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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 35쪽 업무보고 품격 높이려 ‘후한서’ 구절 인용…“한국 포함 7개국 전문가 13명 자문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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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이 열린 5일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주석단 제2열에 앉아 있다. 왼쪽부터 왕치산 기율위 서기(서열 6위), 위정성 정협주석(서열 4위), 시진핑 국가주석(서열 1위), 리커창 총리(서열 2위), 류윈산 위원(서열 5위), 장가오리 부총리(서열 7위). 서열 3위 장더장 전인대 위원장은 제1열에서 회의를 주재했다. [베이징 신화=뉴시스]


살을 에는 북풍의 맹위가 가시지 않은 지난 5일 새벽, 기자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집을 나섰다. 오전 6시40분쯤 천안문 앞에 도착하니 일출 시간에 맞춰 진행되는 국기게양식을 보려는 관광객들이 평소보다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인근 인민대회당 앞엔 그보다 더 긴 장사진이 100m 이상 펼쳐져 있었다. 일 년에 한 차례 열리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을 취재하려는 내외신 기자들의 행렬이었다. 제일 앞자리에 선 기자는 캄캄한 밤중에 나와 자리를 지켰다고 말했다.

중국 ‘정치의 계절’ 전국인민대표대회 뒷얘기
리커창 2시간 연설 때 43차례 박수
전인대 기간에만 정책결정 과정 공개
내외신 기자 3200여 명 취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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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대회당 앞에서의 취재 경쟁. [사진 예영준·신경진 특파원], [베이징 AP·신화=뉴시스]


7시40분쯤 인민대회당 문이 열리고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정부공작(업무)보고’ 원고 배포가 시작되자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다. 체면 차릴 것 없는 기자들은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35쪽의 원고 뭉치를 뒤적였다. 해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숨은 숫자 찾기 대회’였다. 이윽고 복도 곳곳에서 서로 다른 언어의 전화 통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류덴우다오치(六点五到七)” “six point five to seven.” 곧이어 AP·로이터·교도 등 세계 유수의 통신사들이 “올 중국 경제 성장률 목표 6.5∼7%”란 한 줄짜리 속보를 타전했다. 2016년 전인대 취재 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중국의 3월 초·중순은 ‘정치의 계절’이다. 정부나 권력기관의 활동이 언론에 투명하게 공개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중국의 정책 결정 과정은 언론의 접근권 밖에 있다. 일 년에 유일한 예외가 오는 16일까지 열리는 전인대다. 회의 장면이 언론에 공개되고 각료급 간부의 공식 기자회견만 열여섯 차례 열린다. 평소 기자라면 손사래부터 치는 간부나 유명인들도 이 기간만큼은 언론 취재를 피하지 않는다. 이는 오랫동안 형성된 관행이다.

하지만 전인대가 끝나면 모든 게 원상회복된다. 그러니 운동 선수들이 올림픽에 올인하듯 중국 언론사들은 전인대에서 총력을 다한 취재 전쟁을 벌인다. 올해 전인대에는 모두 3200여 명(외신 기자 1000여 명 포함)이 취재 신청을 했다. 전인대 대표 2943명보다 많은 숫자다. 신화통신은 소속 기자 4000여 명 중 200명을 전인대에 투입했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동방위성방송은 40여 명의 기자로 구성된 특별취재팀을 파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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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에 둘러싸인 레이쥔 샤오미 회장. [사진 예영준·신경진 특파원], [베이징 AP·신화=뉴시스]


중국 기자들은 취재 방식도 인해전술이다. 하루 종일 회의장 주변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레이쥔(雷軍) 샤오미 회장 등 전인대 대표단에 포함된 유명인이 나타나면 100m 달리기 선수처럼 뛰어가 취재원을 에워싼다. 재래식 인해전술과 함께 360도 카메라를 사용해 가상현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첨단 보도 기법도 함께 구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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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통로’에서의 즉석 회견. [사진 예영준·신경진 특파원], [베이징 AP·신화=뉴시스]


