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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감시견과 개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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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논설위원

“내가 월스트리트 사람들과 사귀는 데 몇 년이나 걸렸는데….”

박근혜 정부 ‘마의 4년차’ 접어드는데
검찰과 언론은 제 역할 다하고 있는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룬 영화 ‘빅쇼트’의 한 장면이다. 주택시장이 무너지는 데도 부채담보부증권(CDO) 가격은 인위적으로 유지되는 상황을 보도하라는 대학 친구의 요구에 기자는 ‘그들과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영화엔 비슷한 장면이 한 번 더 나온다. S&P 담당자는 왜 신용등급을 내리지 않느냐는 물음에 속내를 털어놓는다.

우리가 AAA 등급을 주지 않으면 고객은 무디스로 간다고.”


이 장면들을 보면서 가슴에 파고든 단어는 ‘먹이사슬’이었다. 거대한 도박판에서 언론과 신용평가사가 방조범 내지 바람잡이 역할을 한 것이다.

먹이사슬의 법칙은 선명하다. 주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give and take). 주는 건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다. 받는 것은 기득권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이다. 떡고물은 경제적 이득만이 아니다. 자리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생존일 수도 있다. 피해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전가된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미국에서만 800만 명이 직장을 잃고 600만 명이 집을 잃었다고 영화는 전한다.

음습한 먹이사슬은 한국 사회에서 더 흔한 풍경인지 모른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것이다’로 밤의 헌법은 시작된다. 예를 들어 검찰 조직의 먹이사슬은 자리다. 정치권력은 승진을 고리로 수사를 지휘한다. 인사 때마다 검사들 사이엔 “무죄 많은 검사가 출세한다”는 귀엣말이 오간다. 인사권자가 ‘무죄 판결이 나올 사건을 어떻게 구속하고 기소까지 했느냐’며 능력과 충성심을 높이 산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의 얘기다.
 

판사, 변호사도 마찬가지지만 검사들은 자기가 열심히 공부해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위임해준 권한을 원래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는 거죠. 그 권한을 가지고 인사권자 입맛에 맞게 수사하고 의혹을 뭉개는 데 쓰는 겁니다.”


언론도 다르지 않다. 시장 상황이 어려울수록 정부나 기업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커진다. 독자들이 기자에게 준 사명은 비판과 감시인데 ‘먹고사니즘’과 인간관계에 발목 잡히기 일쑤다. 이렇게 서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정치권력-경제권력-검찰-언론이 맞물려 돌아가는 먹이사슬엔 송곳 하나 들어갈 틈이 없다. “워치도그(watchdog·감시견)에서 워치는 사라지고 도그만 남았다”는 개탄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한국 언론은 공정성은 굉장히 강조하지만 진실을 찾으라고는 하지 않아요. 논란이다, 의혹이다라고 퉁치고 가죠. 그리고 전부 카드뉴스나 만들고 있어요.” - 1월 17일자 미디어오늘


언론사 퇴직 후 포털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을 통해 ‘가짜 3인조 살인범의 슬픔’ 등을 보도해온 박상규 기자는 인터뷰에서 “검사 브리핑만 기다리는” 언론 행태를 지적한다. 박 기자의 말은 곧 뼈아픈 질문이다. 나는 진실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는 것으로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제 박근혜 정부 4년차다. 한보 사건, 이용호 게이트, 민간인 사찰, 파이시티…. 임기 후반이 되면 온갖 게이트가 불거져 나오고 추문이 춤을 추곤 했다. 감시견이 애완견이 되는 사이 거악(巨惡)은 담을 타고 넘어온다. 지금 검찰과 언론은 열심히 수사하는 척, 취재하는 척 하고만 있진 않은가. 파이낸셜타임스(FT) 필진인 루시 캘러웨이는 휼렛패커드 CEO 멕 휘트먼을 비판했다가 광고 중단을 시사하는 항의 메일이 날아오자 이렇게 답했다.
 

당신들은 우리 비즈니스 모델을 오해하고 있다. 우리가 제대로 된(decent) 신문인 것은 에디터들이 기사가 광고주에 미칠 영향에 대한 고려를 확고하게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이 회사에 계속 다니려는 이유이고, FT가 내게 월급을 주는 이유다.” - 2월 7일자 칼럼

 
[권석천의 시시각각] 더 보기
① 생각할 사, 슬퍼할 도
② 박근혜식 체제 경쟁에서 빠진 것들
③ 모두가 미워하니까 유죄다?

당신들 가림막 돼주는 게 우리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오. 검찰이든, 언론이든 이 정도 말을 뱉을 자존심이 없다면 직업의 가치도 지킬 수 없고 조직의 품격도 살릴 수 없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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