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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내 아이, 염려보다는 이해를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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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지난달 마음치유학교에서는 ‘명절이 두려운 싱글 남녀들을 위한 치유’라는 주제로 의미 있고 마음 따뜻한 시간을 가졌다. 주로 30대인 싱글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은 명절 때 지방에 계신 부모님 댁을 내려가거나 아니면 집으로 친척들이 오는 것이 좀 두렵단다. 왜냐면 오랜만에 만난 어른들은 “서른이 넘었는데 왜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니?” “너는 좀 운동부터 해서 살을 빼야겠다” “사촌동생은 벌써 사회인인데 너는 언제까지 취업 준비할 거니?”와 같은 ‘염려’의 말들을 하기 때문이다. 보통 그런 이야기를 하는 어른 입장에서는 내 자식이나 조카아이를 위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본인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느낌보다는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틀에 왜 너는 아직 못 맞추고 사느냐고 닦달하는 잔소리로 들린다.

 사실 부모나 친척들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성년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본인이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그것이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남들이 말하는 결혼적령기에 결혼하고 싶었지만 연애가 잘되지 않았고, 운동을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습관화가 되지 못했으며, 본인도 빨리 직장 생활을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고배를 마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과 가족에게 많이 죄송하다. 부모님께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 삶을 살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면목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미안한 마음, 자기 스스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한 마음을 이미 가지고 있는데, 그 심정은 헤아려주지 못하고 오랜만에 봤다고 충고부터 하려고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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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최근에 읽고 있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에서도 보면 저자 신영복 선생님께서도 지금 젊은이들과 비슷한 심정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1972년, 저자 나이 30대 초반에 당신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보면 ‘염려’ 대신에 ‘이해’와 ‘대화’를 좀 해주셨으면 하고 바란다. 아버지는 무기수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 아들이 걱정돼 “집안 걱정 말고 몸조심하여라”는 말씀을 자주 편지에 하셨나 보다. 하지만 아들 신영복 선생님 입장에선 몸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은 본인도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 그런 이야기 말고 아버지 생활 주변의 이야기라든지 아니면 아버지께서 최근에 읽으신 글들에 대한 소견을 말씀해 달라고 부탁한다. 더불어 아버지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사상과 개성을 가진 한 사람의 청년으로 이해”받고 싶다는 간청이 들어 있다.

 이처럼 자식이 부모로부터 염려나 기대가 섞인 말보다는 이해의 따뜻한 시선을 바라는 것은 비단 요즘 젊은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금의 부모 세대도 젊었을 때는 역시 자신의 부모들이 걱정하는 잔소리가 버거웠고 자신을 자식으로만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독립된 인격체로 대해주길 바랐었다. 그런데 막상 부모가 되고 보니 내 아이는 나와 쉽게 분리될 수 없는 ‘분신’으로만 느껴질 뿐 독립된 인격체로 잘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들어도 내 아이는 결국 아이일 뿐 나이에 걸맞은 대화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내 아이의 행동을 정말로 변화시키고 싶으면 염려의 말, 걱정의 잔소리보다는 부모로부터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때 아이 스스로가 알아서 부모가 걱정하는 부분을 조절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아동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부모의 걱정하는 말은 일방적이고 지시적이어서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는 데 반해, 내가 부모로부터 이해받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 굳이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가 변화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공부는 하지 않고 매일 아이돌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쏟는 사춘기 아이가 있다고 치자. 이런 아이에게 부모가 “너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만날 아이돌 뒤꽁무니만 쫓아다니고 준 용돈은 사진 사고 음반 사는 데 다 쓰면 어떡하니? 계속 그러면 학교 간 사이에 아이돌 사진 싹 버리고 용돈도 안 준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하자. 그러면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는 대신 더 격렬하게 반항하고 더 밖으로 돌게 된다. 차라리 “엄마도 어렸을 때 너처럼 멋진 오빠들 많이 좋아하고 따라다니고 그랬어. 공부하는 거 숨 막히고 답답하지. 그 멋진 오빠들 보면서 잠시 쉬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주면 어떨까? 엄마는 맨날 뭐든 하지 말라고 하거나 아니면 ‘공부, 공부, 공부 아니면 돈, 돈, 돈’ 이야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내 마음을 이해해주네, 라는 마음에 집을 좀 더 편안하게 느끼고 예전보단 좀 더 부모랑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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