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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청춘 날개 달아주다, 면접 정장 대여 김소령…청각장애 22명 듣는 기쁨, 보청기 선물한 안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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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옷장의 김소령 대표는 “취업 준비로 힘든 학생들을 위해 정장 구매에 대한 부담이라도 덜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오종택 기자]


옷 빌려주는 ‘열린옷장’ 대표

[연중기획 매력시민] 세상을 바꾸는 컬처디자이너


22일 오후 2시 서울 광진구 화양동 ‘열린옷장’ 대기실. 10여 명의 대학생이 앉아 있었다. 모두 취업 면접을 위해 정장을 빌리러 온 학생들이다. 이들은 직원의 도움을 받아 키, 가슴둘레 등 신체 치수를 쟀다. 그 다음 취업 목적과 사이즈에 맞는 정장을 빌려갔다.

 ‘열린옷장’은 취업준비생들에게 소액의 대여료를 받고 정장을 빌려주는 대여점이다. 재킷·바지·치마 1만원, 셔츠·블라우스 5000원 등 세탁비 정도만 내면 3박4일 동안 옷을 빌릴 수 있다. 1000여 벌의 정장과 넥타이·벨트 등 3500여 점의 액세서리가 대여 가능하다.

 이곳의 옷과 소품들은 대부분 기증받은 것이다. 열린옷장은 기증받을 때 옷에 대한 사연과 응원 메시지 등을 손편지로 받는다. 김소령(45) 대표가 기증자들이 보낸 손편지를 보여줬다.

전업주부가 돼 회사 다닐 때 입었던 정장을 기부한 여성, 불의의 사고로 회사를 그만두면서 정장을 모두 기부한 직장인, 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 남편이 입었던 정장을 기부한 아내 등 사연이 다양했다.

 옷을 빌려 입은 사람이 남긴 답장도 있다. 지난해 4월 열린옷장에서 정장을 빌려 입은 이주찬씨는 기증자 한기열씨에게 “평상시 옷을 너무 못 입어 욕을 먹었는데 기증해주신 옷을 입고 영화 ‘킹스맨’의 주인공처럼 이미지가 확 달라졌다. 덕분에 용기 내 면접을 잘 봤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손편지를 썼다. 모든 사연은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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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옷장은 2012년 7월 문을 열었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김 대표가 2011년 민간연구소인 ‘희망제작소’에서 운영하는 ‘소셜디자이너스쿨’에 참여한 게 계기였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 조마다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발표했는데, 그때 김 대표가 발표한 게 열린옷장이었다.

 “평소 취업으로 고생하는 학생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 났어요.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뭔가에 홀린 듯 회사를 그만두고 뛰어들게 됐죠.”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옷장에서 잘 입지 않는 정장들을 골라내는 일이었다. 친구와 선후배 옷장에서 잠자던 정장도 받아왔다. 그렇게 10여 벌이 마련되자 홈페이지를 열고 대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2~3일에 한 명꼴로 옷을 빌리러 왔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이들이 늘었다. 기부와 도움의 손길도 이어졌다.

 김 대표는 표준 사이즈를 벗어나는 정장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기증받은 옷으로는 모든 사이즈를 구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이즈 130의 남성 양복 상의 , 여성복 사이즈 44보다 더 작은 허리 22인치짜리 치마도 만들었다. 열린옷장은 앞으로 옷 사진을 모두 홈페이지에 올려 지방에서도 택배로 옷을 빌릴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옷을 통해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위축된 표정으로 열린옷장을 찾은 구직자가 맞는 정장을 입고 밝은 표정으로 당당히 면접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글=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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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와 나눔 문화를 확산시키는 다리가 되고 싶다”는 안성민씨. 수화로 “사랑해요”를 외치고 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헬스 코치 출신 ‘나눔의 달인’

서울 서초동 장재식골프클럽에서 경영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안성민(38)씨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체대를 졸업한 안씨는 제대 후 7년 동안 스포츠센터 헬스트레이너로 활동했고, 서른두 살부터는 경영 쪽으로 업무를 바꿨다. “수입의 10% 정도를 봉사활동에 쓴다”니, 삶을 송두리째 바쳐 남을 돕는 사례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주변에서 ‘나눔의 달인’으로 소문난 봉사 전문가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그 덕분에 서울 은평구 관내에서 보청기가 필요한 어린이 전원이 보청기를 갖게 됐다. 서울농아인협회 은평구지부 김은정씨는 안씨를 두고 “뭘 해야 한다고 얘기하면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을 찾아 데리고 온다”면서 “참 신기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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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는 어려서부터 남을 돕는 데 관심이 많았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걸음이 불편한 외할머니와 어린 시절 함께 산 것도 영향을 미쳤다. 고1 때 버스에서 현금 400만원이 든 지갑을 주워 신고했던 경험이 본격적인 선행 활동의 출발이다.

“지갑 주인이 학교로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하면서 학교에 알려졌어요. 전교생 2000여 명 앞에서 상을 받았죠. 좋은 일을 하는 게 나한테도 큰 기쁨이 되는구나 깨달았어요.”

대학에 진학한 뒤론 장애 어린이가 있는 복지관·어린이집 등을 찾아가 생활체육과 스트레칭을 가르치는 봉사를 했다. 사회복지에 대한 전문 지식의 필요성을 느껴 사이버대학에서 학점이수제로 사회복지학사를 취득하기도 했다.

ROTC 출신 장교로 군 복무를 하면서도 봉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소속 대대 와 인근 장애인재활원을 자매결연해 청소나 빨래 등 봉사활동을 하는 신병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는 “ ‘건강해서 군 면제 못 받았다’던 신병들의 불평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서울농아인협회 은평구지부와의 인연은 2009년 시작됐다. 함께 일하는 헬스 트레이너들과 함께 일일찻집을 운영해 수익금으로 3명의 청각장애 어린이에게 보청기를 마련해줬다.

“보청기 한 대 가격이 300만∼500만원 정도예요. 보청기를 선물받고 눈물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몇 백만원에 아이 하나 몇 년 공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일회성 행사로 끝낼 수가 없었죠.”

지난해까지 은평구의 청각장애 어린이 22명에게 보청기를 전달했다. 재원을 그가 모두 감당한 것은 아니다.

“기회 되는 대로 주변에 제안했을 뿐이에요. 헬스트레이너로 활동하며 부유층 고객들을 많이 알게 된 게 큰 도움이 됐지요. 대부분 흔쾌히 나서주셨어요. 이젠 내가 중간에 없어도 농아인협회와 직접 의논해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시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는 “이렇게 나눔 문화가 확산된다는 게 큰 보람”이라고 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어려운 이웃을 향해 있다. “이젠 독거노인 돕는 데 나설 계획”이라 고 말했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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