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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유산] 아이가 뛰는 인생, 부모가 대신 뛰겠다 나서지 마라

다큐멘터리 제작자 윤태옥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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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옥씨가 가장 좋아하는 두 아들의 사진. 윤씨는 “먼 곳을 바라보는 두 아들의 옆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내 품을 떠나 자신의 길을 향해 떠날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공부 못한다 혼내는 대신 난 어땠나 돌아봐
이사 세 번 간다고 자식이 맹자가 되진 않아
귀한 청소년기 들들 볶으며 낭비하지 말아야


자녀와 대화가 어렵다면 함께 여행해 보세요
혼자 보내는 것도 좋아, 스스로 성장할 기회
부모가 키운다는 건 착각, 옆에서 지원할 뿐 



두 아들을 키우며 그는 언제나 ‘내가 아이들 나이 때 어땠나’라는 생각을 했다. 형편없는 성적을 받아와도,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해도 혼내기보다 그 생각을 먼저 했다. 중국을 여행하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책을 쓰는 윤태옥(56)씨의 얘기다. 그는 칼럼 ‘요상한 아빠’로 화제를 모았다. ‘뻔한’ 정답이 아닌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사이다’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축구 선수는 아이다. 부모는 아이가 골을 넣으면 손뼉 치고, 못 넣으면 아쉬워하면 된다. 대신 뛰겠다고 나서면 축구가 깨진다”고 말한다. 


부모가 인정해 줘야 자존감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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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옥씨는 아이들에게 늘 여행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함께 여행했다. 사진은 1989년 여름 지리산 노고단에서 두 아들과 함께한 모습.

윤태옥씨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무언가 결정하는 데 익숙했다. 아버지는 지방 공사판을 돌며 막노동을 했다. 어머니는 홀로 서울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6남매를 키웠다. 윤씨는 형들이 다 혼나도 그냥 넘어가는 막내였다. 공부는 제법 잘했다. 중학교 때까지 전교 2등을 도맡아 했고 중3 마지막 시험 때는 전국 평가 시험에서 1등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대신 검정고시를 택했다. 학교와 교사에 실망했고, 집안 형편은 어려웠다.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막내가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더니 집안 사정을 생각해 학교를 건너뛰었다”며 칭찬했다. 윤씨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뿌듯했다. 그렇게 3개월 만에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다시 1년 6개월간 대학 입시를 준비한 끝에 같은 학년 친구들보다 1년 먼저 대학에 입학했다.

어머니는 늘 아들의 결정을 지지했다. 윤씨는 “부모님은 내가 고등학교를 포기한 것부터 대학 진학, 결혼 등 내 멋대로의 선택을 흔쾌히 인정해주셨다”며 “그게 제일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대학 포기 후 요리 공부한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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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경영’이라는 계획을 세운 큰 아들 두영씨가 미국 유학 떠나던 날 공항에서 촬영한 가족 사진.

결혼 후 가정을 꾸린 윤씨는 두 아들을 얻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바쁜 아빠였다. M.net 편성국장으로 일할 땐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11시나 돼야 집에 들어왔다. 쉬는 날에도 회사에 일이 생기면 5분 안에 도착해야 했기에 회사가 있던 청담동 인근인 삼성동에 살았다. 두 아들 두영(32)·채영(28)씨에겐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아빠였다.

 그랬던 윤씨가 아들과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는 큰아들 두영씨가 힙합바지를 사고 싶다고 했다. 윤씨는 고민하지 않고 “사라”고 말했다. 대신 “네 돈으로 사라”는 조건을 달았다. 윤씨는 “네 돈을 아껴야 하니까 내가 옷 잘 사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가족이 함께 이대 앞 옷가게에 가서는 여러 가게를 돌며 협상과 흥정을 통해 원하는 바지를 원하는 가격에 사는 법을 알려줬다. 윤씨 조언대로 아들 두영씨는 원하는 힙합바지를 살 수 있었다.

윤씨의 자녀 교육은 자녀를 혼내는 대신 더 좋은 방법을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아들 두영씨는 “성적 때문이든 다른 일 때문이든 아버지에게 혼난 일이 없다”고 했다. 윤씨는 “머릿속으로 ‘내가 그 나이 때 어땠나’를 생각하니 아이들의 행동 중 이해 못할 게 없었다. 서로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교감하고 나면 굳이 대화를 안 해도 서로 대화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두영씨가 고등학교 2학년때 “학교를 그만두고 대학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대화를 청했고 윤씨는 “그러라”고 했다. 속이 상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무엇을 할지 중요하니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계획을 세우라”고 조언했다.

두영씨는 스스로 직업전문학교를 찾아가 입학 허가를 받았고 광고디자인을 배워 자격증도 땄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니 대학 진학도 꿈꾸게 됐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서 두 번 실패한 두영씨는 다시 군 제대 후 외식 경영을 공부하겠다는 꿈을 찾았고 현재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

 
책임 없는 행동까지 받아주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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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옥씨는 2006년부터 중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다큐멘터리를 찍고 책을 낸다. 20년 넘게 입어온 양복 대신 등산복, 패딩 점퍼, 등산화에 익숙해졌다. 윤씨는 “아이는 부모의 품을 떠나며 조금 더 큰다”고 말한다.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두 아들을 응원하며 늘 함께한다는 걸 이야기했다. 김경록 기자

그가 두 아들의 모든 행동을 이해해 준 것은 아니었다. 일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했다. 두영씨는 “어릴 때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아버지에게 얘기했는데 아버지는 내게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나서 뭘 했느냐고 물었다. 잃어버리고 나서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였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 대한 꾸중이었다.

