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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운기 칼럼]“영화 빅쇼트가 현재진행형이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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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내심 세상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한 대목이 묵시록처럼 스크린을 채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젊은 남녀 무리는 이 파티가 영원할 것처럼 웃고 마시고 춤을 춘다.

‘2007~2008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를 다룬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의 한 장면이다. 빅쇼트란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는 방향으로 투자하는 금융용어다. 주인공들은 금융시스템의 맹점을 파악, 시장의 몰락을 예측해 2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챙긴다. 실존하는 4명의 인물을 토대로 만든 영화라니 현실이 더 영화 같은 순간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주택 자금을 빌려주는 담보대출상품인데 은행은 이것을 다시 주택저당증권(MBS, Mortgage Backed Securities)이라는 금융상품으로 고객에게 판매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부채담보부증권(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까지 만들어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들이 다수 모이면 AAA등급으로 환골탈태하는 기적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적은 단순화한 변수와 가정을 전제로 계산된 숫자일 뿐, 현실은 매우 복잡하고 인간은 비합리적이다.

종국에 이르러 미국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고 자산 가격이 급락하자 대형 은행들은 줄줄이 쓰러진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IB랭킹 4위의 리먼브라더스 파산이며 이는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로 금융위기를 확산시킨 트리거 역할을 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후유증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미국에서만 8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6백만 명이 집을 잃은 매우 어두운 소재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가벼운 분위기를 이어간다. 군데군데 블랙유머가 섞여있어 관객들은 깔깔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관객은 문득 뜨끔하며 ‘내가 이렇게 웃을만한 자격이 있는가?’하고 스스로를 반문한다.

감상 이후 질문하게 만드는 것이 훌륭한 예술의 조건이라면 빅쇼트는 분명 좋은 영화다. 극장 밖으로 나와 그 주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정보를 찾게 되고 주변사람들과 대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관객이 느끼는 생각과 그에 대한 질문도 달라질 것이다. 필자는 미국 발 모기지 사태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저축은행 부실로 도미노처럼 이어졌던 ‘2011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가 떠올랐다. 책에서나 보았던 뱅크런 사태가 실제 눈앞에서 벌어졌고 뉴스에서 보도하는 영업정지 저축은행은 매일 바뀌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과 여신경쟁이 심화되면서 저축은행들은 본연의 역할인 서민대출에서 부동산 PF대출, 부동산 펀드 등 고위험 고수익 상품에 자산을 편중해 운용했다. ‘썰물이 빠졌을 때 비로소 누가 벌거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고한 워런 버핏의 말처럼 부동산 경기가 급 하강하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에 미달된 다수의 저축은행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결국 정부는 2011년 7월 ‘하반기 저축은행 경영건전화 방안’을 발표하고 BIS 비율 1% 미만인 제일, 토마토를 비롯한 7개 저축은행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여 6개월간 영업정지를 내렸다. 이러한 조처로 5000만 원 이상 예금자와 후순위 채권 투자자들은 원금 손실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어떤 상품인지도 모르고 높은 이자를 준다는 말에 가입한 고객들은 평생 모은 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해졌다. 저축은행의 성격상 고령자 고객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노후자금을 잃게 되었으니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였다. 그런데 이 와중에 저축은행 내부자와 고액의VIP에게 영업정지가 될 것을 귀띔하고 사전에 출금할 수 있게 해줬다는 사실까지 밝혀지자 일반 고객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저축은행 사태의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저축은행업계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로 되어있고 사외이사, 감사 등 내부 견제가 쉽지 않았다. 고위험 여신을 취급함에도 체계적인 리스크관리시스템은 미흡했고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는 규제를 완화했으나 도덕적 해이와 몸집 키우기의 발판만을 마련해 주었을 뿐이다.

또한 감독적인 측면에서도 큰 문제가 있었다. 금감원 저축은행 담당부서 내 동일인의 장기 근무, 예산부족으로 현장검사 축소, 퇴직 직원의 유관회사 재취업이 그것이다. 피검기관과의 유착관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고리다.
 
빅쇼트에도 이러한 유착관계를 지적한다. 유명 금융포럼에 참가한 등장인물 중 한명이 증권거래위원회에서 일하는 형의 전 여자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녀는 일 때문에 온 것이 아니고 자비로 왔다고 말한다. 대형은행에 이력서를 돌리기 위해 관련 인물들을 물색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예산삭감으로 모기지 채권에 대해 아무것도 조사하지 않으며 감독기관에서 일한 직후 금융기관에 취업하는 것은 불법 아니냐는 주인공의 물음에 순진하다는 듯 웃어넘긴다. 빅쇼트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2015년 몇몇 대행 은행이 bespoke tranche opportunity(맞춤형 트랜치 기회)란 상품을 대규모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는 CDO의 또다른 이름에 불과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 문구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에 대한 법적, 구조적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물론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으나 실행까지 옮겨졌는지는 의문스럽다. 사태의 후폭풍은 일반 국민들이 감당했고 정부는 엄청난 세금을 투입해 대마불사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그러나 사건의 중심부에 서 있는 월가 사람들은 고액의 보너스를 챙겼고 그 누구도 이 일을 책임지지 않았다.

그래도 최근 희망적인 기사가 눈에 띤다. 저축은행 79곳의 순익이 전년 동기 대비 52.3% 증가했다는 것이다. 2011년 대규모 영업정지 사태를 전후해 적자를 기록하다 2014 회계연도부터는 흑자로 전환했다. BIS기준 총자본비율은 14.33%로 6개월 전보다 0.04%포인트 상승했고 연체율과 고정이하 여신비율도 하락해 건전선 지표에서도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물론 꾸준한 리스크관리 강화가 필요하지만 호전되고 있는 추세는 바람직하다.
 
2008 글로벌금융위기와 2011 저축은행 사태 모두 자본주의 시스템의 맹점이 드러난 사건이다. 물론 개개인의 도덕적 해이와 무지, 그릇된 욕심도 한 몫 했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홍역을 앓았다면 우리는 다시 재발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고수익, 저위험이라는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 경기침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도 성장을 위한 건전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홍운기 청인자산관리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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