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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떨치기 힘든 아이돌 오디션 프로의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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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우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TV의 스타는 완성품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진다. 프로그램과 시청자의 상호작용에 더해 인터넷·언론과 SNS까지 가담한다. 특히 쌍방향 소통 체계를 통해 대중의 참여가 확대되고 결정권이 강화되면서 문화산업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흥행 공식을 찾아내야 했다. 대중을 끌어들이는 여러 시도가 이루어져 온 와중에 최근 방송을 시작한 ‘프로듀스 101’은 그 결정판이다.

 대중의 결정권 강화가 문화산업에는 시련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으로 활용되었다. 시청자의 눈앞에서 시간을 두고 성장한 스타는 그 탄생 과정 자체가 하나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되고, 팬들과 정서적으로 밀착되어 더 오래 사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스타 발굴 방식의 계속된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변화는 미인 선발 대회에서 나타났다. 한때는 국가대표 미인처럼 여겨지던 미스코리아 대회가 밀려나면서 상업성을 전면에 내세운 수퍼모델 대회가 그 대안처럼 등장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미스코리아의 도태가 여성의 상품화에 대한 비판 여론 때문이 아니라 여성을 상품화하는 감각이 뒤처졌기 때문임을 나타낸다. 수영복을 입혀 놓고 품위를 내세운다거나 누가 우승하면 좋겠느냐는 물음에 “옆에 언니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가식을 대중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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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의 참여 메커니즘을 활용한 것이 바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가수나 연기자 지망생들이 시청자의 눈앞에서 발단-전개-위기-절정을 거쳐 마침내 우승에 이르는 과정 안에는 수많은 사연이 담기게 되고, 시청자와 공유하게 된다. ‘슈퍼스타K’에서 대국민투표를 도입하고, 악마의 편집과 참가자의 불우한 사연에 집착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시청자들은 편집된 화면에 몰입하고 진한 감정 이입을 했다. 하지만 아마추어 참가자들의 흥행력은 금세 한계에 달했고, 톱10의 미래조차 대중의 눈에 뚜렷하게 잡히지 않았다. 대중의 감수성은 다시 한번 변화를 원하는 상황이 되었다.

 산업계는 ‘K팝스타’와 ‘식스틴’ 등의 실험을 시도했다. 3대 기획사를 내세운 ‘K팝스타’는 대중음악판 취업 프로그램처럼 와 닿았지만 여전히 아마추어 속에서 원석을 찾는 연장선 위에 있었다. ‘식스틴’은 특정 기획사 내의 데뷔 프로젝트였다. 참가자들은 이미 상당히 훈육된 연습생인 만큼 높은 수준의 경연을 보여 주었다. 팬들은 비록 투표를 하기는 해도 근본적으로 기획사 내부의 사업에 대해 구경하는 자 이상이 되지는 못했다.

 ‘프로듀스101’은 두 가지 요인, 즉 대중의 참여와 훈육된 연습생들의 수준 높은 경연을 결합시킨 대중음악 산업계의 응답이다. 크고 작은 기획사들에 소속된 연습생 101명 가운데 최종 11명이 프로젝트 팀으로 데뷔하는 방식인데, 그 투표권은 오로지 ‘국민 프로듀서’들에게만 있다. 연습생들은 노래와 춤, 외모, 그리고 인간성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마치 천국의 선녀와 요정처럼 시청자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들의 생존 여부를 가르는 절대적 기준은 데뷔다. “데뷔만 해라. 오빠가 다 바쳐서 키워 준다” “데뷔해서 활동하는 모습 너무 보고 싶다” 등 팬들의 열망도 거기에 집중된다. 매회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탈락의 위기에서 구원될 때 보이는 그들의 눈물에 시청자들은 청년실업 상황의 아픔까지 얹어 공감의 눈물을 쏟아 내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 홈페이지에는 연습생 개개인에 관한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제공되어 있다. 여기서 눈 맞춤 공연영상과 개인 퍼포먼스 영상을 살펴보고 순위 변동까지 확인하고 나면, 일반 시청자였던 사람도 ‘나의 소녀’를 위해 한 표 행사하고 싶은 열망이 일게 된다. 참여욕구를 추동해 내는 TV와 인터넷 간의 유기적인 조응체계는 정말 감탄스럽다. 대중의 참여는 이처럼 어떤 육성 장치의 결과물이고, 따라서 팬이란 가장 잘 훈육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중의 결정권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악마의 편집에서 이미 그 위력이 알려졌지만, ‘프로듀스 101’에서도 연습생들의 방송 노출 권한은 제작진에게 있다. 대중들은 연습생들이 가혹한 경쟁 속에 상품으로 제조되고, 대중은 팬 육성 장치에 의해 휘둘린다고 깨달을지 모른다. 물론 그런 깨달음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난 뒤에도 우리는 ‘프로듀스 101’의 매혹 속으로 또다시 빠져들 것이다. 그러고는 나의 소녀들을 위해 이른바 ‘광클’(열성적인 투표)을 해댈 것이다. 돌아보면 유권자의 투표행위가 늘 역사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었다. 그에 비해 문화산업은 대중의 취향변화에 꾸준히 적응하며 새로운 포맷을 개발해 왔다. 그 집대성의 현 단계라 할 ‘프로듀스 101’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은 대중이 역사의 중심에서 밀려난 시기인 것 같다는 느낌이다.

손병우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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