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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뿌리’ 대대로 전해 내려온 심수관 가문


ㅣ 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15대 심수관이 꺼내 보인 조선시대 망건. 1대 심수관 심당길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끌려올 때 갖고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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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없는 동네 옆집 아저씨의 얼굴이었다. 일본 가고시마(鹿兒島) 미야마(美山) 마을에서 만난 15대 심수관(沈壽官) 심일휘(56) 선생은 어딘지 낯이 익었다. 덥석 손을 잡았다. 거칠고 뭉툭한 손이었다. 처음 보는 일본인에게는 결례였겠지만, 일본인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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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통 가마는 조선의 가마를 쏙 빼닮았다. 조선의 도예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이 가마가 증명한다.


심수관. 도자에 무지해도 한번쯤 들어본 이름이다. 한국의 도자 명인은 몰라도,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의 사연은 안다. 수만 명에 이르렀다는 조선 도공 중에서 여태 제 가문의 이름을 지키며 도자를 빚는 집안은 딱 두 곳뿐이다. 하나가 아리타(有田)의 이삼평 가마고, 다른 하나가 여기 심수관 가마다. 이삼평 가마는 중간에 200년 가까이 맥이 끊겼지만, 심수관 가마는 불이 꺼진 적이 없다. 무엇보다 심수관 가마는 지금도 일본 도자시장에서 명품 백자 가마로 명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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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귀신면. 16세기 조선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진 목제 가면이다. 초대 심수관이 갖고 온 것으로 추정된다.

 심수관 가문이 고마운 건,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집안의 뿌리를 잊지 않아서이다. 초대 심수관 심당길(?∼1628)은 1598년 전북 남원성 전투에서 포로로 붙잡혀 끌려왔다. 우리는 ‘심당길’로 알고 있지만, 조선에서 그의 이름은 심찬이었다. 심찬은 포로로 잡힌 신세를 한탄하며 일본에서 아명 ‘당길’만 썼다. 현재 심수관 가문은 전북 남원시는 물론이고 경북 청송군하고도 교류를 맺고 있다. 심수관 가문이 송소고택으로 유명한 청송 심씨 집안이다. 이 인연으로 청송 주왕산 아래에 심수관도예전시관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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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이다. 꽃망울 터뜨린 홍매나무 위로 봄비가 떨어졌다.


무슨 심사였을까? 15대 손이 한국과 인연을 줄줄이 읊을 때 불쑥 질문을 던졌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물건이 있나요?”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15대 손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자기와 상자로 겹겹이 싼 물건 두 개를 꺼냈다. 하나가 빛바랜 백자였고, 다른 하나가 이 망건이었다. “조선에서 갖고 왔다는 물건입니다. 대대로 전해오고 있지요. 좀처럼 안 보여드리는 건데….”

 조선에서 도공은 천민 신분이었다. 일본에 끌려와서는 예술가로 살았다. 특히 심수관 가문은 막부 시대 무사 계급을 인정받았다. 무엇이 그토록 사무쳤던 걸까? 고향? 핏줄? 뜨거운 무언가가 복받쳤다. 한참 말을 잃었다.
 

 ◇ 용어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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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 미야마 마을에 있는 심수관. 정문에 들어서면 돌하루방이 제일 먼저 손님을 반긴다.


 1. 심수관
 심수관은 대를 이어 이름을 물려 받는다. 아리타의 이삼평이 14대까지 이어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초대 심수관의 이름은 심당길(?∼1628)이다. 심수관은 12대 손(1835∼1906)의 이름이다. 12대 손에 이르러 심수관 가마는 크게 융성한다. 1873년(메이지 6년) 오스트리아 빈 만국박람회에 6척이 넘는(약 190㎝) 대화병을 출품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시카고ㆍ파리, 필라델피아 만국박람회에도 심수관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심수관의 도자는 일본의 문화를 상징하는 예술작품으로 인식되었다. 심수관 가마는 15대 손까지 이어져 왔으며, 현재 25세의 16대가 수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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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도자기다. 작품 이름은 ‘금수 참새민화 장식품’. 12대 심수관이 1880∼1900년 제작한 작품이다.


 2. 사쓰마 야끼
 일본 사쓰마 지역의 도자기를 가리킨다. 사쓰마(薩摩)는 지금의 가고시마(鹿兒島) 지역을 가리킨다. 조선 도공은 일본 규슈 곳곳에 정착했지만, 조선 도공의 흔적은 규슈 북쪽의 아리타, 규슈 남쪽의 가고시마(사쓰마) 크게 두 지역에서 발견된다. 심당길을 비롯한 조선 도공을 사쓰마 지역으로 끌고 온 인물이 사쓰마 지역의 번주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1535∼1619)다. 1597년 8월 13일 남원성 전투에서 승리한 뒤 시마즈 요시히로는 남원성 외곽 만복사 뒤편에 살던 도공 80여 명을 사쓰마로 보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임진왜란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들어봤을 이름이다.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의 조선 함대를 격파한 왜장이 시마즈 요시히로였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의 왜장도 시마즈 요시히로였다. 일본에서 시마즈 요시히로는 용맹한 장수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무장이었음에도 다도에 조예가 깊었다고 전해진다.
 
3. 아리타 야끼
 아리타 야끼의 역사를 알려면 이삼평 가마의 역사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마침 2015년 11월 일본 규슈관광추진기구의 초청으로 아리타 야끼의 고장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었다.  관련 기사가 week& 2015년 11월 27일자 커버스토리로 소개되었다.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라.
 [관련 기사 1]  일본 규슈에 간 조선 도자기
 [관련 기사 2]  일본 규슈의 도자기 명소 탐방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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