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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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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택(오른쪽) 전 민주당 총재가 1991년 10월 23일 민주당 서울 마포당사 현판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둘은 당시 민주당 공동대표였다. [중앙포토]


잠옷 차림의 이기택 당시 민주당 총재가 2층에서 1층 거실로 뛰어 내려왔다. 그러곤 대뜸 물었다. “진짜야? 갈 데까지 가는구만.”

자서전 탈고한 다음날 작고…파란만장 야당 인생


 20년 전인 1995년 7월 7일 밤. ‘동교동 신당 창당 추진’ 기사를 중앙일보가 가판(전날 저녁 가판대에서 파는 조간신문, 2001년 10월 폐지)에서 단독 보도한 뒤 북아현동 자택에서 이 총재가 보인 반응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은퇴 약속을 번복하고 정계에 복귀해 신당을 만든 이 사건 이후 이 총재는 제1야당 총재 자리에서 내려왔다. “3김 청산” 정치인의 대명사였던 ‘이기택’의 정치는 이때가 고비였다.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7선 의원)가 20일 오후 1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79세. 이 전 총재는 지난해 본지 인터뷰에서 자신을 “영구 야당이고, 야당 내에선 철새”라고 말했다. YS와 DJ 사이에서 ‘외길 야당’을 한 파란만장했던 정치 인생을 그렇게 표현했다.

 37년 경북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난 이 전 총재는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고려대 상대에 진학했다. 고려대 시절엔 상과대 학생위원장을 맡아 60년 4·19 혁명을 주도했다. 67년 7대 국회에 최연소(30세)로 신민당 전국구 의원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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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9월, 박정희 정부의 3선 개헌에 반대하며 김영삼 전 대통령(가운데)과 함께 거리로 나선 이기택 전 총재(왼쪽). 오른쪽은 김상현 당시 신민당 의원. [중앙포토]


 79년 신민당 총재 경선 당시 1차에서 낙선한 이 전 총재는 결선에서 YS를 지지해 당선에 기여했다. 이후 YS와 정치를 함께 했으나 90년 3당 합당 때 결별하고, 노무현·홍사덕·이철 등과 함께 ‘꼬마민주당’을 창당했다.

92년엔 DJ와 합당해 민주당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대선에서 패한 DJ가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3년 가까이 제1야당 총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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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택(맨 오른쪽) 전 총재는 1987년 5월, 민주사상연구회 사무실에서 4·13 조치 철회 등을 요구하며 15일간 단식 농성을 벌였다. [중앙포토]


이 전 총재가 민주당 총재를 맡고 있던 시절 부인 이경의 여사가 만성신부전증으로 사경을 헤매던 독립유공자의 며느리에게 신장을 기증한 일도 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어머니인 이선재 전 태광그룹 상무가 누나다.

 빈소를 찾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전 총재의 비서관으로 정치 시작)은 “양김이라는 양대 산맥 속에 고통도 많이 받고, 외로움도 많이 타고, 무시도 받고, 또 영입 제안도 받아보고…. 외길 타듯이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최근 자서전 『우행(牛行)』을 집필해왔다. 자서전 제목은 그의 좌우명인 ‘호시우행’(虎視牛行·호랑이 눈처럼 날카로운 안목을 가지고 소처럼 우직하게 나아간다)에서 따왔다.

비서실장을 지낸 박계동 전 의원은 “별세하시기 전날 밤 10시에 자서전 탈고를 마치곤 ‘아, 큰일 마쳤다’며 흡족해 하셨다”고 전했다.

 빈소가 차려진 서울성모병원엔 정의화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등 여야 정치인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장례는 4·19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지며 박관용 전 의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발인은 24일, 장지는 서울 수유동 4·19 묘지다. 유족으론 부인 이경의 여사와 아들 성호씨, 딸 우인·지인·세인씨가 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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