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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우물 안 개구리…외부서 ‘정직한 중개인’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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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그 이사장은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캐나다를 지목하고 “30대 초반인 김정은과 40대 초반인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만나면 서로 얘기가 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중앙포토]


앞을 가늠하기 힘든 격랑에 휩싸인 한반도 정세를 누구보다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미국인이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 지부장으로, 주한 미 대사로,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으로 한국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도널드 그레그(88) 태평양세기연구소(PCI) 이사장이다. 지난달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16년 PCI 빌딩 브릿지스 어워드’ 시상식에 참석한 그를 만나 최근의 한반도 정세에 대해 물었다.

[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도널드 그레그 태평양세기연구소(PCI) 이사장


- 한반도 정세가 악화일로에 있다. 일차적 책임은 물론 북한에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현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우선 궁금하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상상력 있는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모두 강경한 사고의 틀에 갇혀 있다. 파국으로 귀결되는 것이 차라리 자신에게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지금 각자 취하고 있는 일련의 조치들로 현상을 타개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나 루빅의 큐브를 붙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 김정은의 무모한 도발에서 모든 게 시작됐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겠지만, 지금 자기 손에 쥔 카드를 가장 능란하게 구사하고 있는 사람은 김정은이다. 그러나 김정은도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너무 막 나가고 있다. 최근 평양에 다녀온 여러 미국인의 증언에 따르면 사회적·경제적으로 북한이 상당히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농민들에게 작물의 3분의 1을 직접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김정은은 북한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나름 긍정적인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4차 핵실험을 하고, 바로 뒤이어 장거리 미사일 발사까지 한 것은 분명히 너무 나간 것이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어느 의미에서 그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 그는 다른 종류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비판자가 아니라 조언자로서 그에게 솔직한 얘기를 해줄 외부인이 필요하다.”

 - ‘정직한 중개인(honest broker)’ 말인가.

 “바로 그거다. 그런데 지금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북한 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은 ‘블레임 게임(blame game)’을 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탓을 하고, 중국은 미국 탓을 한다. 김정은은 누구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김정은은 영리하지만 자신이 가진 패 이상으로 ‘오버플레이(overplay)’를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누군가 그에게 가서 솔직하게 얘기를 해줘야 한다.”

 - 무슨 얘기를 한단 말인가.

 “예컨대 이런 얘기다. ‘자, 당신이 나라 형편이 나아지게 하려고 애쓰고 있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핵 문제에 진전이 없으면 그런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금 당장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게 아니다. 미국과 일정한 신뢰가 쌓일 때까지 비핵화 문제는 뒤로 미루더라도 비확산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바로 대화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믿을 만한 외부의 중재자가 김정은을 만나 이런 얘기를 해야 한다.”

 - 누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하나.

  “나는 남북한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양쪽에 대해 잘 아는 러시아 사람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에게 김정은이 누구와 기꺼이 얘기를 할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아주 좋은 질문’이라며 전직 미 대통령인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을 꼽았다. 나는 중재외교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 캐나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캐나다의 전 총리였던 레스터 피어슨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 이집트를 프랑스와 영국이 공격하면서 촉발된 ‘수에즈 사태’ 당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선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 사태 때는 캐나다 외교관들이 중간에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시 총리였던 피에르 트뤼도는 뛰어난 외교관이기도 했다. 그의 아들이 현재 캐나다 총리인 쥐스탱 트뤼도다. 김정은은 30대 초반, 트뤼도는 40대 초반이니 서로 얘기가 통할 수 있다. 새로운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낡은 사고로는 어떤 진전도 이룰 수 없다. 기진맥진할 뿐이다. 그동안 해온 대로만 하는 것은 한 여성과 끝없이 춤을 추는 거나 마찬가지다. 파트너를 바꿀 때가 됐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 내에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시도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나.

 “없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힐러리 클린턴이 차기 미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에 대한 접근법에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힐러리의 임기 초에 올 수 있다고 본다. 힐러리는 미국이 가진 힘을 새롭게 조직해 북한과 새로운 종류의 대화를 하자고 손을 내밀 수 있다.”

 - 오바마는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북한 문제를 방치해 왔다. 그렇게 한 진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오바마 1기 백악관에는 북한을 제대로 알고 전담하는 사람이 없었다. 중국을 담당하면서 북한까지 담당했다. 북한이 몇 가지 거친 행동을 하자 다들 북한을 악마화하고 김정은을 미친 아이 취급했다. 나태하고 술이나 마시는 젊은 친구인데, 걱정할 게 뭐냐는 식이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이란에는 손을 내밀어 결실을 이뤄내는 뛰어난 외교 업적을 쌓았다. 쿠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대해서도 똑같이 한다면 공화당 진영에서 ‘이란과 쿠바만으로도 잘못이 충분한데 북한에까지 손을 내미는 건 완전히 미친 짓이다’는 엄청난 비난과 반대가 쏟아질 것을 우려해 아무것도 못한 것이다.”

