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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그 후 5년…"독재가 그립다"

‘혁명’ 전보다 실업률 치솟고 이념갈등 등으로 정국 혼란 지속… ‘힘의 진공상태’에서 탄생한 괴물 IS의 공포감에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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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집트는 시민혁명을 통해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다시 군사 독재로 퇴행하고 말았다. 사진은 2012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과 측근들에 대한 1심 재판 결과에 항의하는 이집트인들이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장면. / 사진·중앙포토

그날 오후, 카이로엔 비가 내렸다. 잔뜩 흐린 하늘 아래 타흐리르 광장은 무척 한산했다. 광장에 드문드문 모여 목소리를 높이던 수십 명의 시위 인파는 흩뿌리는 비를 피해 차례로 흩어졌다. 일부 친정부 운동가만이 내리는 비에 아랑곳 않고 자리에 남아 압델 파타 알시시 대통령의 초상화를 흔들며 그를 칭송했다. 광장 주변 곳곳에 배치된 무장 경찰들 사이를 무표정한 이집트 시민들이 스쳐 지나갔다.

외신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지난 1월 25일 타흐리르 광장의 풍경이다. 이날 이집트는 시민혁명 5주년을 맞이했다. 2011년 1월 25일 시민 수만 명이 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 30년간 장기집권한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는 그로부터 보름 만에 대통령 직에서 물러났다. 이집트 시민들의 승리였다.

5주년을 맞은 타흐리르 광장은 지난 승리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삭막했다. 무바라크가 축출된 후 2013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집트 군부가 일찌감치 단속에 나선 탓이다. 혁명 5주년을 맞아 다시 반정부 운동이 일어날까 우려한 군부는 새해 초부터 타흐리르 광장 주변의 아파트 5000가구를 탐문 조사하고 반정부 인사를 대대적으로 검거했다. SNS 검열도 이뤄졌다. 이집트 내무부 대변인은 지역 언론에 “폭동 시도에는 경찰이 총격을 포함해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사전 엄포를 놓기도 했다.

타흐리르 광장의 적막한 모습은 5년 전 튀니지에서 시작돼 북아프리카·중동 일대를 휩쓴 반(反)정부 시위 ‘아랍의 봄’의 말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이집트는 ‘아랍의 봄’ 국가 중에서도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이웃 리비아와 시리아가 내전으로 치닫는 동안 이집트는 무력 충돌 없이 선거를 통해 1년 반 만에 민주정권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아랍의 중심’ 이집트도 민주주의 꽃 못 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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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기원지인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시민들이 2012년 8월 13일 여성 지위를 격하시키는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아랍의 봄’ 당시 무크테다 칸 미국 델라웨어 정치학과 교수는 “이집트는 아랍 세계의 중추이자 지적·정치적 중심지”라며 “이집트가 민주주의를 채택한다면 민주주의는 아랍 세계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말대로 이집트는 근대 이후 아랍 세계의 헤게모니를 이끌어왔다. 이집트는 아랍 민족의 통일을 추구한 범아랍주의, 세계 최대 이슬람 정치집단 무슬림형제단 등 아랍 세계를 주도하는 정치적·종교적 운동의 발생지다. 아랍권 국가로선 거의 유일하게 전쟁도 불사하고 서구 수탈에 반기를 든 것(1956년 수에즈운하 국유화)도, 아랍연합군과 이스라엘 간의 오랜 분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도 이집트였다.

이집트에서조차 민주주의는 꽃피우지 못했다. 2012년 선거를 통해 이집트 5대 대통령이 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은 언론을 탄압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며 ‘현대판 파라오’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집트 전역에서 무르시 대통령을 둘러싼 찬반 시위가 벌어지면서 정국이 큰 혼란에 빠졌다. 결국 2013년 7월 압델 파타 알시시 국방장관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면서 민주주의는 물거품이 됐다. 알시시는 2014년 6월 대통령 선거에 직접 출마해 93%가 넘는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집권 이래 반대 세력을 강력하게 탄압해왔다. 시위는 무력 진압하고 반정부 인사를 체포·고문했다. 비판적인 언론에는 제재를 가해 재갈을 물렸다. 이집트의 인권 현황이 2011년 시민혁명 이전보다 더 악화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군부의 외면을 당해 물러나야 했던 무바라크와 달리 국방장관 출신인 알시시는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아랍 인권연합의 가말 에이드 대표는 “현 정권의 인권 탄압은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보다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휴먼라이트워치와 카네기평화연구소 등 국제기구에 따르면 2013년 알시시의 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최소 4만 명이 체포되고 2500여 명이 시위 진압과정에서 사망했다.

