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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잔재 빼자” vs “지금도 괜찮다”…뉴질랜드 국기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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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국기(國旗)에는 식민지의 역사가 숨어 있다. 사연은 영국이 뉴질랜드를 점령한 18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까지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국기를 사용했던 뉴질랜드는 하루아침에 국기를 ‘유니언 잭(영국 국기)’으로 바꿔야 했다.

당시 뉴질랜드 말고도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 영국은 각국 선박 구별을 위해 유니언 잭을 변형한다. 뉴질랜드 선박엔 파란 바탕의 왼쪽 위에 유니언 잭이 그려진 국기가 게양됐다. 몇 년 뒤 오른쪽 아래에 4개의 별이 십자가 모양으로 추가됐다. 뉴질랜드는 1902년 이를 공식 국기로 제정한다. 뉴질랜드는 5년 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서도 이 국기를 그대로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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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뉴질랜드가 114년 만에 국기에서 유니언 잭을 걷어내려 하고 있다. 지난 3일부터 기존 국기를 유지할지, 새로운 국기를 선택할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 중이다.

존 키 뉴질랜드 총리가 국기 교체를 밀어붙이고 있다. 식민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명분이다. “평생 다시 없을 기회(once in a lifetime)”란 슬로건을 내걸고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투표는 24일까지다.

뉴질랜드 정부가 내놓은 새로운 국기는 유니언 잭을 걷어낸 자리에 자국 고유 식물인 은색 고사리를 앉혔다. 은색 고사리는 토착민 마오리족 때부터 160년간 뉴질랜드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국가 대표 아이콘이다. 새 국기에 뻗어나가는 형상을 넣어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뉴질랜드라는 의미를 담았다. 왼쪽 위 검은색은 식민 지배를 받은 과거를, 오른쪽 파란색은 남태평양을 상징한다. 4개의 빨간 별은 뉴질랜드의 지정학적 위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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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년 만에 ‘새 국기’ 제안
존 키 총리가 주도, 24일까지 투표

“국기 교체할 돈으로 서민 도와라”
여론조사선 60~70%가 “반대”

국기 교체 국민투표 용지엔 ‘당신이 선택한 뉴질랜드 국기는?’이란 질문이 적혀 있고, 위아래 나란히 새로운 국기와 기존 국기가 배치돼 있다.

결과는 2주 뒤 뚜껑을 열어봐야 알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좋지 않다. 일간신문 뉴질랜드헤럴드는 10일(현지시간) “최근 조사에서 국기 교체를 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0% 이상인 반면 새로운 국기를 원한다는 응답은 30% 정도에 불과했다”며 “나머지는 무응답”이라고 밝혔다. 어떤 조사에선 국기 교체를 원치 않는다는 응답이 70% 가까이 나왔다.

오클랜드에 사는 소피아 블랙웰(21)은 뉴질랜드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국기를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새 국기는 너무 스포티한 디자인이고 쉽게 질릴 것 같다. 기존 국기가 유행도 타지 않고 좋다”고 했다. 체육관을 운영하는 수 블랙웰(45)은 “국기 교체는 예산 낭비”라고 꼬집었다.

사실 기존 국기에 대한 뉴질랜드인의 속내는 복잡하다. 식민 잔재 외에도 호주 국기와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호주도 뉴질랜드와 비슷한 사연으로, 국기에 유니언 잭이 그려져 있다. 색깔·위치가 뉴질랜드 국기와 똑같다. 차이는 국기에 그려진 별의 개수와 모양 정도다.

키 총리는 식민 잔재 청산, 호주 국기와의 차별화 등이 젊은 층에게 국기 교체 명분으로 먹힐 거라 예상했지만 빗나갔다.

캐럴라인 다를리 오클랜드대 역사학과 교수는 “젊은 층은 키 총리의 업적 쌓기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며 “무엇보다 국기 교체에 2600만 뉴질랜드달러(약 212억원)가 투입되는 데 상당수 국민이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기를 교체할 돈이 있으면 서민경제에 쓰란 아우성이 많다는 것이다. 오클랜드엔 “국기 하나면 7500명에게 따뜻한 주거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어려워진 경제 앞에 ‘뉴질랜드의 정체성을 찾자’는 구호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기 교체 찬성 단체들은 “호주 국기와의 혼동을 이제 끝내고, 미래 세대에게 자랑스러운 뉴질랜드 역사를 물려주자”며 키 총리를 지지하고 있다.

