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삶의 향기] 사심을 우대하는 이상한 사회

기사 이미지

정여울
작가

얼마 전 ‘우리 아파트단지에 화물차를 세우지 마라. 미관상 좋지 않으니 다른 곳에 세워달라’는 포스트잇을 한 1t 트럭에 붙인 아파트 입주민의 이기심이 도마에 올랐다. 나는 그 메모의 첫 문장에 우선 놀랐다. “입장 바꿔 생각해 주시고”라는 말로 시작되는 그 포스트잇은 차주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입장 바꿔 생각한다면, 한 사람의 생계와 추억, 인생이 걸려 있는 화물차를 ‘미관상 안 좋다’는 이유로 ‘특히 101동 앞에는 세우지 말라’고 할 수 있는가. 화물차를 미관상 좋지 않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과연 어디 있는가. 비싼 외제차라면 그런 메모지를 붙여 놓았을까. 그가 이름도 밝히지 못하고 ‘101동 입주민’이라는 익명 뒤에 숨은 이유는 자신의 사심을 교묘히 감추려는 계산속일 것이다.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심(私心)이 결국 우대받는 사회의 수많은 선례가 쌓여 이런 마음을 만든 것은 아닌가. 사심이 무엇이기에 인간의 마음을 이토록 병들게 만드는 것일까.

명말청초 유학자 장대의 『사서우』는 ‘형의 아들이 아플 때’와 ‘자기 아들이 아플 때’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형의 아들이 아플 때는 밤새도록 왔다 갔다 살펴보지만 돌아와서는 잠깐이나마 편히 잠드는데, 자기 아들이 아플 때는 단 한 번만 가서 들여다보지만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마음이 사심(私心)이다. 장대는 그 사심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 아들보다 형의 아들을 더욱 극진히 보살핀 것이다.

『한국철학사』를 쓴 전호근 선생은 이런 사심을 극복하려 한 아버지의 추억을 고백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마을에 댐이 터져 물난리가 났는데, 학교 운동장까지 물에 잠겨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러 와 업고 가야 할 정도였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어른들 등에 업혀 집으로 갈 때 하염없이 아버지를 기다리던 그는 드디어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자 뛸 듯이 기뻤다. 그런데 아버지가 다가오시더니 아들은 그냥 놔두고 사촌 아이를 먼저 업고 가시더란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아들은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물론 나중에 아들을 데리러 다시 오시긴 했지만, 평생 상처로 남았던 아버지의 그 ‘수수께끼 같은 행동’은 전호근 선생이 『사서우』의 한 대목을 읽고 나서야 풀렸다 한다. ‘아들을 향한 사심’을 버리고 다른 아이를 업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설 때,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 장대가 아들이 아플 때 단 한 번 살펴보고 돌아와서는 밤새 잠을 못 이뤘듯이, 아버지도 사촌을 업고 가는 내내 자신을 생각하셨으리라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다고 한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나와 가까운 육친’이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구할 수 있을까.

사심이란 곧 사사로운 마음이며,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것에만 마음을 쏟는 편협함이다. 사실 나 또한 가장 끊어내기 힘든 마음이 바로 사심이다. 매사에 너무 잘해내려고 하는 마음, 꼭 인정받으려고 하는 마음, ‘내 이름’이 들어가는 모든 것에 집착하는 마음도 사심이다. 노력이나 최선의 이름으로 포장되는 이 지독한 사심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번아웃 증후군에 빠질 위험을 높인다. 참된 지성은 자신의 사심과 싸울 줄 안다. 현대인의 사심(私心)은 크게 세 가지로 진화했다. 포퓰리즘, 에고이즘, 그리고 속물주의. 훌륭한 정치인은 포퓰리즘과 싸우며, 참된 지성인은 에고이즘과 싸우고, 진정한 예술가는 속물주의와 싸운다. 포퓰리즘, 에고이즘, 그리고 속물주의와의 전투야말로 점점 각박해져 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끝내 잊지 말아야 할 지성인의 전투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즘 출세(出世) 좋아하는데 어머니 배 속에서 나온 것이 바로 출세지요. 나, 이거 하나가 있기 위해 태양과 물, 나무와 풀 한 포기까지/ 이 지구 아니 우주 전체가 있어야 돼요. 어느 하나가 빠져도 안 돼요. 그러니 그대나 나나 얼마나 엄청난 존재인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이미 출세한 셈이다. 더 이상의 출세는 필요 없으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가. 사심으로부터의 해방은 모든 구속과 속박으로부터의 진정한 자유다.

정여울 작가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