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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내 돈 들여 패배감 만끽한 썰.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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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
JTBC 경제산업부

“당신이 뭔데 남의 장례식장에서 이러는 거요.” “기자랑은 이야기 안 합니다. 전화 끊겠습니다.” “저희가 그 부분을 확인해드릴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요.” 기자일을 5년 남짓 하면서 거절 멘트는 정말 원 없이 들어봤다. 수습 기자 시절, 수화기 너머의 선배는 아주 노골적으로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드는 것이 기자”라 했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다섯 번쯤 거절당하면 마음이 위축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가수 이승환은 공연 중 이런 자기비하 유머를 구사한다. 먼저 2000년대 초반에 발매한 8집 앨범을 팬들이 ‘졸작’이라 평한다고 털어놓는다. (전 국민이 다 아는) 열애하던 시절인데, 발라드 곡을 쓰는 사람이 행복감에 젖어 살 때는 제대로 된 작품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 이렇게 덧붙인다. “하지만 이 졸작에 실망한 팬들은 곧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가 수록된 걸작, 9집을 만나게 됐다”고. 공개 연애 끝에 했던 결혼이 얼마 못 가 끝나버린 뒤 나온 음반이었다. 

4년 동안 이탈리아, 캐나다, 미국을 떠돌았던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을 떠날 때 계획을 잘 안 세운다고 한다. 무계획 여행이 순조롭다면 즐거운 일이라 좋고, 망하면 그걸로 글을 쓰면 된다는 생각이다. “너무 매끄럽게 잘돼도 남는 게 하나도 없다”는 그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미국에 ‘걸스 후 코드(Girls Who Code)’라는 비영리 단체가 있다. 레슈마 사우자니라는 여성이 여학생들에게 코딩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단체다. 지난달 밴쿠버에서 테드(TED) 강연자로 나선 레슈마는 6년 전 하원의원 후보 경선에 도전했다 대패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인도계 여성 최초로 하원의원직에 도전해 화제가 됐지만 승리를 거머쥔 건 81%를 득표한 상대 후보였다. 레슈마가 얻은 건 고작 6231표. 선거에 130만 달러를 쏟았으니, 표 하나에 213달러씩 쓴 셈이었다. 처참한 실패였지만 그는 하원의원에 도전한 것이 가장 용감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완벽히 잘할 수 없으면 좌절하고 포기해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 완벽하지 않은 상태를 받아들이고 용감해지자는 것이 그와 걸스 후 코드의 메시지다.

나는 코딩 대신 서핑으로 실패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몇 번 배워보니 혼자서도 탈 수 있겠다 싶어 얼마 전엔 혼자 바다로 나갔다. 착각이었다. 3일 동안 매일 똑같이 버둥거리고, 파도를 놓치고, 물을 먹었다. ‘생돈 들여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뭍으로 돌아갈 기운도 없어 보드 위에 엎드려 있자니 회사에서 일하면서 성취감보다 패배감을 더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잘 안 될 일이라 회사가 돈을 주고 맡긴 것이니 말이다. 기신기신 물 밖으로 빠져나와 서핑보드를 머리에 이고 백사장을 걷는데 비죽비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현 JTBC 경제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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