윤씨는 어린 시절부터 자식에게 조건 없는 지원을 하지 않았다. 두영씨는 “아버지는 늘 내가 무언가를 갖고 싶다고 하면 ‘그 반을 네가 마련해라. 그러면 도와주겠다’라고 하셨다. 어떤 것도 100% 지원해 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자식이 바라면 부모가 뭐든 해주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웠을 만도 한데 두영씨는 “서운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져야 할 태도를 배웠다”고 했다.

중국에서 고등학교·대학교를 나온 작은아들 채영씨는 한국에서 IT 회사에 다닌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그는 지금도 꼬박꼬박 생활비를 낸다. 윤씨는 “결혼할 때도 축의금 100만원만 주겠다”고 공언했다.

 
부모가 100% 지원할 건 여행·독서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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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가족이 함께 미국 데스밸리 여행 당시 모습. 왼쪽부터 큰아들 두영씨, 아내 김현란씨, 작은아들 채영씨.


윤씨가 자녀들에게 100% 지원하는 예외 품목이 있다. 바로 여행 경비와 책값이다. 윤씨는 “학교는 사회적인 강제 독서 시스템, 공부는 책 속의 여행, 여행은 길 위의 학교”라고 정의했다. 두영씨가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내건 조건도 독서였다. 윤씨는 “대학이라는 곳은 강제로 책을 읽는 곳이다. 네가 대학을 안 간다는 건 교과서를 버리는 거지, 책을 버리는 건 아니다. 책과 신문은 꼭 읽으라”고 했다. 어떤 책을 읽을지는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다.

대학에 떨어지고 군대에 간 두영씨는 그곳에서 1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책을 읽게 된 건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다. ‘과연 아버지가 독서에 그렇게 큰 가치를 두는 이유가 뭘까’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부터 심리학, 당시 유행했던 성공학책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두영씨는 “책을 읽으며 한 간접 경험이 인생의 심지를 두껍게 해줬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본 것이 값진 경험이 됐다.

윤씨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여행과 독서는 취미가 아닌 삶의 기본”이라고 강조해 왔다. 숨쉬는 것을 취미라고 적지 않듯 취미란에 여행과 독서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 기본이기 때문에 언제든 부모는 그 비용을 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도 여행은 인생 제2막을 열어줬다. 2006년부터 중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다큐멘터리를 찍고 자신의 블로그 왕초 윤태옥의 왕초일기(blog.naver.com/kimyto)에 꾸준히 여행과 자신과 가족의 일상을 소개하고 있다. 『중국식객』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등 중국의 역사, 문화 관련 책도 여러 권 냈다. 올해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다닐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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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녀와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들이 많은데 나는 그들에게 여행을 가라고 말한다. 큰애가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2주 정도 시간이 있어서 함께 여행을 갔다. 일본 후지산에 갔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의식적으로 ‘대화를 합시다’라고 하는 건 노사 관계에서나 하는 거다. 부자가 ‘자, 대화 좀 하자’고 시작하면 5분 안에 할 말이 없어진다. 아빠가 뭐라고 얘기하면 애들은 알겠다고 답한다. 그건 아니다. 부모 자녀의 관계도 연애할 때처럼 해야 한다. 함께 놀아야 한다. 여행이 그런 걸 만들어준다. “우리 여행 가자”고 말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같이 가야 한다. 마주 보면 얘깃거리가 없지만 같은 곳을 보면 할 얘기가 많아진다. 아이들만 여행 보내는 것도 좋다. 아이는 부모 품을, 집을, 나라를 떠나면 조금 더 큰다.”

-아이들 성적이 안 좋으면 실망스럽지 않았나.

“아이들의 성적은 썩 뛰어나지 않았다. 큰애는 성적이 하위 50%에서 탈출한 적이 별로 없었던 거 같다. 이 아이를 들들 볶아서 열심히 밀어붙였으면 어디까지 갔을까. 상위 20%? 10%? 거기까지 가봤자 뭐가 됐을까. 1%가 아닌 것은 같다. 그렇게 애쓰느라 시간과 힘을 낭비하고 좋은 경험을 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건 잘못된 거다. 그러다 보면 본인과 가족, 사회 모두의 행복 총량이 줄어든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나는 그런 점에 무감했다. 큰애는 유치원 안 보내고 스포츠를 가르쳤다. 유치원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게 싫었다. 지금도 선행학습에 반대한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갈 때 미리 라면 끓여 먹고 가면 맛이 있겠나. 선행학습은 합리적이지 않은 것을 뻔히 알면서 남들이 한다는 이유로 다 함께 불합리한 걸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기 주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성공 스토리에 휘둘리지 않는다. 이사를 세 번 간다고 모든 사람의 자식이 맹자가 되지 않는다. 성공 방정식? 그런 건 없다. 그건 마케팅 슬로건일 뿐이다.”