‘아랍의 봄’을 통해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튀니지도 지난 1월 우울한 5주년을 맞이했다. 1월 16일 튀니지 중서부 도시 카세린에서 실직자 리드하 야히아위(28)가 전신주에 올라가 시위를 하다가 감전사를 하면서 그런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분노한 카세린 시민들이 항의시위를 벌였고, 곧 튀니지 전역으로 확산됐다. 튀니지 라이브 등 현지 매체는 20개 이상의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2011년 ‘아랍의 봄’을 촉발시킨 튀니지의 대규모 시위 ‘재스민 혁명’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2010년 12월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가게를 강제철거 당하고 항의 표시로 분신자살하자 튀니지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이는 23년간 독재를 해온 당시 대통령 엘아비딘 벤알리의 사임을 불러왔다. 이후 튀니지는 임시정부를 거쳐 민주주의에 입각한 새 헌법을 제정하고 2014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했다.

그러나 재스민 혁명 이후 5년이 흐른 튀니지의 모습은 초라하기만 하다. 1월 22일 튀니지 정부는 시위 확산을 막기위해 저녁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야간 통행금지라는 강수를 꺼내 들었지만 되려 청년들의 분노를 키웠다. 튀니지 남쪽 페리아나에서 시위대가 경찰차를 전복시키며 경찰관 1명이 사망했고, 카세린에서도 시위대 20여 명과 경찰 70여 명이 충돌 과정에서 부상당했다. 1월 25일에는 경찰관 3천여 명이 대통령궁 앞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튀니지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다. 튀니지의 2015년 실업률은 15.3%로 혁명 전인 2010년(12%)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20대 이하 젊은이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무직이다. 고학력자의 실업률이 심각하고, 취업자 상당수는 학력이 일자리 요구 수준보다 높은 과잉학력 문제에 시달린다. 이번 시위가 촉발된 카세린은 실업률이 30%가 넘을 정도로 튀니지에서 손꼽히는 빈곤 도시다.

‘이슬람국가(IS)’는 의도치 않은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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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이 심화되고 정국이 불안해지자 ‘아랍의 봄’ 당시엔 민주화 열기에 휩싸였던 여론이 서서히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튀니지 북부 도시 엘마르사의 한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아지즈(26)는 “차라리 예전이 나았다”며 “벤알리 대통령이 그립다”고 지난 1월 <포린어페어>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벤알리는 호화스러운 성에 살면서 스포츠카를 20대나 몰았지만, 그게 뭐 어떤가요? 우리하고 상관없는 일이죠. 중요한 건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는 겁니다. 벤알리 때는 나라가 돌아가기라도 했죠. 지금은 아니에요.”

이집트와 튀니지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리비아는 ‘아랍의 봄’으로 대규모 내전이 발생하면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시민군의 손에 사망한 뒤로 친서방파와 친이슬람 파로 분열돼 지금까지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시리아에선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하자 곳곳에서 반군이 일어났고, 이후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으로 접어들었다.

‘아랍의 봄’으로 인한 혼란은 아랍 지역을 넘어서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출현 때문이다. 이라크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던 IS는 시리아 내전을 틈타 시리아 북부 일대를 점령하고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IS가 단발적인 테러에만 치중한 알카에다와 달리 영토를 차지하고 유사 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던 데는 시리아의 정정 불안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노아 펠드먼 하버드대 교수(국제법)는 <블룸버그뷰>에 기고한 칼럼에서 “내전에 시달리던 시리아가 아니었더라면 IS는 지금처럼 세력을 키우지 못했을 것”이라며 “IS는 ‘아랍의 봄’의 의도치 않은 결과물”이라고 분석했다. IS는 리비아·예멘·이집트·튀니지 등 ‘아랍의 봄’으로 취약해진 주변 국에도 지부를 설립하고 세력을 확대한다. 독재자들이 물러나거나 통제력을 잃으면서 생긴 힘의 공백을 IS가 차지한 것이다.

