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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적 첫 메달 딴 올림픽 영웅


올림픽 영웅 김성집(사진) 대한체육회 고문이 20일 오후 4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 97세. 1919년 서울 필운동에서 태어난 김 고문은 휘문고보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골샌님’으로 불렸다. 공부만 하는 모범생으로 샌님 티가 난다고 붙여진 별명이었다. 하지만 33년 휘문고보 2학년 때 역도에 입문한 김성집은 2년 반 만에 전국대회에서 우승했다.


보성전문(현 고려대)을 졸업한 김 고문은 36년 일본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 최종예선에 참가했지만 일본의 견제로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 고인은 45년 해방이 되자 한양공고와 휘문중학교에서 역도부를 지도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역도선수론 늦은 나이인 30살, 48년 런던 올림픽 선발전에서 우승해 런던으로 향했다. 당시 선수단은 서울-부산-하카타-요코하마-상하이-콜카타-로마-암스테르담을 거쳐 런던에 들어갔다. 무려 20일이나 걸리는 살인적인 일정이었지만 김 고문은 동메달을 당당히 목에 걸었다. 대한민국 국적으론 첫 올림픽 메달이었다. 50년 전쟁이 터진 뒤 1·4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간 김 고문은 해군사관학교 공터에서 바벨과의 고독한 싸움을 계속했다. 고인은 한국전쟁 중 열린 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땄다.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2연속 메달리스트였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도 김 고문은 스포츠 행정가로 대활약을 했다. 72년 뮌헨 올림픽과 84년 LA 올림픽에선 한국선수단 단장을 맡았다. 또 최장수 태릉선수촌장으로 후진 양성에 힘써 대한민국을 스포츠 강국에 올려놓는 데 크게 기여했다.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거친 그는 2011년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에 선정됐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오이석 기자 oh.i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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