-자식 키울 때 가장 하기 쉬운 착각은 뭐라고 생각하나.

“자식을 키운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각이고 함정이다. 아이는 키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크는 것이다. 부모는 조력자일 뿐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클지 부모는 모른다. 더군다나 학원 선생님이 어떻게 아나. 학원에 돈을 가져다줘도 아이는 고마운 걸 모른다. 아이가 원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가 콕 집어 돈가스를 사달라고 할 때 사주면 고마워한다. 그러나 학원에 50만원을 내고 상담을 하면 아이는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부모는 “내가 너를 위해 얼마를 줬고 어떻게 했는데 너는 왜 못하냐”고 한다. 내가 키운다고 생각하니까 머리가 아픈 거다. 애가 크고 있는데 지원하는 것뿐이다. 아이가 축구 선수라고 가정해보자. 축구 선수가 골 넣으면 손뼉 치고, 못 넣으면 아쉬워하면 된다. 내가 아이 대신 골을 넣겠다고 뛰어나가면 축구가 깨진다.”

-무조건 그냥 놔두면 되는 건가.

“그건 아니다. 선을 그어주고 그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둘째는 내성적이고 모범생 스타일이다. 고등학교 때 중국 베이징으로 유학 가 친한 후배 집에서 하숙했다. 그런데 금요일 날 후배집에 전화했더니 애가 아직 안 들어왔다더라. 월요일 날 아침까지 안 왔다는 얘길 듣고 바로 비행기를 타고 가 아이가 있는 학교로 갔다. 아이 점심시간쯤 도착해 교무실로 가서 아이를 호출했다. 교무실에 들어온 아들이 날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집으로 데리고 와 앉혀놓고 30분 정도 훈계했다.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네가 네 스스로 생활을 잘 관리하면 좋겠다. 내가 너를 쫓아다니면서 잔소리할 생각은 없다. 네 인생이니 네가 관리해서 잘하라고 말했다. 그 후로 아들은 스스로 자기 생활을 잘 꾸려나갔다.”

-아들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을 꼽는다면.

“크게 아프지 않고 자신의 몫을 평균치 정도는 하면서 사는 그 자체가 고맙고 자랑스럽다. 유치할 수도 있지만 큰아들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갔는데 아들이 운전하는 차 뒤에 앉아 편하게 여행할 때 기분이 좋았다. 아빠·엄마 생일이라고 돈을 보내주는데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을 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부모의 자랑거리가 아니다. 엄친아 얘기 많이 하는데 사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허상을 두고 밖에 나가 자랑하고 싶어하는데 그걸 안 해야 한다. 그게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 아이는 어쨌든 60%는 골칫덩어리고 40%의 행복이다. 내가 부모한테 그랬듯 똑같다.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가 문제라는 것도 잘못이다. 반대다. 우리 애가 문제인 것이다. 우리 애는 잘못 없고 남이 잘못됐다고 하니까 사회가 불행해지는 거다. 나는 다 잘했는데 쟤 때문에 사회가 잘못된 거다라는 것과 같다. 알고 보면 모두 함께 그렇게 만든 거다.”

-요즘 아이를 키우는 다른 부모에게 조언한다면.

“먼저 10대 초·중반에 아이를 내보내라. 걱정은 어차피 부모의 몫이다. 부모 마음은 자식 때문에 속상해하는 총량이 정해진 것 같다. 20대 이후에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아이들이 아빠·엄마를 일방적으로 용서하기 때문이다. 철이 들어서라거나 부모의 교육 방식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다. 자녀의 10대, 그 귀한 시간을 ‘키운다’고 낭비하지 말고 좋은 부모, 신나는 자녀로 살기 바란다. 지리적으로 한국에 잡아두지 마라. 세상은 넓다. 아이들을 내보내면 행복의 총량이 증가한다. 사고 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각자 팔자다. 데리고 다니고 심지어 품고 살아도 사고 날 일은 난다. 큰애는 고3 때 고시원으로 이주했고 작은애는 중학교 졸업하고 베이징으로 갔다. 문제없이 잘 컸다. 학교 안 가고 홈스쿨링을 하든, 여행을 떠나든, 애들은 애들 스스로 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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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옥은

1960년 서울 출생
   84년 성균관대 사회학과 졸업
   93~2000년 M.net 편성국장, 기획부장
2001년 팍스넷 팍스TV 총괄 부사장
2001~2005년 크림엔터테인먼트 총괄 부사장
2007년~2008년 팍스인슈 대표
2009년~현재 다큐멘터리 제작, 와이더스케이프(중국 인문다큐 전문 제작사) 대표
○ 존경하는 인물: 호치민(권력을 가졌으나 국민에게 겸손했던 사람)
○ 내 인생을 바꾼 책: 박한제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
○ 좌우명: 지속 가능성. 요즘 10년은 ‘지속 가능한 여행’, 앞으로 10년은 ‘지속 가능한 감사’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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