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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전설 주희정, 그리고 할머니의 옥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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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 열 살 소년은 버스 회수권을 살 돈이 없어 2시간을 걸어서 통학했다. 부모는 집을 나갔고, 할머니가 청소일을 하며 손자를 키웠다. 친구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 갈 때, 소년은 할머니를 생각하며 죽기살기로 농구를 했다. 고려대 2학년을 중퇴하고 프로에 도전한 것도 하루빨리 할머니를 호강시켜드리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악착같이 하루하루를 달린 소년은 한국 프로농구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주희정(39·서울 삼성) 얘기다.

1997년 프로농구 나래(동부의 전신)에 연습생으로 입단한 주희정은 19시즌째 선수로 뛰고 있다. 통산 최다 출장(978경기), 최다 어시스트(5317개), 최다 스틸(1787개) 1위가 그의 몫이다. 그가 결장한 경기는 12경기뿐이다.

지난 시즌 꼴찌(11승43패)였던 삼성은 올 시즌 5위(29승25패)에 올라 세 시즌 만에 6강 플레이오프(PO)에 진출했다. 삼성이 달라진 건 SK에서 포인트가드 주희정을 트레이드한 뒤부터다. 경기당 24분27초를 뛴 주희정은 평균 5.52점, 어시스트 3.5개를 기록했고, 고비마다 3점포를 터트렸다. 이상민(44) 삼성 감독은 "주희정 덕분에 이긴 경기가 많았다"며 고마워 했다.

경기도 용인시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최근 만난 주희정은 "중학교 때 할머니와 둘이 부산의 작은 임대아파트에 살았다. 용돈 벌려고 목욕탕 청소도 했다"며 "할머니의 지병이 악화돼 약값을 벌어야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자동차 기술을 배울까 했는데 다행히 연습생으로 프로에서 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1997-98시즌 신인왕에 오른 주희정은 2001-02시즌 삼성의 통합 우승을 이끌며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았다. KT&G(현 인삼공사) 시절인 2008-09시즌엔 사상 최초로 6강 플레이오프 탈락팀 선수로서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주희정은 "프로 초창기 때 후배가 '그렇게 심하게 훈련하면 마흔 살도 되기 전에 이가 다 빠지겠다'고 걱정하다라. 이제 불혹(不惑)이 됐는데 다행히 틀니는 끼지 않는다"며 웃었다.

혈기왕성했던 주희정은 저돌적으로 골밑을 돌파하는 선수였다. 중·장거리슛을 자주 쏘지 않으니 수비수가 붙지 않았다. 주희정은 "프로 4년 차부터 슛훈련을 하루 500개씩했다. 지금까지 총 150만개 이상을 쏜 것 같다"고 회상했다. 2001년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은 뒤에는 왼손 레이업을 장착했다. 모두 지독한 노력의 결과였다.

SK에서 김선형(28)에 밀려 '식스맨'이 된 그는 삼성 이적 후 주전 포인트가드를 맡았다. 주희정은 "처음엔 자신 없었지만 과거에 썼던 농구 메모를 꺼내봤다.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한두 수를 먼저 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주희정은 "요즘도 습관처럼 야간훈련을 한다. 팀 후배 김준일(24)이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만류하더라"며 웃었다.

젊은 시절 '테크노 가드'로 불렸던 그는 요새 '아재(아저씨) 가드'로 통한다. 후배들과 친해지려고 건네는 농담이 90년대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승부욕도 옛날식이다. 경기에서 지면 분해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아내 박서인(38)씨는 "이제 안 그럴 나이가 되었는데도 승부욕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삼성은 오는 25일부터 정규리그 4위 안양 KGC인삼공사와 6강PO(5전3승제) 1차전을 치른다. 주희정은 "인삼공사는 압박수비가 강한 팀이다. 인사이드를 강하게 파고들어 동료들에게 기회를 주는 플레이를 하도록 노력하겠다"며 "6강PO 1차전을 잡으면 3승 또는 3승1패로 4강PO에 올라갈 수 있다. 4강을 넘어 챔피언결정전까지 가고 싶다. 매 경기가 내 농구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겠다"고 다짐했다.

주희정 인생의 버팀목이었던 할머니 김한옥씨는 지난 2002년 세상을 떠났다. 주희정은 "지난 1월 26일이 할머니 기일이었다. 1월에는 할머니가 아끼시던 옥반지를 내가 끼고 다닌다. 요즘도 슛을 쏠 때 '할머니! 꼭 들어가게 해달라'고 빈다"며 "이제 난 딸 셋,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부끄럽지 않은 손자이자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 체력이 닿는 한 코트에서 불꽃을 태우겠다"고 말했다.

용인=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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