1년 365일 안전하게 쥐불놀이를 즐길 수 있는 ‘불장난 광장’이 만들어졌고 ‘보름달극장’에서는 읍내 초등학교 학예회의 학춤 공연을 변용한 ‘물불 가리지 않는 새’ 공연도 벌어졌다. 달봉마을 특산품 매장과 식당·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한 펜션도 만들어졌다. 전에 없던 이런저런 시설이 생겨서 마을 전체에서 필요로 하는 전기가 다른 농촌마을의 두세 배는 더 들어가게 되었으므로 풍력발전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마을 주민들은 풍력발전기가 완공되면 더 이상 전기요금을 내지 않아도 될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고도 남는 전기는 다른 마을에 팔아서 주민들이 수익을 일부 나눠가질 수도 있다고 했다.



힘차게 날개가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는 달봉마을의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을 앞 4차선으로 지나가던 차들도 잠시 멈춰 서서 새롭게 ‘바람의 언덕’으로 명명된 달봉에 세워진 풍력발전기를 구경하고 기념사진을 찍어갔다. 달봉마을 안으로는 좀체 들어오지 않았다. 사진만 찍어가서 SNS에 올리는 게 고작이었다.



가동 일주일 만에 풍력발전기는 고장이 나고 말았다. 바람개비를 돌리는 외국산 부품과 다른 국산 설비가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였다. 외국산 신형 부품을 새로 들여와 교체하는 데 풍력발전기 건설에 들어간 비용의 4분의 1쯤 들어갔다. 6개월 만에 수리는 끝났고 풍차, 아니 풍력발전기는 마을 사람들이 날개소리에 밤잠을 설칠 정도로 힘차게 돌아갔다. 그런데 그게 너무 세게 돌아간 모양인지 한달 만에 발전에 필수적인 핵심부품이 고장나 버렸다. 그 덕분에 신생 풍력발전 회사는 많은 경험과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 뒤 1년 동안 두 번이나 더 고장이 났고 마침내 군 의회에서 고심에 찬 결정이 내려졌다.



오늘도 달봉마을의 풍력발전기는 윙윙거리는 날개소리와 함께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다만 그 풍력발전기는 전기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전기를 공급받아 날개만 돌리고 있을 뿐이다. 마을 사람들은 밤에는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도록 ‘그놈의 전기 먹는 하마’를 꺼놓는다고 한다.



 



※‘성석제 소설’은 성석제씨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실험적 칼럼으로 4주마다 연재됩니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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