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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LG의 변신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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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
경제에디터

친구의 아들 K군이 미국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지난해 9월 돌아왔다. 삼성과 LG에서 입사 제의를 받은 그가 LG전자를 선택했다. 의외였다. 당시 LG전자는 시장에서 ‘버린 카드’ 취급을 받고 있었다. 주가는 4만원을 밑돌아 최고가 대비 4분의 1 토막으로 추락했고, 시가총액은 6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그에게 “삼성을 가지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사실 3년쯤 뒤 벤처 창업을 할 생각인데, LG에서 배울 게 더 많을 것 같아서요. LG가 살아나는 데 내가 작으나마 힘을 보탠다면 자랑스러운 경험이 될 것이고, 끝내 침몰하더라도 실패를 체험한 게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K군이 생각난 것은 LG가 반전의 드라마를 쓰고 있다는 칭찬의 소리가 최근 시장에서 나오면서다. LG전자는 올 들어 국내 주식시장이 침체상을 보이는 와중에도 가장 뜨거운 종목 중 하나로 떠올랐다. 주가가 6만2000원대로 올라 지난해 8월의 저점 대비 60%나 상승했다. 특히 외국인들이 올 들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 리스트에 올랐다. LG화학 등 다른 계열사들도 상대적으로 강한 주가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의 평가는 ‘혁신 DNA가 부활하고 있다’(신한금융투자 보고서)로 요약된다.

증권업계는 “LG전자가 자동차 부품 사업에서 성장 스토리를 쓰기 시작한 데 이어 스마트폰 신모델 G5도 예상을 뛰어넘는 혁신성을 보여줬다”고 후한 점수를 줬다. 다음달 출시되는 G5는 판매량이 1000만 대를 넘어 직전 모델인 G4(400만 대)를 크게 앞지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LG는 정말 달라지고 있는 것일까? LG는 그동안 “제품은 잘 만드는데, 사소한 기능과 마케팅 등에서 뭔가 1~2%가 부족하다. 조직문화를 봐도 악착같은 맛이 없다”는 평가가 주류였다. K군에게 요즘 분위기가 어떤지 물어봤다.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집니다.”

전문가들의 냉정한 얘기를 들을 차례다. 공대 교수 몇 분과 증시 애널리스트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대체로 긍정적인 쪽이었다. 전문가들은 LG가 큰 틀에서 B2C(기업-소비자 거래)에서 B2B(기업 간 거래) 기업으로의 변신 전략을 세우고, 실제 성과를 내기 시작한 점에 주목했다. 자동차 전장 부품, 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 디스플레이, 기초 화학재료 등 소재·부품에 역량을 집중하는 방향이다. 스마트폰과 TV, 세탁기 등 소비재는 중국이 따라오는 범용 기술 제품을 버리고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으로 라인업을 압축하고 있다.

B2B 기업으로의 변신은 일본 파나소닉이 부활한 방식이다. LG전자처럼 종합 가전회사였던 파나소닉은 일본 경제의 20년 장기 불황기 동안 살아남기 위해 온갖 사업에 손을 댔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경쟁자들의 공세에 밀려 엄청난 손실만 쌓은 뒤 2012년 파산 위기에 몰렸다. 파나소닉은 뒤늦게 가전 등 B2C 사업을 대거 정리하고, 자동차·항공·에너지 기업 등에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B2B 기업으로 변신했다. 기술 우위와 안정된 거래선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였다. 그 결과 파나소닉은 2014년 3800억 엔(약 4조원)의 순익을 올린 알짜기업으로 거듭났다.

LG는 실제 파나소닉의 사례를 심층 연구해 활용 중이다. 관건은 역시 연구개발(R&D) 분야 인재의 확보와 육성이다. 가능성은 엿보인다. LG전자의 연구인력은 현재 1만9000명으로 국내 직원 수의 절반을 차지한다. LG화학의 경우 3400명으로 25%가 된다. 민동준 연세대(신소재공학과) 교수는 “LG의 전기차 부품이나 플라스틱 소재 등의 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하이닉스를 놓쳐 반도체 분야에 구멍이 큰 게 아쉬운 대목”이라고 진단했다.

LG가 소재·부품 분야에서 실제 돈을 벌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방향을 잘 잡은 건 맞다. 효성과 코오롱 등 다른 중견 그룹들도 첨단 소재 기업으로 속속 변신해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중국의 범용 완제품에 맞서 실탄을 낭비해선 안 된다. 내줄 건 내줘야 한다.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점해 몇 발씩 계속 앞서 나가도 우리 기업들은 얼마든지 생존 가능하다. LG가 가고자 하는 길이다.

김광기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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