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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의 건축, 예술로 읽다] 문화 공간이 된 컨테이너, 예술은 반전이다

SJ 쿤스트할레 

수송용 컨테이너 28개로 만든 대안공간
현대미술처럼 고정관념 깨
여행과 일상의 경계에 선 듯한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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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논현동 도산공원 사거리 근처에 있는 SJ 쿤스트할레. 이곳은 실제 화물선에 실리는 컨테이너 28개를 가공 변형해 쌓아 올려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2009년 플래툰 쿤스트할레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지난해 4월 이름과 외관의 색을 바꿔 재개장했다. 김경록 기자


컨테이너는 원래 화물 수송을 목적으로 만든 규격화된 금속 상자다. 하지만 최근엔 문화 공간, 쇼핑몰, 주택 등 다양한 건축 공간을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얼마 전 광진구 자양동 건대입구역 근처에 독특한 풍경의 쇼핑 공간이 세워졌다. 200여 개의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쇼핑몰 ‘커먼그라운드’다. 항구의 야적장을 연상시키는 컨테이너 더미 속으로 특별한 공간을 원하는 쇼핑객들이 몰려든다. 투박하고 가설 창고 같은 컨테이너 공간에 대체 어떤 매력이 있어서 그럴까.


독일 문화그룹 플래툰, 2009년 논현에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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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는 원래 화물수송을 목적으로 하는 금속 상자를 말한다. 항구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컨테이너.

컨테이너는 원래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만든 물건이다. 효율적으로 설계된 이 상자는 묵직한 표피와 단단한 물성을 갖고 있다. 험한 여행에도 끄떡없을 에너지, 자유로운 방랑자적 기질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컨테이너로 지은 공간이 우리에게 신선함을 주는 이유 역시 원래 쓰임새에서 비롯된 특성에서 유발된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여차하면 통째로 옮기거나 해체할 수도 있다. 유명 컨테이너 건축들이 주로 젊은 아티스트를 위한 공간, 개방형 문화 공간, 최신 트렌드의 쇼핑 소비 공간으로 사용되는 이유도 이런 특성과 맥을 같이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컨테이너 건축은 공사장 임시 사무소나 무허가 창고 등 별 볼 일 없는 용도로 쓰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양한 컨테이너 공간들이 지어지고 있다. 그 출발점은 2009년 4월, 논현동 골목에 지어진 복합 문화 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 시작한다.

‘쿤스트할레’는 ‘다양한 예술 활동을 전시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짙은 카키색 컨테이너 28개를 쌓아서 만든 이 공간은 독일의 하위문화 커뮤니케이션 그룹 ‘플래툰’(platoon)의 기획으로 독일 베를린에 이어 서울에 두 번째로 지어졌다. 플래툰은 세계 곳곳 수천 명의 비주류 예술가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치는 집단이다. 컨테이너의 물성은 이런 하위 문화적 특징을 잘 반영한다.

전시회·공연·시상식·파티·벼룩시장 등의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플래툰 쿤스트할레는 지난해 4월 ‘SJ 쿤스트할레’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운영 주체가 바뀌고 카키색이었던 외관이 백색으로 바뀌었다. 땅값 비싼 강남 한복판에서 6년간이나 버티며 서브컬처 아지트로 활약하던 예전보다는 좀 더 강남 지역에 어울리는 세련된 느낌으로 변했다. 예전만큼 낯설지 않고 지역에 좀 더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공간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변기를 작품으로 낸 마르셀 뒤샹이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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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의 ‘샘’

컨테이너로 지은 이 건축물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예술가가 있다. 100여 년 전 변기를 예술이라고 우겨서 유명해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다. 1917년 어느 날, 뒤샹은 상점에서 구입한 변기를 ‘리처드 머트’라는 가명으로 뉴욕의 미술전에 출품한다. 작품명은 ‘샘’(fountain). 전통적 사고에 젖어있던 기존 예술계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었다. 뉴욕의 예술계는 대략 ‘이건 뭐지?’ 하는 냉소적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혹평과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것이 도화선이었다. 예술을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회화란 ‘이러이러해야 한다’, 조각이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전통적 사고에서 조금씩 벗어난 것이다. 공장에서 제작한 기성품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예술이 될 수 있게 된 마당에 예술의 경계는 의미가 없었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졌다.

