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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민족의 안전, 나라의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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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불안과 분노, 그리고 숙연한 결의가 국민의 인식 속에 퍼져 가고 있는 것은 한반도와 주변 국제정세가 예사롭지 않은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음을 피부로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 정전 63년, 베트남전쟁 종료 40년 만인 올 정초부터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선 듯싶은 이상기류가 한반도와 동아시아로 몰려오고 있다. 우리 민족의 생존과 안전, 대한민국과 민주사회의 안보가 중차대한 시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동서 냉전의 막이 내린 이후 평화와 공존을 지향한 세계사와 지구촌의 흐름에서 극단적 예외지대를 자처한 북한의 이탈이 드디어 위험 수위를 훌쩍 넘어 버렸다. 유엔 결의를 정면으로 무시한 1월 6일의 4차 핵실험, 2월 7일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북한 스스로가 결단의 시간이 임박했음을 내외에 선포한 도전장이었다. 북한 체제의 존립을 위해서는 핵무장한 ‘강성대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행동으로 선포한 것이다. 아무리 북한 체제의 유지가 급한 지경에 처했다고 하더라도 우리 민족의 생존과 안전을 송두리째 담보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1945년 히로시마 원폭 사상자의 10%를 넘는 수가 우리 동포였음을 기억하면서 핵무기 시대에 7000만 민족의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한반도의 비핵화 원칙이라고 다짐했던 25년 전의 합의를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체제의 보전이 민족의 안전에 우선한다는 논리는 마땅히 접어야 한다. 이에 더해 한반도에서의 핵무장화는 국제역학관계를 한 단계 더 위험한 수위로 끌고 가는, 즉 한반도를 핵전쟁터로 바꿀 수도 있다는 위험한 징조가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제정치사에서는 강대국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나 긴장상태가 중간에 위치한 주변국의 돌발적이거나 무책임한 행동을 방치한 데서 비롯된 사례를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중국에 더해 두 번째 핵보유 강대국이 되겠다고 나선 북한의 행동은 벌써 아태 지역에 제2의 냉전을 촉발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마디로 수소폭탄 실험을 자랑하는 북한의 도발은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한 실험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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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외교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국정 목표는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 촉진과 제도화다. 이는 조선조 말기와 독립운동기로부터 일관되게 전수돼 온 전통이다. 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는 상호 간 필요조건이란 명제는 안중근을 비롯한 선구자들의 일관된 입장이었으며 3·1독립선언서에서도 명확히 천명되고 있다. 이것은 중국·일본·러시아 등이 당사자가 됐던 일련의 전쟁을 경험한 데서 나온 결론이었다. 이는 어쩌면 열강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의 소산일 수도 있다. 아무튼 한국인에게는 전쟁을 예방하고 상호 협력을 제도화한 평화의 구축이 스스로를 지키는 데 더해 국제사회를 위한 민족과 국가의 숙명적 사명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냉전 이후 중국·러시아 등 모든 강대국과 호혜평등의 우호관계를 진작시키는 데 한국 외교는 전력투구해 왔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중국이 정치·경제 등 여러 면에서 초강대국의 위치에 오른 것을 한국이 가까운 이웃으로 적극 환영한 것은 당연한 행보였다. 한국과 중국이 함께 당면한 북한 핵 문제, 특히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강대국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행보에 대해 평화공존의 원칙을 토대로 출구전략을 마련해 나가길 한국인들은 기대하고 있다.

 북한의 체제 존속을 위한 이해타산 능력은 결코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될 일이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의 합리적 판단력을 저평가하는 ‘대국의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 북한 체제의 붕괴 여부는 강대국들의 우려나 정책에 앞서 북한 스스로가 선택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강대국들은 특히 중국은 전쟁 예방, 평화 촉진을 위한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며 당사국들 간에 오해가 없도록 정확한 의사소통에 진력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의 대가로 어디까지의 손실을 각오할지, 비핵화의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지를 미국은 알고 싶지 않겠는가.

 엊그제 난징(南京)대 주펑(朱鋒) 교수의 한국 정부 입장은 야당을 포함한 한국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야만 중국을 설득할 수 있다는 제언이 있었다(동아일보 2월 19일자). 그러나 어떤 정책이든 범국민적 지지를 위해서는 여러 의견을 절충할 수밖에 없는 우리 체제의 특징도 중국이 이해해야 한다. 다만 자유 수호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내하겠다는 우리의 국민적 합의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홍구 본사 고문·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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