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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키즈’의 샌더스 바람, 클린턴 2008년 악몽 걱정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19일(현지시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유권자 집을 방문해 대화하고 있다. [AP=뉴시스]


“힐러리 클린턴은 친구들과의 통화에서 더 이상 ‘내가 대통령이 되면’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게 마련’과 같은 철학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 ‘그동안 경선에 출마할 수 있게 도와줘 고맙다’고 말하는 등 자신만만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2008년 2월 25일자 뉴욕타임스(NYT)는 당시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수퍼 화요일(2월 5일)’ 이후 11차례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패하면서 사기가 눈에 띄게 떨어졌고, 사퇴를 예고하는 듯한 언행을 한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경선 레이스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채 안 된 시점에 클린턴 측엔 이미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요즘 클린턴 캠프는 2008년의 악몽이 재연될까 전전긍긍이다. 본선 티켓은 떼어놓은 당상인 듯했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다. 무명에 가까웠던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을 아이오와에선 간신히 이겼고, 뉴햄프셔에선 대패했다. 압도적 승리를 예상하던 네바다도 흔들리고 있다.


17일 CNN·ORC 여론조사에 따르면 네바다에서 클린턴(48%)은 샌더스(47%)에게 따라잡혔다. 지난해 12월 여론조사기관 그래비스 조사에선 클린턴(50%)이 두 배 이상 샌더스(23%)를 앞섰다. 만약 클린턴이 네바다를 샌더스에게 내어 준다면 27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 3월 1일의 ‘수퍼 화요일(12개 주 동시 경선이 치러지는 날)’도 장담할 수 없다. 클린턴이 소수 ‘마이너리티’ 유권자에게 강하다지만, ‘도미노 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클린턴 캠프 관계자는 “2008년 오바마 후보에게 당했던 연패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기억하고 있다. 그걸로 끝이었다”고 말했다.


샌더스에게도 네바다는 시험대다. 민주당이 공화당에 절대 우세한 ‘마이너리티 표밭’을 공략하지 못한다면 클린턴을 꺾는다고 한들 샌더스는 반쪽짜리 후보일 뿐이다. 2008년 존 매케인, 2012년 밋 롬니에게 승리한 오바마 대통령은 백인 득표율에선 뒤졌지만 유색 인종의 몰표를 받았다.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계의 미국 이주민) 표의 약 70%, 흑인 표의 90% 이상이 오바마로 향했다. 
다양한 인종 구성 ‘진짜 미국’ 표심의 가늠자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전국 단위의 표심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네바다 인구의 27%는 히스패닉, 사우스캐롤라이나 인구의 29%는 흑인이다. 유권자 중 백인 비율은 각각 65%, 43%다. 약 90%가 백인인 아이오와나 뉴햄프셔보다 ‘진짜 미국’의 모습에 가깝다.


지난 4일 워싱턴포스트(WP)는 ‘샌더스의 진짜 문제는 흑인과 히스패닉 표’라고 썼다. “샌더스가 유색 인종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뉴햄프셔 이후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같은 날 발표된 한 여론조사의 결과는 달랐다. 퍼블릭폴리시폴링(PPP)이 민주당 유권자 5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백인의 46%, 히스패닉의 48%, 흑인의 82%가 클린턴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샌더스의 경우 백인 38%, 히스패닉 36%, 흑인 8%의 지지를 받았다. 결정하지 못했다는 응답자는 14%였다. 호감도의 경우 히스패닉 사이에서 오히려 샌더스(71%)가 클린턴(68%)보다 높게 나타났다. 비(非) 백인 지지율이 높다는 클린턴의 강점은 오로지 흑인에게 기댄 결과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샌더스가 유색 인종에 취약하다는 우려도 절반만 사실인 셈이다.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방화벽(firewall)’ 삼아 샌더스 열풍을 막겠다는 클린턴의 계획이 네바다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샌더스는 어떻게 히스패닉 표심을 얻은 걸까. 17일 LA타임스는 ‘버니 키즈(Bernie kids)’로 불리는 젊은 히스패닉들이 네바다에서 샌더스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모 세대가 오랫동안 표밭을 다진 클린턴을 지지하는 데 반해, 80년대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는 샌더스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네바다 히스패닉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히스패닉 전체 인구 중엔 44%다.


타인종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샌더스의 진보적 공약에 매혹됐다. 클린턴은 “경제적 불평등만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단일 이슈 국가가 아니다”며 거대 은행을 해체하고 최저임금을 올리는 ‘경제 공약’에 집중한 샌더스를 공격한다. 또 실행 계획은 없는 이상주의자라 비판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이런 비판을 하는 클린턴을 ‘낡은 리더십’이라 여기고, 샌더스를 ‘롤 모델’이라 부른다.


