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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랑 스파링 하는 게 소원 … 남자한테 맞으니 너무 아파

최현미는 트레이닝복으로 갈아 입고 글러브를 끼는 순간부터 표정과 눈빛이 변한다. 그녀는 여자 상대가 없어 남자 선수와만 스파링을 갖는다. 샌드백을 치고 있는 최현미. 김춘식 기자


나는 WBA(세계권투협회) 여자 수퍼페더급 세계챔피언 최현미(26)다. 1962년에 창설된 WBA는 WBC(세계권투평의회·1963년 창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복싱 단체다. 국내에서 WBA나 WBC 세계챔피언은 남녀를 통틀어 나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챔피언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다. 국내 여자복싱의 저변이 워낙 열악하기 때문이다. 여자 복서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름조차 생소한 국제기구의 챔피언들이 자꾸 나타나는 것도 이런 생각을 강고하게 만든다. 난 오히려 ‘탈북민 복서’로 더 유명하다. 열네 살에 한국에 와서 열여덟에 세계챔피언이 됐다. 지금부터 내 얘기를 해보려 한다. 내 복싱 스타일처럼 내 말은 빠르고 간결하다.


 


3월에 광명동굴에서 타이틀 방어전우리 집은 평양에서 알아주는 명문가였다. 할아버지가 중앙당에 계셨고, 아버지와 형제들도 무역업에 종사하며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 난 운동에 소질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아코디언을 시켰다. 그러다 우연히 체육교사에게 발탁돼 복싱 유소년 국가대표가 됐다. 체육판 ‘김정일 기쁨조’였다고 한다. 복싱을 남달리 좋아하는 김정일에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메달을 바쳐 기쁨을 드리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최현미 선수의 스승인 장정구 전 세계챔프(왼쪽)는 지난해 서울 장안동에 장정구복싱클럽을 열었다.최현미 선수는 이 곳에서 훈련하며 장 관장의 지도를 받는다. 김춘식 기자


2003년 겨울, 갑자기 아버지가 “중국으로 여행 가자”며 식구들을 데리고 평양을 떠났다. 그게 탈북이었다. 큰아버지가 숙청 당하자 아버지도 신변의 위협을 느낀 모양이었다.


한국에서도 복싱을 했다. 난 북한 국가대표로 단련된 몸이고, 한국 여자복싱은 취약하기 그지없었다.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장정구 선생님을 만났다. 그 분은 1980년대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타이틀 15차 방어에 성공하고 스스로 타이틀을 반납한 영웅이다. 장 선생님은 나의 잠재력을 간파하셨는지 “니 복싱 했다고? 그래 가자”라며 나를 끌어주셨다. 그리고는 자신과 가장 닮은 권투를 한다는 이종훈 관장님께 데려가셨다. “현미 잘 키아바라. 내가 체육관 열면 데리러 올게” 하셨던 장 선생님은 지난해에야 서울 장안동에 장정구복싱클럽을 열었다. 내가 지금 운동하는 곳이다.


2008년 난 프로로 전향했고, 그 해 WBA 페더급 타이틀을 땄다. 7차방어까지 성공하고 나도 장 선생님처럼 타이틀을 자진 반납했다. 장 선생님은 더 이상 적수가 없어서였지만, 난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기 없는 여자복싱은 스폰서도, TV 중계도 잘 붙지 않았다. 날짜가 잡혔던 방어전이 수시로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그 체급에서 상대할 만한 선수도 더 이상 없었다. 나한테 나가떨어졌던 선수들이 다른 체급의 챔피언이 돼 있었고,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타이틀매치를 하면 9억원 가까이를 버는 선수도 있었다. 난 겨우 몇천만원을 받았는데 그것도 프로모터를 잘못 만나 떼인 적도 있었다.


미국·일본 등에서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안도 해 왔다. 하지만 귀화를 전제로 한 조건이어서 거절했다. 인공기와 태극기를 모두 달아 본 내게 국적은 돈과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2013년 체급을 올려 WBA 수퍼페더급에 도전했다. 8·15 광복절에 인천 월미도 분수공원에서 일본 선수를 꺾고 타이틀을 따냈다. 2차방어까지 성공했고, 3차방어전은 3월 27일(예정) 광명동굴에서 열린다. 양기대 광명시장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아버지는 “북한은 운동선수를 인민영웅으로 극진히 대접하는데, 한국은 국위를 선양해도 아무 반응이 없다. 돈이 없어 경기를 못 치르는 판이니…”라며 섭섭해 하신다. 나도 섭섭한 게 없진 않지만 ‘대한민국 세계챔프’ 최현미로 뛰는 게 자랑스럽다. 다행히 내가 홍보대사로 있는 수출입은행, (주)두드림크리에이티브 등 도움의 손길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난 파퀴아오 아닌 메이웨더 스타일탤런트 복서 이시영? 나하고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좀 어이없다. 그 분은 연예인 치고는 복싱을 정말 열심히 했다. 그 정도 폼이 나오는 것 보면. 하지만 국가대표 수준은 아니다. 그 체급에서 키가 워낙 크고 왼손잡이여서 상대하는 선수들이 힘들어했다. 난 여자 선수와 스파링 해 보는 게 소원이다. 남자 선수하고만 스파링을 해서 남자 주먹을 맞다 보니 너무 아프다.


