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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알린 AP특파원 집 ‘딜쿠샤’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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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테일러가 지은 저택 ‘딜쿠샤’. 서울시는 딜쿠샤를 2019년까지 복원하기로 했다. [자료 서울시]


서울 종로구 행촌동 1-88번지 언덕에는 고풍스러운 붉은색 서양식 저택이 자리 잡고 있다. 영국과 미국 양식이 혼합된 방식으로 지어졌다. 지하 1층·지상 2층 총면적 624㎡ 규모다. 일제 땐 서울에서 가장 큰 서양식 개인주택이었다. 오래전부터 행촌동의 특이한 집이라 주민들 사이에선 ‘은행나무집’으로 불렸지만 누가, 왜 지었는지 아는 이가 없었다.

 1990년대 서울시가 조사에 나서 집터의 기초에 새겨진 ‘DILKUSHA 1923’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베일에 싸였고 집의 정체도 미스터리로 남았다.

 의문이 풀린 건 2006년, 미국인 브루스 테일러가 방한하면서였다. 그는 “이곳은 내 아버지 앨버트 테일러와 가족이 살았던 ‘딜쿠샤’다. 딜쿠샤는 힌두어로 ‘이상향’ ‘희망의 궁전’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1919년 일본의 압제에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항거했던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의 행적이 80여 년 만에 재조명되는 순간이었다.

 원래 테일러는 광산업에 관심이 많은 사업가였다. 1919년 고종의 승하 소식이 필요했던 AP통신사가 그를 특파원으로 특채했다.

이후 테일러는 3·1운동과 민족지도자 33인의 재판 과정,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일본의 강압적인 식민 지배 상황을 지속적으로 취재해 보도했다. 3·1운동 소식을 알릴 때는 총독부 검열을 피하기 위해 독립선언서 등 주요 자료를 동생 빌 테일러에게 넘겨 출국시키기도 했다.

그는 1923년 딜쿠샤를 짓고 가족들과 살았으나 1942년 태평양전쟁 와중에 일제에 의해 추방됐다. 주인이 사라진 딜쿠샤는 한동안 자유당 조경규 전 의원이 소유했다. 그는 1963년 부정축재자로 지목돼 재산이 몰수됐는데 그 직후 딜쿠샤도 국유화됐다. 이때부터 딜쿠샤는 방치됐다. 현재 장애인 등 사회경제적 취약계층 12세대 23명이 무단 거주하고 있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까지 딜쿠샤를 복원해 시민들에게 개방하겠다고 26일 밝혔다. 거주자들 이주 문제는 문화재청·종로구 등과 협의해 해결키로 했다. 또 딜쿠샤를 국가문화재로 등록하고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까지 복원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회복시키기로 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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