올해 전인대에선 ‘장관통로(部長通道)’란 이름의 새로운 취재 명소(名所)가 각광을 받았다. 인민대회당 북문을 통해 장관급 고위 간부들이 입장하는 전용 복도를 말한다. 기자들을 위한 마이크·조명 등 즉석 기자회견 설비를 갖추고 회의장을 오가는 장관들을 불러 세워 취재하는 것이다. 평소 위세 당당한 장관들도 전인대 기간 중에는 이 통로를 함부로 지나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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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 앉아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찾고 있는 기자들. [사진 예영준·신경진 특파원], [베이징 AP·신화=뉴시스]


전인대 2차 전체회의가 열린 9일 오후 인웨이민(尹蔚民) 인력자원부장(장관)이 이곳에 들어서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인 부장, 인터넷에 떠도는 정부의 정년 연장 계획은 사실인가요?” 답변이 나오자 100여 명의 기자가 즉시 영상과 문자로 송고를 했다. 이런 취재 관행은 2007년부터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당국의 실질적 승인 아래 활성화됐다. 이날 하루에만 회의 시작 전 7명, 회의 후 3명의 장관이 장관통로에서 간이 회견을 했다.

신경보 기자 황잉(黃穎)은 “하루에 장관 10명을 인터뷰한 셈인데 기자 생활 중 이런 날은 처음”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9일 오후까지 21명의 각료급 간부가 이곳에서 취재에 응했고 양촨탕(楊傳堂) 교통운수부장 혼자서만 세 차례 간이 회견을 했다. 전인대 취재경력이 10여 년째인 소비일보(消費日報)의 린모한(林墨涵) 기자는 “평상시엔 만날 수 없는 장관들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전인대의 스포트라이트는 총리에게 맞춰진다. 일 년 간의 국정방침을 제시하는 개막식 때의 정부공작보고 연설과 폐막 직후 열리는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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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공작보고를 낭독하는 리커창 총리. [사진 예영준·신경진 특파원], [베이징 AP·신화=뉴시스]


올해는 5년 단위의 경제계획인 13차5개년 계획이 시작되는 해여서 총리 연설에 예년보다 더욱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됐다. 리 총리는 꼬박 두 시간 동안 한자리에서 연설했다. 얼마 전 한국 국회에 등장한 필리버스터(의사 지연)가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든 장시간 연설인데도 리 총리는 꼿꼿한 자세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중반 이후엔 군데군데 목이 잠기는 게 느껴졌다.

이 연설을 위해 리 총리 산하의 국무원은 지난해 10월 박사급 연구원들로 원고 기초 소조(小組)를 구성했다. 류잉제(劉應杰) 국무원 연구실과장은 “7개국의 분야별 전문가 13명을 모시고 자문회의를 여는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며 “한국의 한 여성 전문가가 에너지 정책을 조언했는데 정책에 상당히 반영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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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으로 나가는 리커창. 시진핑 주석만 박수를 치지 않았다. [사진 예영준·신경진 특파원], [베이징 AP·신화=뉴시스]


소조 책임자인 황서우훙(黃守宏) 국무원 연구실 부주임은 “원고 수정 단계에선 리 총리가 직접 빨간 펜을 들었다”며 “리 총리 본인도 춘절 연휴를 제대로 못 쉬었다”고 말했다. 리 총리는 『후한서(後漢書)』의 구절을 찾아내 인용하라고 지시하며 원고의 품격을 높였다는 후문이다.

리 총리가 올해 이처럼 막판까지 원고를 세심하게 챙긴 것은 지난해 사전 배포된 원고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강조하는 ‘종엄치당(從嚴治黨, 엄정한 당 기율)’이 빠져 구설에 올랐던 것과 무관치 않다는 말이 나온다.

