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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실종된 정치권…‘동반성장’ 지키려고 정치 참여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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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총리는 9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치권이) 총선을 앞두고 선거 승리만 생각한다.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느냐는 논쟁은 하지 않는다. 상식이 안 통하는 이런 현실을 소화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느 당에도 가지 않기로 한 것”이라며 “자신이 추진해 온 ‘동반성장’ 운동에만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전민규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에서 입당 권유를 받아온 정운찬 전 총리가 지난 8일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무총리와 서울대 총장을 지낸 그는 합리적 개혁 성향과 충청 출신 배경 때문에 지난해부터 야권으로부터 집요한 러브콜을 받아 왔다. 하지만 장고 끝에 자신이 추진해 온 ‘동반성장’ 운동에만 매진하겠다며 정치 불참의 뜻을 밝혔다. 서울대 인근에 위치한 정 전 총리의 ‘동반성장연구소’에서 그를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왜 정치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나.
“필생의 과업인 동반성장을 실현시키려면 국회에 들어가는 게 효율적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더민주와 국민의당에서 합류를 권유해 잠시 마음을 둔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치를 하면 효율성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진정성은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일었다. 어느 당으로 갈 것이냐도 고민스러웠다. 두 당의 상황을 보니 나로선 소화하기 힘들겠더라. 더민주는 친노 세력이 당을 장악했다는 논란이 많았다. 문재인 전 대표를 ‘독선’이라 비판하며 많은 사람이 탈당하기도 했지 않나. 또 국민의당이 창당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분열의 원인을 제공한 당(더민주)이 야권통합론을 꺼내며 ‘다시 들어오라’고 요구하고, 국민의당 일부가 거기 호응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내 상식과는 달랐다. 정자정야(政者正也)란 말이 있다. 정치라는 건 바르게 하는 것인데, 요즘 정치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더라. 정치를 접은 또 다른 이유는 (당이) 없던 일을 있는 일인 것처럼 소문을 내고, 거기 입각해서 판단·행동하는 일들을 봤기 때문이다. 이 또한 내 상식과는 어긋났다.”

더민주 일각에서 언론에 ‘정 전 총리가 곧 입당한다’고 흘려 기사가 난 걸 말하나.
“그건 또 다른 얘기다. 정치 세력은 사실이 아닌 얘기를 흘리며 언론몰이를 하고, 언론은 추측보도를 했다. 황당해서 일일이 대응할 수도 없었다.”
그럼 “없던 일을 있는 것처럼 소문내고 거기 입각해 판단·행동했다”는 건 무슨 얘기인가.
“(더민주 안에서) 내가 입당하면 비례대표 세 자리를 달라고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러자 더민주 측이 내게 ‘그런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안 와도 좋다’고 하더라. 모멸감을 느꼈다. 이게 내가 정치 불참 성명을 낸 원인의 하나가 됐다. 내가 더민주에 비례 3석을 달라고 제의한 적은 전혀 없다. 그러나 더민주는 그 소문을 사실로 착각했나 보다.”
불참 성명을 내기 전 더민주나 국민의당에 통보했나.
“여의도(국회)에서 일하는 게 동반성장에 도움된다면 하겠다는 게 내 일관된 입장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뜻을 접었다. 지난 주말 양당 지도부를 따로 만나 못 가겠다는 뜻을 전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양당 모두 안타까워했다.”
붙잡지는 않았나.
“그걸 내 입으로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다.”
양당에서 여러 차례 합류를 제의했나.
“여러 번 했다. 더민주 박영선 의원은 내 연구소로 찾아오기도 했다. 국민의당 김영환 의원도 열심히 (제의) 했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 입당을 권했나.
“내가 입당하면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이냐가 내 관심사였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선 말하지 않더라. 다만 박영선 의원은 내가 더민주에 입당하면 동반성장을 밖에서 추진하는 것보다 효과가 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더민주에 가면 내 정체성에 위기가 올 것 같아 뜻을 접었다. 내가 2009년 총리로 지명됐을 때 더민주의 전신인 민주당이 청문회에서 있지도 않은 일로 나를 거칠게 몰아붙였지 않나. 또 총리 시절 세종시를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 기업·과학 도시화를 추진했을 때도 가장 격렬히 반대한 측이 민주당이다. 그분들이 지금도 더민주에 있으니 거기서 일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의당은 그런 문제는 없지만 사공이 너무 많더라. 다만 거취를 빨리 결정하지 못한 건 두 당과 국민에게 미안하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표가 직접 입당을 권하지 않았나.
“안 대표 측에서 요청해 시내에서 몇 번 만났다. 진정성은 느껴졌다. ‘정치를 새롭게 하고 싶고, 정 전 총리도 다당제에 찬성하니 같이 하자’고 하더라. 자신의 ‘공정성장’과 나의 동반성장이 비슷한 개념인 만큼 함께 일하자고도 했다.”
본인도 그렇게 보나.
“비슷하나 동반성장이 더 넓은 개념이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의 경제민주화도 동반성장과 비슷한가.
“안 대표의 공정성장은 불공정거래를 공정거래로 바꾸자는 것이다.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나 기술 탈취, 장기어음 발행을 없애자는 얘기다. 벤처기업을 육성하고 실패한 기업인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는 패자부활도 포함된다. 김종인 대표의 경제민주화는 한마디로 재벌개혁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너무 크니 줄여 주자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독창적 기술이 있으면 키워주고 대기업은 불공정거래를 하지 못하게 룰을 만드는 게 골자다. 반면 나의 동반성장 개념은 그보다 굉장히 넓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부자와 빈자, 고용주와 노동자, 서울과 지방, 남성과 여성, 남한과 북한이 손잡고 파이를 키우며, 함께 키운 파이를 공정하게 나누자는 것이다. 경제·사회·정치 등 모든 영역을 포괄하며, 안·김 대표의 개념을 다 포함하고도 남는 개념이다.”
경제 영역에선 세 개념에 큰 차이가 없는 것 아닌가.
“(공정성장과 경제민주화는) 철학적 기초가 약하다. 공정성장을 통해 공정거래를 추진해도 운이 없거나 실력이 낮아 못 사는 사람은 보호할 수 없다. 또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인데, 그 속에서도 재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재벌 견제의 의미는 있지만 작은 기업을 키워주는 의미는 없다. 그러나 동반성장은 그 모두를 커버한다. 한국 경제는 지난 60년 동안 대기업 위주로 성장해 왔고, 이를 통해 중소기업도 잘될 것이란 ‘낙수효과’에의 기대로 굴러갔다. 그러나 이젠 한계에 도달했다.”
낙수효과를 추진한 이명박 정부 때 총리를 지냈는데.
“총리 시절 국무회의나 대통령과의 회의에서 동반성장 정신을 계속 전했다. 그래서 동반성장위원회가 설립된 것이다. 내가 나중에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주장한 것은 ‘분수효과’다. 낙수효과가 효력이 없으니 이젠 대기업에 앞서 중소기업을 키워 잘되게 해주면 대기업도 득을 보게 된다. 이게 분수효과다. 그래서 초과이익 공유제와 중소기업 적합 업종 선정, 중소기업 위주의 정부 발주를 적극 제안했다.”
더민주나 국민의당이 영입을 추진하면서 대권주자나 당대표를 제의하지는 않았나.
“양당에서 그런 제의를 한 적은 있지만 책임 있는 사람이 한 얘기는 아니었다. 나 역시 그런 걸 원하지 않았다. 내가 정치 참여를 고민한 목적은 국회의원이 돼 동반성장 입법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더민주에서 비례대표를 주겠다고 한 제안은 매력적이지 않았나.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내 상식과 어긋나 못 가겠더라. 요즘 정당들은 선거에 이기는 것만 생각하지 어떤 가치를 추구할지에 대한 논쟁이 없어 안타깝다. 정당은 (가치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김종인 대표도 경제전문가라 본인이 더민주에 들어가도 힘을 쓰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 건 아닌가.
“아니다. 오히려 시너지가 있으면 있었지.”
국민의당에 안 간 이유가 ‘사공이 많아서’라고 했는데 다른 이유는 없나.
“새로운 정당이라 내 정체성이 위기를 맞을 염려는 없었다. 다당제의 시발점이 된다는 점도 끌렸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도대체 뭘 추구하는지 모르겠더라. ‘새 정치’가 뭔지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난달 23일 국민의당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강연해 입당설이 돌았는데.
“동반성장 운동을 시작한 이래 어디든지 초청하면 응해 강연했다. 더민주에도 지난해 갔다. 새누리당도 오라고 했으면 갔을 것이다. 사실은 국민의당이 창당되기 전에 그쪽 사람들과 세미나를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어 간 것이다. 이게 오해를 불렀다면 미안하다.”
 
