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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인한 혼전 출산, 혼인 취소 사유 안 돼”

과거에 성폭행을 당해 출산한 적이 있음을 숨긴 것은 혼인 취소 사유가 안 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김모(41)씨가 15세 연하의 베트남 부인 A씨를 상대로 낸 혼인 취소 소송에서 김씨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국제결혼 중개업자를 통해 만난 김씨와 2012년 결혼해 살던 중 김씨의 의붓아버지 최모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A씨의 고소로 최씨는 이듬해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문제는 최씨 재판 중에 불거졌다. A씨는 “열세 살 때 베트남에서 남성에게 납치돼 아이를 낳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김씨는 “출산 전력을 속이고 결혼했다”며 혼인 취소와 위자료 3000만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2심은 “상대방의 결혼과 출산 전력은 김씨가 결혼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납치·강간으로 인한 출산이었더라도 혼인 전 김씨에게 알렸어야 한다”며 혼인 취소 사유라고 판결했다. 1심은 위자료 800만원을, 2심은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A씨처럼 성장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동 성폭력 범죄 피해를 당해 임신·출산한 경우 이 사실은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 비밀의 본질적인 부분에 해당한다”면서 “사회 통념상 이런 내용을 혼인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알려야 할 의무도 없고, 알리지 않은 것이 민법상 ‘혼인의 신의 성실 의무’를 어겨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를 근거로 혼인을 취소하라고 한 원심 판단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에 따르면 성폭행으로 인한 출산 경험이 혼인 취소 소송의 주요 쟁점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원은 통상 혼인이나 출산 전력을 속이고 결혼한 경우 민법상의 ‘혼인 취소 사유’로 인정해 왔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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