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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NIE] 개성공단 폐쇄 찬반 논쟁

강력한 대북제재 필요 vs 안보 불안만 부추겨

남북 관계가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1월 6일)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월 7일)에 대해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2월 10일)이라는 제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대해 찬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강력한 대북제재만이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강경론과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오히려 한반도 안보 불안을 더 키운 조급한 결정이었다는 대화론이 맞선다. 언론과 교과서, 각종 자료에 기초해 개성공단 중단 사태에 대해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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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성 4호


쟁점과 토론

찬성=한국 정부와 국제사회의 지속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4차 핵실험(1월 6일)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월 7일)를 감행했다. 더 이상 대화와 설득으로 북한을 움직이기는 어렵다. 강력한 대북제재가 필요하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개성공단을 통해 핵·미사일 개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해왔다. 가장 핵심적인 이해 당사국인 한국이 개성공단 전면 중단 등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반대=개성공단이 닫히면서 남북 대화 통로는 사라졌고 남북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의 도발에 대결로 맞대응함으로써 한반도에 안보 불안을 더 부추긴 꼴이다. 1990년대 중·후반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이 굶어 죽었던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화와 협상의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남북 교류를 넓히고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로 가는 올바른 길이다.


2004년 통일냄비부터 총 3조9000억원어치 생산

1998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떼 500마리를 끌고 방북하면서 남북 경제협력의 물꼬가 트였다. 그해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고,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한 측이 ‘공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개성공단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남한이 자본을 대고 북한이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남북 경제협력이다. 2003년 6월 노무현 정부 시절 1차 착공에 들어가 2004년 12월 개성공단의 첫 제품인 통일냄비 1000세트가 출하됐다.

 남북 간 긴장의 파고에 따라 부침을 겪었지만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협력의 유일한 성공 사례로 주목받으며 꾸준하게 성장했다. 2004년 첫 제품을 출하한 이후 입주 기업은 꾸준히 늘어 이번 전면 중단 직전까지 124개 기업이 개성공단에서 제품을 생산했다. 연 생산액은 2005년 1491만 달러(약 184억원)에서 지난해 1~11월 기준으로 5억1549만 달러(약 6356억원)까지 증가했다. 지금까지 누적 생산액은 31억8523만 달러(약 3조9274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남북 간 총 교역액 27억1349만 달러(약 3조3457억원) 중 99%가 개성공단에서 발생했다.

매월 임금 1000만 달러, 핵 개발비 전용 논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찬성하는 쪽은 “이제 더 이상 대화와 타협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미국 상·하원에서 지난 10, 12일 고강도 대북제재 법안이 통과되면서 국제사회 내 대북제재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배경이다. “박 대통령은 3년 전 3차 핵실험 때도 개성공단 싸움에서 김정은을 밀어붙였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선 5개월, 김정은은 놀랐고 공단은 정상화됐다. 김정은은 미국의 제재도 중국의 압박도 없는데 왜 물러났을까. 1억 달러 현금과 5만 명 인민의 관리 부담, 한국 정부의 일관된 자세 때문이었다.”(중앙일보 2월 12일 ‘김정은 급소 찌른 박근혜’)

 개성공단을 통해 흘러들어간 자금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국회 연설에서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통해 북측 근로자 임금으로 6160억원이 지급됐고, 이 중 상당액이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정부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논란이 일자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의혹만 있고 구체적인 증거는 없는 상황이다.

 ‘달러 퍼주기’ 논란은 역대 정권에서 반복됐던 주제다.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때 4억5000만 달러(약 5549억원)가 정상회담 성사 조건으로 북측으로 불법 송금됐던 사실이 2004년 특검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자 “금강산 관광의 대가로 지급된 달러가 핵무기가 돼서 돌아왔다”는 비판이 일었다.

