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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지도부 ‘옥새 싸움’ 조짐, 현장선 유령당원 시비

선거구 미획정 상태에서 새누리당 공천신청자 면접 심사가 20일부터 시작됐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왼쪽), 황진하 부위원장(오른쪽) 등 공천관리위원들이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서울·인천·경기 지역 공천신청자 74명을 면접했다. 서울 종로에 공천을 신청한 오세훈(맞은편 오른쪽부터)·박진·김막걸리·정인봉 예비후보가 면접 중이다. [뉴시스]


‘지도부는 이전투구(泥田鬪狗), 현장은 대혼돈’. 20대 총선을 52일 앞둔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선거구도, 집권 여당의 경선룰도 모두 오리무중이다.


당장 24일부터 중앙선관위가 재외선거인 명부를 작성해야 하지만 여야는 김무성·김종인 대표가 “29일까진 선거구를 획정하자”고 구두 합의한 게 전부다. 새누리당의 룰 전쟁은 김무성 대표와 친박계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서청원 최고위원의 정면충돌로 번졌다. 게임의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현장은 혼돈 그 자체다. 유령당원과 마구잡이 여론조사, 선거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20일 현재 선거사범은 지난 19대 총선 같은 기간에 비해 약 40% 늘었다. 혼란의 현장을 중앙SUNDAY가 들여다봤다.



#부실한 당원 명부와 유령당원 18일 당원협의회(당협) 위원장이 아닌 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이 선거운동 시작 두 달 만에야 30만원씩 내고 당원 명부가 든 USB를 받았다. 명부엔 이름도 ○○* 식으로 두 글자만 나와 있고 전화번호도 안심번호(가입자 신분 보호를 위해 통신사가 부여한 가상 전화번호)만 나왔다.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해 경선에 참가할 수 있는 책임당원과 일반당원의 구분도 없었다. 반면 현역 의원과 당협 위원장은 당원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생년월일, 성별, 주소, 추천인 등 정보가 담긴 명부를 항상 볼 수 있다. “이미 합의한 대로 일반국민 70%, 당원 30%”(김무성), “합의 안 된 지역에선 100% 일반국민 경선”(이한구)이란 주장이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 신인들은 “당원 30%가 포함되면 해 보나마나 지는 싸움”이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생일마다 축하전화를 하고 당원들과 수시로 단합대회까지 해 온 의원들과 게임이 되겠는가”(대구의 A예비후보), “문자 전송도 45자로 제한돼 자기소개와 인사말밖에 못한다”(서울 강남권 B예비후보)는 불만이 전국에서 터져 나온다.


19일 이한구 위원장이 “책임당원과 일반당원을 구분해 22일까지 재배포하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로 불만이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다. 당협 위원장이 아닌 예비후보들은 새누리당 지도부가 1월 초 경선 선거인단을 ‘당원 대 국민 3 대 7 비율’로 정하자 “당원 상대 선거운동을 위해 당협 위원장만 볼 수 있는 당원 명부를 열람케 해 달라”고 줄곧 요청했지만 중앙당은 “당원들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공개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해당 지역구에 살지 않으면서 경선 참여를 위해 명부에 이름만 올려놓은 ‘유령당원’ 논란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서울 강남 지역의 C예비후보는 “지역구의 한 빌딩이 40명 가까운 당원의 주소지로 등록돼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중앙당에 얘기했지만 ‘확인할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전 중구의 새누리당 강영환·곽영교·김세환·신진 예비후보는 “중구에만 유령당원이 300명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론 조작 논란 친박계와 비박계 후보가 격돌한 대구·경북(TK)의 접전 지역. 이 지역에서 실시된 여론조사가 최근 인터넷에서 큰 논란을 낳았다. 지지 후보를 묻는 객관식 문항에서 유력 후보인 D씨를 뺀 나머지 후보들만 등장한 데 대해 D씨 지지자들이 인터넷에 “정답을 일부러 보기에서 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조사”라는 비난 글을 쏟아내면서다.


지역의 일부 여론조사기관이 일부 후보를 배제시킨다는 논란은 최근엔 서울 마포을에서도 불거졌다. 마포을 지역 관련 조사인데도 이미 서울 용산 지역 출마를 선언한 강용석 전 의원은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유력 예비후보 중 일부를 누락시켰다고 한다. TK의 한 선거구에선 여론조사 문항에 ‘박근혜와 함께한 E후보’라는 문구를 넣자 2.3%에 불과했던 해당 후보자의 지지율이 11.2%로 뛰어올랐다는 얘기가 돌았다.


경북 지역의 한 현역 의원은 “특정 후보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일반전화를 공급하고 착신 전환시켜 인위적으로 지지율을 조작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호남 지역 더불어민주당의 한 현역 의원은 “다른 후보를 더민주 후보로, 나를 무소속 후보로 규정해 놓고 누구를 지지하겠느냐고 묻는 여론조사도 있다”고 주장했다.