이슬람국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테러로 국제사회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사망자가 100명 이상 발생한 사건이 지난해만 해도 3월 예멘 사냐 모스크 폭탄 테러(142명 사망), 10월 이집트발 러시아행 항공기 폭파 사건(224명 사망), 프랑스 파리 총기난사 공격(130명 사망) 등 한두 건이 아니다. 2016년에도 연초부터 터키 이스탄불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잇따라 테러를 저질렀다.

권위주의 정권 통한 ‘국민국가’ 필요성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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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혁명 이후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국민들 사이에 “차라리 예전이 나았다”는 여론이 비등한다. 2011년 12월 19일 튀니지에서 시민들이 ‘아랍의 봄’을 자축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더 심각한 건 난민문제다.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하고 이슬람 국가가 준동하면서 살 곳을 잃은 아랍 지역 주민들이 대거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2015년 한 해 동안 중동·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한 난민 수는 100만여 명에 이른다. 이들 중 약 85%는 시리아 출신이다. 지난해 유럽은 난민 수용문제를 놓고 극심한 분열을 겪었다. 유럽 국가들이 난민 유입을 막으려 국경 통제를 강화하면서 솅겐조약(유럽연합 역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조약)이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솅겐조약은 유럽 통합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1월 29일 “솅겐조약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유럽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유럽 각국에 함께 난민위기를 풀어나가자고 호소하고 나섰을 정도다. ‘아랍의 봄’이 유럽연합을 위기로 몰아넣으리라고 5년 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지난 5년은 ‘아랍의 봄’이 아랍 지역의 민주화는커녕 더 큰 혼란만 낳았음을 보여준 기간이었다. 이와 관련해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기반이 연약한 상태에서 철권 통치로 국가를 장악하던 독재자가 물러나자 나라들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 아랍 국가들은 서구가 인위적으로 국경을 긋고 통치하다가 독립한 지 50~60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성원 간 역사적 공통점이 없고 국민의 정체성도 없다”고 덧붙였다.

대다수 아랍 국가는 국가가 수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서로 다른 종파와 부족, 민족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오랜 서구 식민지 역사 때문에 친서방파와 이슬람 민족주의자들 간의 이념적 갈등도 심하다. 게다가 미국은 과거와 달리타 국가 문제에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 ‘아랍의 봄’은 이처럼 국가의 정체성이 부족한 상황에선 혁명을 통해 민주화가 이뤄진다 해도 그 체제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아랍 국가들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혁명과 같은 급진적인 방법보다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 발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타렉 마수드 하버드 국제관계학 교수는 “아랍의 봄 이후 민주화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진 것은 오히려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국가들”이라고 지적했다. 모로코가 대표적이다. 2011년 ‘아랍의 봄’ 여파로 모로코 각지에서 시위가 발생하자 국왕 무함마드 6세는 개헌을 통해 왕권의 상당부분을 의회에 이양했다. 마수드 교수는 “비록 모로코는 아직 인권이 크게 제한돼 있어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기 어렵지만, 아랍의 봄 이후 민주주의에 한 발 다가선 국가 가운데 하나”라며 “이처럼 제한된 발전이 누적돼야 장기적으로 민주주의 정부의 집권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교수는 “‘아랍의 봄’을 성공이나 실패로 평가하는 데는 아직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경우 1960년 4·19 혁명이 발발한 이후 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기까지 27년이 걸렸고, 유럽에서는 민주화까지 200년 이상 걸린 국가들이 적지 않다”고 전제한 뒤 “민주화 과정에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하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일부 중동 학자는 ‘중동 국가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같은 독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랍이 민주화하려면 먼저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 국민국가를 형성한 뒤에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민주정부가 수립됐다 쿠데타로 군부 독재가 들어선 것도 어떻게 보면 발전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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