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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리포트] 오곡밥 먹고 부럼 깨고 줄다리기 한판 벌이는 새해 첫 동네 축제

소중 친구들은 지난 설 연휴 즐겁게 보내셨나요? 친척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다 보니 길어 보였던 연휴가 어느새 지나가버렸네요. 바쁘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명절이 몇 번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옛날에는 정말로 명절이 지금보다 많았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22일, 음력 1월 15일인 정월 대보름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왜 정월 대보름을 명절로 삼았는지, 또 대보름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함께 알아보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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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명절의 날짜가 왜 매년 바뀌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매번 날짜가 달라지는 것은 음력으로 명절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 삼아 만든 달력인 ‘양력’을 사용했던 서양과는 달리 동양 사람들은 달을 기준으로 한 ‘음력’을 사용했어요. 하지만 음력은 계절을 구분할 때 양력보다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1897년 고종이 양력을 정식으로 채택하면서부터 점차 쓰지 않게 됐죠. 이 때문에 우리 민족의 생활 기준도 지금과는 달랐답니다. 일주일 7일을 기준으로 삼는 것도 양력에 따른 거예요. 우리 조상님들은 보름달이 뜨거나 지는데 걸리는 기간 15일을 기준으로 삼았죠. 그래서 새해를 맞이할 때도 음력 1월 1일부터 15일까지 15일 동안 축제를 벌이면서 노는 풍습이 있었어요.

그중 축제의 첫날인 설날이 주로 가족들이 모여 집에서 보내는 명절이었다면, 마지막 날인 정월 대보름은 마을 사람 모두 함께 수많은 놀이와 행사, 가지각색의 음식을 즐기던 보다 개방적인 성격이 강한 명절이었다고 해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정월 대보름에 대해 “이날 온 집 안에 등잔불을 켜 놓고 밤을 새우고 마치 섣달 그믐날 수세(守歲)하는 예와 같다”고 한 것을 보면 설날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의미가 큰 날이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어요. 민속학자들에 따르면 1년간 전체 세시풍속 중 대보름 하루에 관계된 것이 전체 세시풍속의 4분의 1에 달한다고 하니, 규모도 굉장하죠. 이러한 풍습들 중에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들도 많습니다.

‘이기면 풍년’ 마을 자존심 건 게임

대보름에는 주민들이 다같이 참여하는 놀이가 많았어요. 대표적인 것이 두 편을 갈라 양쪽에서 줄을 잡아당기는 놀이인 줄다리기죠. 줄다리기는 준비할 것도 별로 없고, 방식도 단순해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놀이예요. 대개 대보름 밤에 줄다리기를 했는데, 아이들끼리 하는 줄다리기와 어른들끼리 하는 줄다리기에 주민 전체가 참가해 인접한 마을끼리 벌이는 마을 단위 줄다리기도 있었어요. 특히 마을 줄다리기는 이긴 마을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어떤 놀이보다도 치열하게 진행됐다고 합니다.

차전놀이도 매년 정월 대보름에 연례행사처럼 진행되곤 했죠. 500명에 달하는 장정들이 두 패로 갈라져 나무를 베어 만든 ‘동채’를 지고 맞붙는 놀이로 규모가 아주 컸어요. 동채 위에 탄 대장의 지휘에 따라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다가 상대방의 동채를 눌러서 땅에 닿게 만들거나 상대방의 동채를 빼앗아버리는 쪽이 이기는 식으로 놀이가 진행됐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차전놀이는 일제강점기에 탄압을 받아 많은 곳에서 사라지고 지금은 안동 지방에만 전승하고 있어요.

대보름의 의미와 가장 관계가 깊은 놀이로는 달집태우기가 있어요. 달집태우기는 대보름날 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나뭇가지를 쌓아놓았다가 달이 뜨는 것에 맞춰 불을 지르고 농악을 치며 춤을 추는 놀이었어요. 여기서 밝은 보름달은 풍요를 상징하고, 쓰다 남은 나뭇가지들은 부정적인 질병이나 근심을 상징했다고 해요. 그러니 달집태우기는 부정적인 것들을 불로 모두 태워버리고 풍요로운 새해를 맞는다는 의미를 가지는 셈이죠. 여기서 태어난 것이 바로 쥐불놀이인데, 달이 뜨고 달집태우기가 시작되면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논둑과 밭둑에 쥐불을 놓아 해충과 쥐를 막았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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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뭇가지를 쌓아올려 태우는 달집태우기. 보름달은 `풍요`를, 불은 `정화`를, 나뭇가지는 `부정`을 상징한다.
2 쥐불놀이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3 가장 큰 규모의 전통 놀이 중 하나였던 차전놀이. 열기가 뜨거워 부상자가 속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도 튼튼해지고, 귀도 밝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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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는 귀밝이술, 그리고 나물과 부각을 비롯한 정월대보름 음식들.
5 부럼은 주로 호두나 땅콩과 같은 겉이 딱딱한 견과류로, 정월대보름에는 부럼을 깨물어 먹으면서 건강을 기원하고는 했다.
6 찹쌀·차조·붉은팥·찰수수·검은콩 등 다섯 가지 곡식을 넣어 풍년을 기원했던 오곡밥.

