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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문집』목판 보물로 첫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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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문집』 경자본의 목판.

『퇴계선생문집』의 목판이 보물로 첫 지정됐다.

한국국학진흥원은 22일 한국국학진흥원이 보관 중인 본집 709장, 외집 15장, 별집 28장 등 총 752장으로 구성된 『퇴계선생문집』 목판이 보물 제1895호로 지정됐다고 발표했다. 문집의 목판이 보물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목판으로 문집의 초간본이 인출됐다. 이 목판은 본래 도산서원 광명실에 보관돼 오다 2005년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옮겨졌다. 지난해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한국의 유교책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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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으로 인출한 『퇴계선생문집』.

퇴계 이황(1501∼70)은 한국적 유학 체계를 만든 인물로 평가된다. 조선은 개국 때부터 유교 국가를 표방했다. 퇴계는 16세기 사화를 거치면서 조선에 필요한 학문이 무엇인지 고민했으며, 그 결과물이 『퇴계선생문집』이다. 이 문집은 제자들의 노력으로 퇴계 사후 30년 만에 목판본으로 발간된다.

조선시대에는 책을 만들 때 금속활자와 목판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됐다. 금속활자로 찍는 경우 판을 해체해 재사용하지만, 목판으로 찍을 때는 영구히 보관하면서 그 인물의 행적을 후대에 다시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선비들의 문집 대부분이 목판으로 판각됐다.

문집 목판을 만들 때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문집 편찬 조직을 결성하고 사림의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쳤다. 현재 전하는 문집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쳤다.

퇴계는 16세기 사림 중 우뚝한 존재였기 때문에 사후 제자들이 문집 발간을 결의하고 곧바로 편찬에 착수했다. 퇴계는 당시 조선의 학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에 『퇴계선생문집』 편찬은 사림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퇴계 사후 문집 편찬이 바로 시작됐지만 완성까지 30년이나 걸린 것도 문집 발간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진왜란이라는 시련이 끝난 지 2년 만인 경자년(1600년)에 목판이 완성될 수 있었다. 이후 조선에서 만들어진 문집은 대부분 『퇴계선생문집』의 체제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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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문집』의 펼침면.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퇴계선생문집』 목판은 퇴계의 학문적 성과를 집성한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특히 내용의 풍부함이나 분량의 방대함, 이를 편집하고 간행하는 과정에서 구축한 문집 편집의 방법과 성과는 조선 후기 문집의 편집과 판각의 전범이 됐다.

대구=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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