이어 등장한 앤디 워홀은 뒤샹으로부터 촉발된 새로운 장르를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파고든다. 워홀이 내놓은 연이은 작품들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다 못해 예술 자체를 무의미한 장난처럼 보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이 예술을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선택’의 문제로 정의했다면, 워홀은 원본에서 무한히 복제된 이미지(통조림, 코카콜라, 메릴린 먼로 등)를 통해 원본과 무엇이 다른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었다. 워홀은 뒤샹의 ‘창조하지 않고 이미 있는 것을 선택하는’ 개념을 자신의 스타일로 전환해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어떤 물건이 원래 용도가 아닌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인다면 이 물건은 과연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이때 예술은 ‘OO은 OO다’라는 고정 관념으로부터 ‘OO은 ??다’의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는 과정이다. 누군가가 선택한 물건 하나가 원래 쓰임새가 아닌, 생각도 못한 쓰임새가 되는 사건을 상상해보자. 만약 그 누군가가 상상하는 것이 혹시 ‘건축’이나 ‘공간’ 같은 조금 크고 복잡한 대상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논현동 SJ 쿤스트할레는 ‘창조하지 않고 이미 있는 것을 선택하는’ 뒤샹의 전복적 사고와, 반복되는 복제품을 쌓아 예술로 만든 워홀의 위트를 연상케 한다.

SJ 쿤스트할레에 사용된 컨테이너는 실제 화물선에 실리는 컨테이너를 가공 변형한 것이다. 컨테이너의 길이는 국제 규격대로 10피트(3m), 20피트(6m), 40피트(12m)고, 폭과 높이는 일부 변형했다. 이런 컨테이너 28개를 쌓았다.

일부 컨테이너의 벽과 바닥은 제거하고 문이나 창을 내기도 했다. 쓰임새에 따라 어떤 컨테이너에는 바닥을 뚫어 아래·위 공간을 연결하는 계단을 설치했고, 공중을 가로지르는 브리지나 작은 방들을 연결하는 복도를 기능적으로 배치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을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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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 본 SJ 쿤스트할레 모습. 김경록 기자


서브컬처 아지트 넘어 강남 주류 문화 포용

원래 이 공간의 정체성은 서브컬처(subcult ure)가 담고 있는 메시지 ‘일상과 예술 간의 자유로운 소통’이 펼쳐지는 장소였다. 서브컬처란 기성 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바탕으로 한다. 권위·규율·고정관념을 비틀고 새로운 시각과 개념을 발견하고, 일상의 활력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문화운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SJ 쿤스트할레는 예전처럼 비주류 문화 아지트에 머물지 않고, 강남의 보편적 주류 문화까지 담을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주말 이른 아침, 이곳을 찾은 방문자는 도시의 폭력적 소음과 풍경에서 벗어나 이국적 공간 안에서 잠시 눈을 감을 수 있다. 이 공간으로부터 확장된 어떤 풍경을 상상해보기 위해서다.

낯선 나라로 실려 가기 위해 넓은 항구에 놓인 컨테이너들, 그 위로 작렬하는 태양의 열기와 비릿한 내음, 여유로운 물결의 잔상이 차례로 겹쳐진다. 고리타분한 일상이 활기 넘치는 여행의 순간으로 바뀌면서, 일상을 구축하고 있던 벽의 두께는 헐거워지고 방문자는 어떤 경계선 위에 서 있는 듯한 체험을 한다.

SJ 쿤스트할레는 안과 밖, 일상과 여행, 컨테이너와 건축, 기성품과 작품 사이에 서 있다. ‘샘’ 이란 이름의 변기만큼 ‘쿤스트할레’라는 이름의 백색 컨테이너 더미도 제법 예술적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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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건축가 최준석(45)은 건축사사무소 NAAU 대표다. 주택, 어린이집, 기업사옥 등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삼육대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출강 중이다. 『서울건축만담』 『어떤건축』 등의 건축 에세이를 펴냈다.

※모든 공간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건축, 예술로 읽다’는 건축물에 스며 있는 예술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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