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이정재의 시시각각] ‘님티’들의 천국

기사 이미지

이정재
논설위원

보름쯤 전 헬스클럽에서 가슴에 통증이 왔습니다.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심장이 멎는 느낌이라더니. 3분쯤? 통증은 사라졌지만 불안·불쾌한 기억은 남았습니다. 며칠 뒤엔 늘 오르던 회사 계단 6층에서 멈춰야 했습니다. 한걸음도 더 디딜 수 없었습니다. 병원을 찾았습니다. 협심증. 관상동맥 두 곳이 하나는 많이 또 하나는 좀 길게 막혔다고 합니다. 친구 의사 녀석은 걱정하는 제게 쿨하게 말했습니다.

“사람 몸은 오래 쓰면 낡고 고장 나. 혈관도 그래. 오래되면 헐고 막혀. 운이 좋아 일찍 발견하면 약물로, 좀 늦으면 스텐트 시술, 더 많이 늦으면 수술로 처리하지. 한날, 한시라도 빨리 하는 게 좋아. 그래야 심장이 사니까.”

혈관이 막히면 심장이 멎는다. 심장이 멎은 생물은 살 수 없다. 생물이라? 흔히 경제는 생물이라고 합니다. 막힌 혈관이 뚜렷이 보이는 심장 사진을 들여다보며 난데없이 왜 저는 한국 경제를 떠올렸을까요. 직업병이라면 이런 직업병도 없겠지요.

5년쯤 전 우리 수출에 통증이 왔습니다. 수출 단가가 급락했습니다. 한번 시작된 통증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14개월 연속 마이너스, 역대 최장입니다. 10년 전 5% 넘게 늘던 소비는 2%대로 주저앉은 지 몇 년 됐습니다. 기업 매출은 지난해엔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습니다. 총체적 협심증. 한국 경제가 멈춘 겁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경제의 심장으로 가는 주요 혈관 10개(제조업 가동률, 수출 물량·단가, 소비·생산성 증가율 등)가 모조리 막혔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세계 경제가 어렵고, 중국이 쪼그라들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구조개혁을 안 했기 때문입니다. 산업도 기업도 오래되면 낡고 병듭니다. 수시로 약물 치료나 외과 수술을 해줘야 합니다. 그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안 했습니다. 그 결과 병이 골수에 찼습니다. 500대 기업의 10%(111개)가 벌어들인 돈으로 빌린 이자도 못 갚는 좀비 기업입니다. 누군가 칼을 들고 피를 흘리며 환부를 도려내야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그저 미루고 덮고 떠넘기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문제는 이것입니다. ‘내 임기 중엔 안 된다(Not in my time)’는 이른바 ‘님티족’이 정·관·재계에 널렸다는 겁니다. 지난 정부의 실세 한 분은 STX·동부·동양 등의 구조조정 요구에 대해 “이 정권에선 안 된다”며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부도 다르지 않습니다. 돈을 풀고, 부동산을 띄우는 마약 치료에만 집중했습니다. 하다하다 안 되니 지난해 말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산업별 구조조정 계획을 한 차례 내놓기는 했습니다. 그나마 시한도 방법도 기준도 없었습니다.

주무부서인 금융위원회도 미적거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구조조정 전문기업 유암코에 “속도를 안 낸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게 고작입니다. 그러니 작년 말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일몰로 폐지됐을 때 “국회가 법을 안 통과시켜서 구조조정을 못 한다”고 아우성을 친 게 다 쇼였다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총선의 계절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총선이 코앞이라 구조조정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합니다. 정치권은 오로지 공천, 공천, 공천입니다. 경제를 가끔 말하기는 합니다만, 온통 총선용 퍼주기뿐입니다. 구조조정을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대통령도 ‘경제살리기법’만 말할 뿐, 힘든 수술을 견디자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야당 압박용 아니냐고 의심받는 것입니다. 이래서야 20대 국회가 열릴 때까지 4~5개월은 또 허송하게 생겼습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은 5조원 넘는 적자를 냈습니다. 수술을 미룬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관계자들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되레 영전한 사람도 꽤 됩니다. 대우조선 같은 회사가 널렸습니다. 경제의 협심증이 그만큼 깊고 위중합니다. 자기 혈관이 막혔더라도 대통령·관료·국회의원·기업인이 과연 이렇게 보고만 있었겠습니까. 경제의 심장이 멈추면 국가도 멈춰섭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정재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