 -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 중국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중국에 대해 대북 원유 공급을 중단하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중국은 거부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를 다 사용하지 않는 것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은 북한의 내부 붕괴도 원하지 않지만 외부 압력에 의한 붕괴도 원하지 않는다. 그럴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내가 그 입장이라도 그럴 것이다.”

 -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국 배치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북한을 핑계로 실제로는 중국을 겨냥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사드 배치를 강행해야 한다고 보나.

 “안보와 국익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배치할 수 있다고 본다. 그걸 누가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한국이 책임져야 한다. 내 생각에 박근혜 대통령은 아마 강행할 것이고, 그로 인해 대중(對中) 관계에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김정은은 그런 상황을 반길 것이다.”

 -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 이후 박 대통령은 대북정책 기조를 강경일변도로 급선회했다. 개성공단을 전면 폐쇄한 데 이어 심지어 북한 정권의 붕괴 가능성까지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선회를 어떻게 보나.

 “아주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2002년 국회의원 신분으로 북한을 방문, 김정일을 만나고 돌아온 박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가 ‘미래를 봐야지 과거를 봐서는 안 된다’고 한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후 코리아소사이어티나 스탠퍼드대에서 연설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에 대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실망스럽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 박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귀하는 ‘그는 아버지의 머리와 어머니의 가슴을 동시에 물려받았기 때문에 한국 정치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판단이 틀렸다는 뜻인가.

 “완전히 잘못 판단했다. (한국 국민에게) 사과한다.”

 - 미국은 각종 전략자산을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보내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한반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나.

 “그렇게 보지 않는다.”

 - 그럼에도 미국은 왜 하는가.

 “통념에 따라 늘 하던 대로 하는 것뿐이다. 사고에 상상력이 부족하다 보니 그렇게밖에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드를 만드는 회사가 있고, 그걸로 엄청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군산복합체 말이다. 수완이 뛰어난 외교관이 아니라면 통념의 틀을 깨는 ‘아웃오브박스(out of box) 싱킹(thinking)’을 못하고, 그러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Asian Rebalancing)’ 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의 도발을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시각이 있다. 이 의견에 동의하나.

 “중국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북한의 4차 핵실험 직전, 비핵화와 평화협정 문제를 놓고 미·북 간 물밑대화를 했었지만 결렬됐다는 미 언론 보도가 있었다. 비핵화와 평화협정 중 어느 것이 먼저라고 보는가. 아니면 중국의 ‘병행론’이 맞다고 보나.

 “비핵화를 중심 의제가 아니라 의제의 일부로 하는 직접 대화 용의를 미국이 북한에 먼저 표명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핵과 미사일 실험을 강행했다. 이것은 김정은의 명백한 실수다. 그렇다고 당장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김정은은 절대 그렇게 못한다. 만일 그렇게 하면 북한이 지도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김정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진짜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 핵의 확산 가능성이다. 핵물질을 손에 넣고 싶어하는 돈 많은 아랍인이나 무슬림 테러 단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비핵화도 좋고, 평화협정도 좋지만 그 전에 우선 급한 것이 비확산이다. 그런데 그 얘기는 안 하면서 미국과 한국은 비핵화 얘기만 하고 있다.”

 - 차기 미 대통령은 누가 될 걸로 보나.

 “힐러리 클린턴이다.”

 - 누가 되는 것이 한국에 가장 좋을 것으로 보나.

 “말할 것도 없이 힐러리다.”

 - 북핵 문제의 해결책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에 대한 북한의 ICBM 위협이 현실화할 경우 ‘핵을 가진 북한’보다 차라리 ‘핵을 가진 통일한국’이 낫다는 주장이 미국에서 나올 수 있다는 미 전문가 일각의 견해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는 미국으로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핵무장은 문제를 오히려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아직 북핵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미국과 북한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심정으로 대화다운 진짜 대화를 한다면 평화적 해결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믿는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레그 이사장은 …

1927년 뉴욕 출생. 51년 윌리엄스 대학 졸업. 31년간 미 중앙정보국(CIA) 근무. CIA 한국지부장(73~75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 NSC 정보국장. 조지 H W 부시 부통령 외교안보보좌관. 주한 미 대사(89~93년).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93~2009년). 2002년 첫 방북. 현재 태평양세기연구소(PCI)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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