리 총리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모두 43차례 박수가 나왔다. 기자는 인민대회당 2층 기자석에서 망원경으로 주석단의 표정을 살폈지만 시 주석만은 박수를 안 쳤고 바로 옆자리에 착석하는 리 총리와 악수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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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 대표단의 공개 회의장. [사진 예영준·신경진 특파원], [베이징 AP·신화=뉴시스]


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9월 항일전쟁 기념장 수여식에서도 나머지 6명의 상무위원이 박수를 치는 동안 시 주석은 가만히 있었다. 1950년대 천안문 열병식 때 행진하는 군인들을 향해 손을 흔들 수 있는 사람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뿐이고 나머지 지도자들은 박수를 쳤던 것처럼 최고지도자와 ‘비(非) 최고’ 지도자의 세세한 행동도 구별을 짓는 게 중국식 의전이다.

전인대는 ‘지상 최대의 거수기’란 불명예스러운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중국의 최고 권력기관이라고 헌법에 규정돼 있지만 실제 역할은 공산당이 정해주는 방침을 추인하는 역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악수·박수·거수·휘수(揮手, 손 흔든다는 뜻)의 ‘사수(四手) 대표’란 별명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나왔다.

하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라고 전인대 관계자들은 반론한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입법법(立法法) 조항 개정이 대표적인 예다. 푸잉(傅瑩)전인대 대변인은 “세종(稅種)과 세율(稅率)에 관한 조항 초안에 전인대 대표의 70% 이상이 반대해 재심의 끝에 수정한 조문을 통과시켰다”며 “올해 심의 중인 예산 법과 자선(慈善) 법안도 심의 과정에서 수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2943명의 대표가 한자리에 모이는 전체회의는 간부들의 발언을 듣기만 할 뿐이지만 지역별로 나뉘어 열리는 단조(團組·그룹) 회의에선 지위·서열에 관계없이 무슨 말이든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고 활발한 토론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베이징=예영준·신경진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S BOX] 후춘화 원고 없이 통계 숫자 줄줄 … 차기 지도자 부각 노려

전인대는 중국의 차기 대권 후보로 거명되는 지방 지도자들을 베이징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성(省)·직할시 등 지역별로 나뉘어 열리는 단조(團組) 회의를 취재진에게 반드시 한 차례 이상 개방하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각 지방 대표단 간부들은 회의가 끝나면 별도의 기자회견을 마련하는 등 자기 지역의 지도자를 언론에 부각시키기 위해 적극적이다.

중앙일보 취재진은 광둥(廣東)성과 구이저우(貴州)성, 충칭(重慶)시 대표단의 회의를 나눠 취재했다. 이 세 곳의 당서기들이 차기 상무위원 진입, 더 나아가 2022년 당 대회에서의 대권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차기 지도자 후보를 취재하려는 내외신 기자들로 빈 자리가 없었다.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서기는 어떤 질문을 던져도 원고를 보지 않고 통계 숫자를 줄줄이 나열하면서 막힘 없이 대답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쑨정차이(孫政才) 충칭시 서기의 발언에선 전국에서 가장 발전 속도가 빠른 지역이자 모범 도시로 평가받는 충칭을 이끌고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시진핑 주석의 오랜 측근으로 알려져 있는 천민얼(陳敏爾) 구이저우성 서기는 설득력과 친화력, 소탈함이 묻어 나오는 태도로 빈곤퇴치(脫貧) 목표를 설명했다.

한편 중국 기자들은 최근 2년여 동안 부패 사례로 융단 폭격을 맞은 산시(山西)성 회의에도 많이 몰렸다. 왕루린(王儒林) 서기는 부패 척결 의지를 다짐하면서 여태까지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부패 적발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해 회의장을 찾아간 기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티베트·광시 등 소수민족이 많은 지역 회의에선 표준 중국어가 힘든 대표들을 위해 따로 통역이 배치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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