키 총리도 “다음 세대에게 식민지의 역사를 들려주고 싶으냐”고 막판 호소 중이다. 1965년 국기에서 유니언 잭을 지우고 붉은 단풍잎을 선택한 캐나다 국기 사례도 자주 예로 든다. 붉은 단풍잎은 승리하는 캐나다인을 상징한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 인도도 독립하면서 유니언 잭을 없애고 그들만의 국기를 새로 제정했다. 유니언 잭이 남아 있는 국가는 뉴질랜드·호주·피지 정도다.

이번 뉴질랜드 국민투표 결과는 호주, 피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호주는 이번 투표를 예의주시 중이고, 피지는 올여름 국기 교체 검토에 착수한다.

국기의 색깔과 디자인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이상이 담겨 있다.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아르헨티나 국기 중앙엔 인간의 얼굴 모습을 한 태양이 그려져 있다.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자유를 상징하는 심벌로 국기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국기 교체가 드문 일은 아니다. 최근 반세기만 해도 20여 개국이 국기를 바꿨다. 국가가 독립을 성취하거나 큰 정치적 개혁이 성공했을 때 국기를 교체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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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를 철폐한 것을 계기로 국기를 변경했다. 최초 민주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된 넬슨 만델라가 기존 국기인 3색기와 자신이 이끌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기를 결합해 새로 만들었다. 가로로 누운 Y자 문양은 여러 부족의 화합을 의미하고, 노란색은 금 같은 풍부한 광물자원, 파란색은 열린 하늘을 상징한다. 검정과 흰색은 각기 흑인과 백인을 가리키고, 빨간색은 흑인 해방을 위해 흘린 피를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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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는 2011년 시민군이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축출한 후 옛 리비아왕국 국기를 부활시켰다. 적·흑·녹 3색기 한가운데에 흰색 초승달과 별이 있는 디자인이다. 아프가니스탄은 1919년 독립 후 2002년까지 내부 정권 변화에 따라 국기를 10여 차례나 바꿨다.

흑·적·녹 3색기 가운데 사원 형태의 문장(紋章)이 있는 현 국기는 2001년 미국의 공격으로 탈레반 정권이 물러난 후 제정됐다. 이라크도 공화정이 들어선 1958년 이후 국기가 다섯 차례 바뀌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90년 쿠웨이트를 침공했다가 패색이 짙어져 국민적 지지가 떨어지자 국기에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라는 선언을 적어넣었다. 이 국기는 2003년 후세인 퇴출 후 가운데 3개 별을 빼버리면서 또 바뀌었다.

영토 변경도 국기 교체의 변수가 된다. 브라질이 그렇다. 브라질 국기엔 총 27개의 별이 있다. 26개 주(州)와 1개 연방자치구를 의미한다. 1889년 제정 땐 별의 개수가 21개였지만 이후 주가 새로 추가되면서 1992년까지 27개로 늘었다. 국기 중간엔 포르투갈어로 ‘질서와 전진’이란 표어가 적혀 있다.

미국 국기인 ‘성조기’에 그려진 별도 주(州)가 추가될 때마다 증가한다. 1776년 영국에서 독립할 때만 해도 당시 13개 주를 상징하는 13개 줄과 13개 별이 그려졌다. 1795년 버몬트·켄터키 2개 주가 추가되면서 15개 줄과 15개 별이 그려진 국기로 변경됐고, 그 후엔 주가 증가해도 독립 당시 13개 주를 상징하는 13개 줄로 고정하고 별만 더하기로 결정했다. 성조기는 현재까지 총 26번 변경됐고, 가장 최근 변경된 건 1960년으로, 하와이가 주로 승격되면서 별이 50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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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국기는 평시와 전시로 버전이 2개다. 왼쪽에 흰색 삼각형이 있고, 오른쪽 위는 평화를 상징하는 청색, 아래는 용기를 의미하는 적색 가로줄이 기본 디자인이다. 하지만 전쟁이 벌어지면 상하 색깔을 바꿔 사용한다. 실제 제2차 세계대전 때 상하를 적·청색으로 바꾼 국기를 사용했다.

우리 태극기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1883년 조선 고종 때 제정된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문양,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돼 있다. 흰색 바탕은 밝고 순수한 우리 민족성을 나타낸다. 태극 문양은 음(파랑)과 양(빨강)의 조화를, 건곤감리 4괘는 하늘·땅·물·불을 각각 상징한다. 특히 4괘는 우주만물 외에 계절과 방향, 가족 구성원 등의 상징도 포함하고 있어 대부분 1차원적 상징에 그치는 다른 나라 국기보다 수준 높은 국기로 평가된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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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