설날엔 떡국, 추석엔 송편이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대보름에는 ‘부럼’이 있어요. 부럼깨기는 날밤이나 호두, 땅콩 같은 단단한 견과류를 깨물어 이를 튼튼하게 함으로써 건강을 기원하는 풍습이에요. 평소에 먹어보기 힘든 견과류를 섭취해 영양을 보충하는 의미도 있고요. 부럼깨기는 오늘날에도 전해지는 풍습인데, 지금도 정월 대보름날에는 가족끼리 견과류를 씹으면서 건강을 비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부럼 못지않게 잘 알려진 것이 오곡밥입니다. 대보름에 먹는 오곡밥에는 곡식들이 잘 자라길 기원하는 의미가 있어요. 오곡밥은 원래는 찹쌀·차조·붉은팥·찰수수·검은콩 등의 곡식 중 5가지를 섞어서 짓지만, 실제로는 형편에 맞춰 융통성 있게 먹었던 것으로 보고 있어요. 오곡밥은 가족끼리 먹기 전에 집 안 곳곳에 두었어요. 집을 지켜주는 신들께 바쳐서 건강과 풍요를 기원했던 풍습이죠.

또 대보름 아침에 먹었던 ‘귀밝이술’이 있어요. 귀밝이술은 말 그대로 마시면 귀가 좋아지는 술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맑은 청주를 한 잔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차게 해서 마시면 정신이 나고, 귀가 밝아진다”고 해서 생긴 풍습이에요. 귀밝이술이라는 특별한 술 종류가 있는 건 아니랍니다. 이때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던 아이들까지도 찬 귀밝이술을 한 잔 마시게 했는데, 아이들은 술병에 입을 대는 것으로 대신했다고도 하네요.

왕을 구한 까마귀 이야기

정월 대보름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까마귀가 왕의 목숨을 구해 정월 보름을 ‘오기일(까마귀에게 제사 지내는 날)’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어요. 이때 까마귀를 위해 찰밥을 만들던 풍습이 지금은 오곡밥을 먹는 풍습으로 바뀐 것이라고 합니다. 유래와 풍습을 설명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아주 옛날부터 정월 대보름이 의미가 큰 날이었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고 해요.

이처럼 성대한 명절이었던 정월 대보름의 의미가 현대사회에서 약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옛날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집과 논, 마을에서 보내다 보니 이웃들이 논밭을 가꾸며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동료들이었고 친하게 지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전하면서 농민의 수가 줄어들었어요. 굳이 이웃과 교류하지 않아도 잘 먹고 살 수 있는 현대사회의 영향을 받은 셈이죠.

여기에 교통·통신도 엄청난 발전을 이루면서 먼 곳에 있는 친구들과의 교류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전화번호만 알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기차로 3시간이 걸리지 않아요. 근처에 산다고 해서 친해지기보다는, 조금 먼 곳에 살더라도 성격·취미가 맞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또 산업화·도시화로 시골을 떠난 젊은 세대가 공식 휴일인 명절에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찾아가게 됐고요. 이런 풍토가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하던 명절을 지내지 않게 되고, 설날과 추석도 가족과 친척끼리만 보내게 되는데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웃 사람들과의 관계가 정말로 의미 없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권내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설이 가족·친족 중심이라면 정월 대보름은 이웃과 마을 공동체의 행사라는 성격이 더 강하며, 오늘날 이를 되짚어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어요. 그러면서 아파트 단지에서 한 해 거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를 하거나, 최근 확산되고 있는 도시 내 마을 공동체 운동의 주요 행사를 예로 들었죠.

옛날에는 친척·가족 못지 않은 존재가 바로 이웃이었어요. ‘이웃사촌’이란 말도 있듯이 말이에요. 가족들이 함께 보내는 설날도 좋지만, 이웃들도 함께 보냈던 정월 대보름의 의미를 되새기며 어색했던 이웃에게 인사부터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가벼운 인사가 조상님들처럼 ‘이웃사촌’이 되는 물꼬를 틀 지도 모르니까요.

글=한동엽 인턴기자 han.dongyeoub@joongang.co.kr
사진=한국민속촌·한국전통문화연구소·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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