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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 무서운 파도…밀항 아픔 겪은 열두 살, 가슴에 품은 그림엔 ‘비행기 조종사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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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쭈그리고 앉아 가슴 한쪽을 내놓고 젖을 먹이던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아이를 잡고 있는 두 손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낡은 스웨터는 늘어질 대로 늘어진 상태였다.

[함께하는 목요일] 난민촌서도 아이들 꿈은 큰다


시리아에서 남편과 함께 다섯 아이를 데리고 탈출한 마나르 카리프(28). 그는 터키와 그리스를 지나 몇시간 전에 이곳에 왔다고 했다.

16일 오후 그리스·마케도니아 국경의 게브겔리아 난민 경유 센터에서 그의 남편과 네 아이는 종이 그릇에 담긴 국수를 급하게 들이켰다. 일회용 포크를 든 아이들의 손이 새까맸다.

마나르는 막내 사미안이 태어나자마자 피란길에 올랐다. 인터넷을 통해 탈출로를 찾고 가구·그릇을 팔아 돈을 모았다고 했다. 그는 “피란길에 오른 아이들이 납치된다는 얘기를 듣고 남편과 내 몸에 다섯 아이를 끈으로 동여매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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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아·이라크에서의 분쟁이 지속되면서 마나르 같은 난민들은 발칸반도를 통해 유럽으로 간다. 지난해 그리스와 불가리아 사이의 육로가 차단되면서 난민들은 배로 그리스로 밀입국한 뒤 마케도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로 이동한다. 난민 대부분이 원하는 최종 목적지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다. 길게는 3000㎞에 이르는 고난의 여정이다.

 에게해는 이들 난민이 맞닥뜨리는 첫 죽음의 관문이다. 지난해에만 4000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지난해 9월 터키 보드룸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아일란 쿠르디(3)도 이곳에서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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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마케도니아 국경 게브겔리야난민 경유지에서 지난 15일 난민 어린이들이 봉사자들과 공놀이를 하고있다(맨 위). 세르비아의 아다세비치 지역에서 만난 시리아 난민 아흐마드 마흐무드는 “구호단체와 유럽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고 말했다(가운데). 게브겔리야 경유지에서 새 옷을 입은 생후 3개월의 사미엔 카리프와 백민경 기자(아래).

세르비아·크로아티아의 국경지대 아다세비치(세르비아)에서 만난 이라크 소년 라흐드 카릴(12)은 “안개가 심해 보트가 바다 한복판에서 멈췄다. 한 시간쯤 지나면 보인다던 섬이 다섯 시간이 지나도 보이지 않았다. 높은 파도가 칠 때마다 바닥에 엎드려 기도했다”고 말했다.

 목숨을 건 모험을 하는 이들을 돕는 이는 소수의 현지인과 국제 비영리조직(NPO)의 활동가·봉사자다. 라흐드는 “땅에 내리자 몸을 말리기 위해 불을 피웠다. 불빛을 보고 해안경비대가 우리를 착한 사람들(NPO 봉사자들을 지칭)에게 데려다 줬다. 젖은 옷을 갈아입도록 하고 아이들은 따로 모아 노래를 부르며 놀게 했다”고 기억했다.

라흐드는 “아마도 무서운 바다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하려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현지 NPO인 테르데좀므(TDH), 라스트라다(La Strada), 아티나(ATINA)와 함께 난민들이 지나는 주요 거점마다 경유 센터를 만들고 음식·신발·옷·위생용품 등을 제공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이를 위해 약 2억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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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그림 일기를 보여주며 활짝 웃는 이라크 소년 카릴.


 마케도니아의 타바노브체 지역에서는 NPO의 긴급 구호활동이 벌어졌다. 기차에서 수백 명의 난민이 내리자 자원봉사자들이 건포도·빵·물·물수건 등이 든 봉투를 나눠주고 아이와 여성은 별도의 공간으로 인도했다. 어린이 난민들은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장시간 걷기 때문에 폐렴·습진·영양실조를 겪는다.
 

<b>죽음의 바다</b> 한밤에 터키 해안에서 그리스 섬으로 가는 고무보트에 탔다. 20명이 정원인데 35명이 탔다. 한 시간이 지나면 도착한다고 했는데 안개가 심해 길을 잃었다. 5시간이 지나도 육지가 보이지 않았다. 안개 때문에 터키 경찰이 우리가 탄 보트를 보지 못하고 지나가서 기뻤다. 불빛이 보이지 않게 모두 보트 바닥에 엎드렸다. 경찰의 눈을 피해 해안이 아닌 바위에 줄을 묶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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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이나 조난을 겪은 아이들은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TDH 소속 심리상담사인 소냐 드미트리 오스카(30)는 “아이들이 배로 바다를 건너는 그림을 가장 많이 그린다. 집이 폭격당하는 그림이나 총격전을 그리기도 한다.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 제대로 된 심리치료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난민들은 피란 내내 잘 곳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경유 센터에서도 나무 의자 위에 몸을 누이거나 담요를 둘둘 만 채로 길 위에서 잠든다. 대부분 버스·기차로 이동할 때 눈을 붙인다.
 
▶관련 기사
① 난민 어린이 1만명 어디로 갔나? 성노예로 팔리기도
② 시리아 난민 아이들이 그린 그림엔…"바다 건너는 배, 총격전"


 여권이나 신분 증빙 서류가 없는 난민들의 탈출로는 더욱 험난하다. 베오그라드(세르비아) 경유 센터에서 만난 세 딸의 아버지 아베드 카하드(39)는 공습으로 시리아의 집이 모두 타버려 여권을 챙겨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마케도니아에서 세르비아로 밀입국했다. “밤길에 여덟 시간 가량 숲을 걸어 통과하자 4인용 차량에 성인 9명, 아이 6명이 탔습니다. 내 무릎 위에는 다른 알제리인이 앉았고, 아이들은 앞좌석 아래 좁은 공간에 엎드려서 열 시간가량을 참아야 했지요.”

그는 부인, 세 딸과 함께 이 밀입국에 4600유로를 지불했다. 그의 큰딸 알라(10)는 “의사가 돼 몸이 아픈 아빠에게 약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다. 카하드는 “어떻게든 독일에 가 아이들에게 미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베오그라드(세르비아)=글·사진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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