김종인 대표, 박영선 의원과 친해 더민주 입당설이 돌기도 했는데.
“인간적으로는 그 두 사람 때문에 더민주 입당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소통이 꽉 막힌 현 정국에서 내가 가서 정치한다고 동반성장에 도움이 될지 자신이 없더라.”
양당에서 입당하면 동반성장을 돕겠다고 하던가.
“양당 모두 가칭 동반성장연구소를 만들어 도와주겠다고 했다. 정당 국고보조금의 일부를 떼서 연구소에 지원해 주겠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런다고 (동반성장을) 할만한 환경은 돼보이지 않았다.”
 
김종인·안철수가 집권하면 정말 경제민주화나 공정성장을 추진할 것이라 보나.
“글쎄다. 그들이 집권하면 경제민주화나 공정성장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란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정치 환경과 정체성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차기 대권주자의 하나로 꼽혀 왔는데 정치 불참을 선언했다.
“거기(대권)에 대해선 생각 안 해봤다. 나는 무엇이 되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대통령이 되더라도 동반성장을 못하는 것보다는 동반성장연구소를 이끌며 동반성장을 이루는 게 좋다.”
 
앞으로도 정치에 참여할 계획은 없나.
“현재 상황은 성명에 낸 그대로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 듯하다.
“나는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얘기하지 말라고 배웠다.”
 
다음 대통령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전 세계의 화두가 동반성장이다. 어느 나라나 모두 양극화를 걱정한다. 동반성장에 대한 철학을 갖고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양극화는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우리 사회의 상위 1%가 소득의 13%, 상위 10%가 43%를 가져간다. 미국은 몰라도 일본·유럽보다는 확실히 불평등하다. 또 미국도 워런 버핏 같은 거부들이 통 크게 기부해 반(反) 월가 시위가 사라졌다. 우리만 못 따라가 안타깝다. 앞으로 동반성장이 세계적 추세가 된다면 우리도 안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안 따라가면 사회가 파탄 날 것이다. 다행히 동반성장 운동을 개시하고 나서 우리 사회도 조금은 나아졌다.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도 과거엔 고압적으로 크게 하던 것이 덜 강압적으로 됐고 크기도 조금은 줄어들었다. 나는 비관하지 않는다.”
글=강찬호 논설위원
사진=전민규 기자


정운찬은 …
▶1946년 충남 공주 ▶경기고·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한국은행 근무 ▶미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미 컬럼비아대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금융학회 회장 ▶서울대 제23대 총장 ▶국무총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현)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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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