경제는 이민 문제만큼이나 히스패닉 유권자들에게 중대한 당면 과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네바다는 금융위기를 가장 혹독하게 겪었다. 부동산 리서치 회사인 ‘리얼티트랙’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2년 2월까지 네바다의 월별 주택차압률은 전국 최고였다. 회복됐다는 실업률도 7.1%로 전국 평균(4.9%)을 웃돈다. 샌더스가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사우스웨스트 유권자 등록 교육 프로젝트’의 안토니오 곤살레스는 LA타임스에 “히스패닉 사회에 세대 차이가 극명하다”며 “우리 가족도 딸은 샌더스, 아내는 클린턴 지지로 갈라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관건은 투표율이다. 2012년 대선에서 히스패닉 투표율은 48%에 불과했다. 백인은 64%였다. 젊은 히스패닉은 더 투표를 안 한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2년 히스패닉 밀레니얼 세대의 38%가 투표했다. 위 세대의 55%보다 현저히 낮다. 더구나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호텔·카지노 등에서 생계를 위해 분투하는 네바다의 히스패닉 투표율은 전국 수치보다 더 낮다”고 전했다. CNN은 “과거에도 투표했고, 올해도 꼭 투표하겠다는 유권자 중엔 클린턴 지지자가 많다. 반면 토요일 투표장에 나타날 가능성이 작은 젊은 유권자들은 샌더스를 지지한다”며 투표율이 승부를 가를 것이라 전망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선 아직 클린턴이 우세하다. CNN·ORC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은 샌더스를 18%포인트 앞섰다. 그러나 지난달 NBC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 조사에서 33%포인트였던 격차는 상당히 줄었다.


흑인 표밭에서도 격차 좁혀져판세를 굳히기 위해 클린턴은 흑인 유권자에게 자신만이 오바마의 계승자라고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를 가리켜 “약하고 실망스럽다”고 말한 샌더스가 어떻게 오바마의 업적을 이을 수 있겠느냐고 항변한다. 미 연방의회 흑인 의원 모임인 ‘블랙 코커스’의 공식 지지도 받았다. 샌더스도 지난 10일 뉴욕 할렘에서 흑인 민권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와 조찬을 하는 등 흑인 표심 잡기에 나서고 있다. 이날 샌더스와 샤프턴 목사가 식사한 레스토랑은 2008년 오바마와 샤프턴 목사가 만난 곳이다. 만남 후 샤프턴 목사는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다. 광고에는 2014년 뉴욕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경찰의 목조르기로 숨진 에릭 가너의 딸을 등장시켰다. 지난달 에릭 가너의 어머니가 클린턴 지지를 표명한 데 대한 맞불이다.


클린턴 대세론은 흔들렸고, 샌더스는 ‘마이너리티’ 유권자 사이에서 빠르게 세를 확장 중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표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미 흑인 유권자에서도 연령에 따른 지지율 차이가 확연히 나타난다. 지난달 말 NBC방송 조사에 따르면 25~44세 흑인 65%가 클린턴을, 19%가 샌더스를 지지했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두 후보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그러나 18~24세에선 클린턴(50%)과 샌더스(36%)의 차이가 훨씬 좁혀졌다. 히스패닉만큼은 아니지만 흑인도 젊다. 전체의 35%가 밀레니얼 세대다.


만약 샌더스가 네바다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흑인 유권자를 적극 공략한다면,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비롯한 향후 경선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18일 폭스뉴스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샌더스가 처음으로 전국 지지율을 역전시키자 WP는 “클린턴 진영에 폭탄이 떨어졌다”고 썼다. 여론에 미칠 파급력이 엄청날 것이란 평가다. 민주당 프라이머리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샌더스는 47%의 지지를 얻어 클린턴(44%)을 3%포인트 앞섰다. 트럼프 아니면 크루즈, 난감한 공화당한편 공화당은 20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프라이머리를 치른다. 1위가 대의원 50명을 모두 갖는 ‘승자독식제’가 적용된다. CBS와 NYT가 1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35%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테드 크루즈(18%)가 2위, 마코 루비오(12%)가 3위였다. 반면 NBC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이 17일 내놓은 여론조사에서는 크루즈(28%)가 근소한 차이로 트럼프(26%)를 앞섰다. 루비오(17%)는 3위였다. 극우 강경파인 트럼프와 크루즈 어느 쪽이 승리해도 공화당으로선 난감한 상황이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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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