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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안보리 제재 국면의 최종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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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번엔 한국이 강단 있는 외교를 했다. 개성공단을 선제적으로 폐쇄하지 않았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포함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가 과연 가능했겠나.” 한 한국 측 인사의 발언에 미국 인사는 이렇게 답했다. “그게 바로 미국이 오래전부터 원했던 것 아닌가. 한국 덕에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이제야 빛을 발할 것 같다.” 그러자 한 중국 학자가 이렇게 응수했다. “오히려 중국 외교가 한층 돋보였다고 본다. 한국이나 미국이 다시 제재에 집착할 때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연계하는 출구론을 제시하지 않았나.”

3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분교(UCSD) 한국태평양연구소와 동아시아재단이 현지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한·미·중 3국 공조의 미래를 향하여’ 세미나 참석자들이 사석에서 나눈 대화 일부다. 북한 관련 안보리 제재 국면에 대한 세 나라의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솔직히 이 가운데 중국 측 견해가 가장 설득력 있게 들렸다. 최근 중국의 외교행보는 대북제재 결의안에 마지못해 동참하던 과거의 모습이 아니다. 남중국해에서 보였던 강권(强權) 외교와는 더욱 거리가 멀다. 모처럼 정치학에서 말하는 ‘레알폴리티크(Realpolitik)’의 진수를 본 듯한 느낌이다. 이 개념을 처음 만들어낸 독일의 루트비히 폰 로샤우는 “레알폴리티크의 목표는 이상을 맹목적으로 실현하거나 국익을 완벽하게 성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제약 속에서 국익을 부분적으로나마 만족시켜 나가는 데 있다”고 설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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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최근 북핵 외교에서 그런 면모를 읽을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한반도의 비핵화, 그리고 대화와 협상을 통한 현안의 타결. 중국이 전통적으로 강조해 온 핵심 국익이다. 그간 평화와 안정을 강조한 나머지 북한의 비핵화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아 왔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국·미국·일본이 주도한 전례 없이 강력한 안보리 제재 결의안에 흔쾌히 동참했을 뿐 아니라 한계로 지적돼 온 제재 이행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평화와 안정’이라는 첫 번째 이익을 놓친 것도 아니다. 2월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남긴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동시에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게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이 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북·미 간 평화협상 없이 북한의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미국 측에 분명히 각인시킨 것은 상당한 외교성과라 할 수 있다. 이는 케리 국무장관이나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구동성으로 북한과의 평화협상 필요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중국이 제안하는 평화협정의 구체적 윤곽이 무엇인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미국 국내정치 스케줄을 감안하면 당장 북·미 직접대화가 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더욱이 한국 정부의 반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대안은 6자회담을 재개해 ‘유관 당사국들(남북한, 미국, 중국) 간에 별도의 포럼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한다’는 2005년 9·19 공동성명 4항을 이행하는 것뿐이다. 이는 결국 중국이 원하는 6자회담 재개와 대화 및 협상을 통한 현안 타결로 귀결된다. 실로 절묘한 한 수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중국은 미국의 사드 한국 배치에 제동을 거는 부수적 효과까지 얻었다.

정리해 보자. 중국은 대북제재 동참이라는 카드 하나를 내주는 대신 북한 비핵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6자회담 재개를 통한 현안 타결, 덧붙여 사드 배치 제동이라는 넉 장의 외교적 성과를 챙겼다. 시쳇말로 ‘1타4피’의 레알폴리티크다. 여기에는 오는 3월 말 워싱턴 개최 핵안보정상회의에 시진핑 국가주석 참석을 독려하기 위한 미국의 배려가 깔려 있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이를 현실화하는 과정이 녹록할 리 없다. 그러나 중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 여유 있어 보인다. 당장 북이 원하는 메시지를 워싱턴에 명확히 전달했으므로 북한에 대한 발언권이 높아질 수 있고, 장차는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나 6자회담 재개, 사드 문제 등에서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대북제재의 강도를 조절하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거머쥐는 외교적 포석이다.

돌아보면 남는 것은 우리다. 대북제재에 모든 외교적 노력을 ‘올인’한 한국의 설 자리는 상대적으로 협소해 보인다. 브레이크 없는 제재에 대한 집착 때문에 머리 위로 미묘한 눈짓을 주고받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이제라도 판을 꿰뚫는 창의적인 출구전략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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