선거 일정은 늦춰지는데 당원에 대한 접근은 제한돼 있다 보니 위법하거나 아전인수식 여론조사를 통한 마케팅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친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밴드’에서는 ‘F후보와 (같은 당의) G후보 지지를 물을 땐 F를, G후보와 (다른 당의) H후보를 물을 땐 H를 선택해 달라’는 글들이 떠돌고 있다. F후보 지지자들이 당내 경쟁자인 ‘G의 본선 경쟁력이 낮다’고 메시지 조작을 시도하는 것이다. 부산 사하구의 한 후보 지지자 밴드에선 ‘연령이 50대인 분들은 30~40대로 응답해라. 50대 설문이 끝난 것 같더라’는 메시지와 이에 대한 답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책임당원 데이터베이스(DB)를 갖고 있는 당협 위원장 중엔 ‘질문 대상자에게 자신의 지지 당원 DB를 섞어 조사해 달라’는 요청이 많다. 분명한 여론 왜곡이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현재 중앙선관위가 고발·수사의뢰·경고 조치를 한 위법 여론조사는 15건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2012년 19대 총선 전체 기간 26건이 발생한 것과 비교하면 초반임에도 대량의 위법 여론조사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판치는 돼지엄마 계주나 토박이 자영업자 등 골목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을 흔히 ‘돼지엄마’라고 부른다. 당원 참여 경선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출마 희망자들은 지난해 부터 돼지엄마들을 당원 모집책으로 활용해 왔다. 이 돼지엄마는 현재도 지역에서 ‘유지’로 활동하며 “○○○ 후보가 당선되면 내가 이권을 몰아줄 수 있다”며 지역의 표심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한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수도권의 한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박근혜 대통령을 앞세우면 당원들이 나를 지지할 줄 알았는데 이미 돼지엄마들에게 포섭당한 책임당원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 경선을 치르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나와도 못 이긴다”고 푸념했다.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유력한 지역에선 ‘공천 브로커’도 활개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당협 사무국장이나 책임당원협의회장, 중앙위원, 직능위원 등의 명함을 가지고 다닌다. 지역에서 성공한 자영업자나 전문직 종사자에게 “중앙당의 지시를 받고 적당한 인재를 물색 중”이라고 접근해 공천헌금이나 활동비를 요구한다고 한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이들에 대한 경계령이 발동되기도 했다.


선거구 획정 지연으로 민심도 술렁대고 있다. 서울 중구 선거구로 편입될 가능성이 있는 성동구 금호·옥수동엔 ‘금호·옥수 유권자가 중구 국회의원 선거의 대리모인가’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고양시 덕양을에 출마한 더민주 강동기 예비후보는 “일산갑의 백석동이 우리 선거구로 편입된다는 얘기가 돌자 백석동 주민이 ‘집값 떨어진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눈치가 보여 선거운동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옥새 전쟁 현장 상황은 엉망이지만 공천 규칙을 둘러싼 새누리당의 내분은 악화일로다. 양측은 모두 ‘개혁 공천’이란 명분을 내세운다. 김 대표는 이한구 위원장이 내세우는 우선추천제를 “미운 놈 쳐내고 사천(私薦)을 하겠다는 것”으로 규정하고 100% 상향식 공천만이 민주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이 위원장은 “상향식 공천은 현역 의원 기득권 지키기”라며 “정치 신인의 약점을 보완하고 여성·장애인 등 약자를 우선추천하는 것이야말로 개혁 공천”이라고 말한다. ‘더 밀리면 끝장’이라는 김 대표의 위기감, ‘전략공천을 통한 당내 친박 영토 확장’이란 친박계의 전략이 정면충돌한 모양새다.


마주 보며 달리는 두 열차의 충돌은 ‘옥새(玉璽) 전쟁’으로 흐를 수 있다. 공직선거법상 정당의 공천장엔 당인(黨印)과 당 대표의 직인(職印)이 함께 찍혀 있어야 효력이 발생한다. 우선추천이 전략공천으로 변질되고 결국 친박계에 유리한 양상으로 흐를 경우 김 대표가 직인 날인을 거부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벌써 비박계 의원들 사이에선 “김 대표가 도장을 안 찍으면 친박계 거물조차 공천을 못 받는다”는 말이 나온다.


한국 정치사엔 이미 옥새 전쟁의 전례가 있다. 2004년 총선 때 새천년민주당의 추미애 선대위원장은 조순형 대표가 추천한 중진들의 비례대표 공천을 백지화하고 자신이 선정한 ‘개혁인사’들을 공천하려 했다. 이에 조 대표가 독단으로 공천을 강행하려 하자 추 위원장 측이 대표 직인을 숨겨 버렸다. 격분한 조 대표는 직인 도난 신고를 하고 새로 도장을 파 비례대표 명단을 선관위에 제출했다. 추 위원장도 빼돌린 직인으로 다른 명단을 제출해 같은 당에서 2개의 직인으로 2개의 비례대표 명단이 나온 것이다. 논란 끝에 선관위는 조 대표의 손을 들어 줬다. 이런 해프닝 뒤 민주당은 9석만 건지며 참패했고 조 대표와 추 위원장 모두 낙선의 고배를 들이켰다.


새누리당엔 섬뜩한 교훈이다. 비박계인 김용태 의원은 “옥새 전쟁을 벌이는 지경까지 간다면 ‘선거를 망치더라도…’ 운운한 김 대표의 말처럼 진짜 선거를 망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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