개성 일대 다시 군사 기지화할 가능성 높아져

지금까지 수차례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물론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 비무장지대 지뢰 도발 등 북한의 직접적인 도발에도 개성공단만은 유지됐다. 남북 간 경제협력의 의미를 넘어서 남북 교류의 유일한 창구로 한반도 긴장 완화에 큰 역할을 해왔다. 통일을 대비하는 실험장으로서의 유무형의 가치도 높았다.

 교과서는 ‘평화 비용’에 대해 설명한다. ‘평화 비용’이란 통일 이전에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고 정착시키기 위해 지불하는 모든 비용을 말한다. 미래엔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교과서는 “평화 비용은 남북한이 지출하는 막대한 군사비와 사회적·경제적 발전 기회의 상실 등 분단 비용을 절감시키고, 국가 신인도 제고를 통한 경쟁력 강화 등 투자적 성격도 갖고 있다. 또한 통일 이후 남북한의 경제 격차를 해소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통합하는 데 소요되는 통일 비용을 줄일 수 있어 통일에 따른 충격을 완화해 준다”고 적고 있다.

 개성공단은 ‘평화 비용’의 상징적·실질적 사례였다. 2003년 6월 개성공단 착공 수개월 전까지 공단 일대는 군사기지였다. 북한군 2군단 산하의 6사단과 64사단, 서울을 타격 사정권에 둔 62포병여단이 주둔했다. 개성공단이 들어서면서 군 시설과 병력은 15~20㎞ 후방으로 물러났고 서울은 직접적인 타격권에서 벗어났다. 전문가들은 “개성공단 조성으로 서부전선을 북측으로 10㎞ 이상 밀어 올려 한반도의 긴장 완화에 큰 역할을 했는데, 이번 중단 조치로 개성 일대가 다시 군사 기지화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한다.

 언론은 대북제재의 불가피함을 인정하면서도 개성공단 폐쇄가 조급한 결정은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정부의 논리와 고충은 이해하지만 실효성과 적절성에 대해서는 의문이다…얼마간 타격은 있겠지만 정부가 기대하는 ‘혹독한’ 제재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도 개성공단이 문을 닫지 않았던 이유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반도의 장래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중앙일보 2016년 2월 11일 ‘개성공단 폐쇄 안타깝지만 북한의 자업자득이다’)

대북 외교 새 판 짜야…폐쇄 그 후가 더 중요

이번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실제 북한 당국의 자금 흐름에 타격을 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지난해 6월 발간한 ‘2014년도 북한 대외무역 동향’에 따르면 북한의 무역 규모는 76억1000만 달러(약 9조3831억원)에 달한다. 북한은 무역의 상당 부분을 광물 거래와 해외 인력 송출 등 중국에 의존한다. “북한의 가장 큰 외화수입원은 해외 인력 송출이다…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는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연간 평균 수입은 10억 달러에 달한다. 북한이 개성공단에 미련이 적은 것도 중국을 믿기 때문이다.”(중앙선데이 2016년 2월 14일 ‘중국의 제재 동참이 필요한 이유’)

 결국 중국의 동참 없이는 대북제재 효과는 요원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 발표 직후 미국은 “적극 찬성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반면 중국·러시아는 “제재 자체가 목적이 돼선 안 된다”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 평화 구축이 절실하다”는 원론적 입장에만 머무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대미 견제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속셈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자국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냉혹하게 돌아가는 국제사회 질서를 감안할 때 중국·러시아의 대북제재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는 치밀하고 다각적인 외교 전략이 시급하다.

 언론은 긴 호흡을 갖고 대북 외교의 새 판을 짜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북 정책에도 사이클이 있다. 제재 국면에선 미·중의 공조를 이끌어내 최대한 북한을 압박하는 게 맞다. 하지만 길게 보면 ‘개성공단 그 이후’도 생각해야 한다…북한 주민들에게 “왜 우리는 남한·중국보다 못살까”라는 의문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평양에 달러보다 독재정권에 대한 신앙심부터 고갈시키는 게 통일의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중앙일보 2016년 2월 15일 ‘공포와 광기의 평양 바꾸려면’)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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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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