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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주거 난민’ 청년들이 연금을 지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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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근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가족들과 헤어진 사람들이 이곳에서 산다/ 가족들을 잊기 위해 산다/ 가족들을 잊지 못해 산다/ 가족들과 영영 헤어지기 위해 산다”.

고시원 등 떠도는 젊은이들 방치하면
국민연금의 지속성도 기대할 수 없다


 시인 차창룡은 고시원 생활을 이렇게 노래했다. 창문도 없는 고시원 방은 관(棺) 속과 비슷하다. 불을 끄고 간신히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자리에 누우면 고단한 세상과 영원히 결별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학 4학년 때 나도 6개월간 고시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학교 인근의 고시원은 신축 건물이라 비교적 깨끗했다. 하지만 나는 그해 늦여름부터 기침감기를 달고 살았다. 창문이 없어 빛과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방은 선인장조차 말라죽을 정도로 열악했다. 그래도 견딜 만했던 것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각종 시험 합격 소식이었다. 만약 그런 희망마저 없었다면 나의 20대는 어두컴컴한 고시원 방에 갇혀버린 절망의 이미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 고시원은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갈 곳 없는 젊은이들의 주거 수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서울에 사는 52만 명의 청년(19~34세)이 1인가구 최저 주거기준 면적(14㎡)에 미달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주로 고시원, 반지하 쪽방, 옥탑방 같은 형태다. 단열·통풍도 제대로 안 되는 방인데도 임대료는 결코 싸지 않다. 고시원의 평당(3.3㎡) 월세는 15만2000원으로 강남 아파트의 평당 월세보다 비싸다. 부모로부터 독립한 젊은이들은 평균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다. 연봉이 많은 대기업에 취업하지 못하면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 미래를 위해 저축한다는 것은 제 분수를 모르는 사치에 가깝다.

 국민의당이 이른바 ‘컴백 홈(Comeback home)법’이라고 불리는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국민연금기금을 재원으로 만 35세 이하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정부 정책금리 이하로 청년희망임대주택을 빌려주겠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새누리당이 ‘포퓰리즘’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야당이 마치 국민연금을 주머닛돈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물론 국민연금기금을 나눠주기식 복지에 쓰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연기금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돈이므로 투자할 때 수익성과 안전성을 따져야 한다. 그런데 과연 청년임대주택에 투자하는 것이 수익성, 안정성을 해치는 방법일까.

 국민연금 기금은 현재 505조원을 넘어섰다. 이 중 대부분은 국공채, 대기업 주식 등 금융투자에 집중돼 있다. 저금리로 금융투자의 수익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청년임대주택은 임대료를 시세보다 싸게 책정하더라도 최소한 국공채 수익률보다는 높을 가능성이 크다. 또 청년들의 주거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실질소득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여유가 생긴 청년들의 국민연금 가입도 늘어날 것이다.

 김우창 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국민연금기금의 1%만이라도 인구투자에 배분하자고 주장한다. 인구투자의 수익률이 예상 금융투자수익률(5.5%)를 웃돈다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물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선순환 투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요즘 청년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간 ‘꼰대’ 취급받기 십상이다. 집세를 내면 숨만 쉬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까. 연금을 부어 기성세대를 부양하라는 기성세대의 요구는 꿈을 잃은 젊은 세대에겐 착취나 다름없을 것이다.

 독립미디어 ‘미스핏츠’는 대만·홍콩·일본·한국의 청년 주거를 취재해 『청년, 난민 되다』라는 책을 냈다. 맥도날드에서 200엔짜리 음료를 시켜놓고 잠을 해결하는 일본의 ‘마쿠도 난민’, 집 한 채를 여러 개의 쪽방으로 나눈 대만의 ‘타오팡’, 홍콩의 ‘큐비클’ 등 동아시아 청년들의 주거 빈곤 실태를 생생히 고발했다. 조소담(연세대 심리학과) 미스핏츠 팀장은 이 책을 기획한 의도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햇빛 드는 방에서 자고 깰 수 있는 행복. 아플 때 삼각김밥으로 때우는 게 아니라 죽 한 그릇 끓여먹을 부엌이 있는 삶. 이런 것들이 우리 청춘의 집에 있는지 묻고 싶었다.”

정철근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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