나보고 “좀 더 저돌적으로 파이팅 있게 게임을 하면 인기가 더 있을 텐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난 파퀴아오(필리핀) 같은 인파이터가 아니다. 메이웨더(미국) 같은 인아웃 복서다. 메이웨더 같은 복싱을 해야 롱런 할 수 있고 얼굴에 상처도 안 난다. 그렇다고 내가 주먹이 약하냐? 그렇지 않다. 아마추어 전적이 17전 17 KO승이다. WBA에서 내 프로 데뷔전을 세계 타이틀매치로 할 수 있게 허락한 것도 아마추어 전적을 인정해서다.


2011년 4월 29일 캐나다의 샌디 차고리스와 WBA 페더급 4차방어전을 치렀다. 상대는 10승 2패 4KO승을 기록한 ‘돌주먹’이었다. 체격이 당당하고 생긴 것도 남자 같았다. 모두들 “현미가 너무 센 상대를 만났다”며 걱정했다. 그 선수가 조인식 때부터 좀 건방을 떨었다. 그래서 ‘얼마나 센지 한번 맞아봐 주마’고 했다. 1,2라운드는 가드만 하고 주먹을 거의 뻗지 않았다. 그랬더니 다들 “현미가 너무 긴장을 해서 주먹이 안 나온다”며 걱정을 했다. 상대는 3라운드에서 끝내겠다는 태세였다. 그런 의지를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쩌나. 마음이 급해지면 폼이 커진다. 잽을 던지다가 상대가 들어오는 순간 라이트 훅을 날렸다. 빡! 제대로 걸렸다. 비틀거리는 상대를 코너로 몰고 가 무차별 난타했다. 스탠딩 다운. 다시 해보겠다는 상대를 이번엔 캔버스에 눕혀 버렸다. 카운트 아웃. 땡땡땡땡 경기 끝.


 


남한 친구들, 나약한 모습 볼 땐 아쉬워난 친구들이 많다. 다들 성격은 좋은데 좀 나약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힘들다, 스트레스 받는다는 말을 달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다. 거슬리거나, 자기 맘에 안 드는 걸 참지 못한다. 다들 너무 귀하게 자라서 그런 것 같다. 두 달에 한 번씩 회사를 옮기는 친구도 봤다. 그 때마다 상사가 어찌어찌 해서 힘들다고 한다. ‘넌 잘못한 거 없냐’고 물어보면 “네가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그래”라고 반박한다. 난 직장은 안 다녀봤지만 고등학교 때 선배들한테 따귀도 맞아 보고 4시간 동안 ‘머리박아’를 당한 적도 있다. 그래도 난 목표가 있었기에 참아냈고, 결국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북한에서는 엄청난 정신적 압박감 속에서 운동을 했다. 사상무장과 경쟁심리가 대단했다. 아이들은 새벽에 동료를 깨우지 않고 몰래몰래 개인운동을 나갔다. 여기서는 선배가 깨워도 안 일어나는 선수를 봤다. 복싱은 너무나 힘든 운동이고, 체중 감량은 정말 괴롭다. 난 페더급 때 한 달 만에 8kg을 뺀 적도 있다. 그러면 체지방이 3%가 나온다. 날 보면서 복싱을 하겠다는 아이들이 있는데 왠만한 각오가 없으면 하지 말라고 말한다. 중간에 그만둘 거면 아예 시작 안 하는 게 낫다고.


 


 

글러브를 벗으면 최현미는 성숙한 여인으로 변신한다. 자신의 카카오톡에 있는 핼러윈 파티 때 사진.


돼지 목살에 소맥 한잔이면 “캬∼”난 여행을 참 좋아한다. 대한민국 방방곡곡 안 다녀 본 데가 없다. 몇 달 동안 준비해 온 경기가 갑자기 취소되면 정말 속이 상한다. 그럴 땐 “아빠, 바람 좀 쐬고 올게요”라며 집을 나선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아무 버스나 제일 먼저 출발하는 걸 탄다. 그리곤 목적지에 내려 정처없이 쏘다닌다.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싶으면 친구들에게 전화를 한다. “우리 좀 놀까?” 그러면 친구들이 득달같이 달려온다. 고기를 굽고 맥주도 홀짝이며 얘기를 나눈다. 소주는 잘 못해 맥주에 타서 마신다. 요리도 자신 있다. 된장찌개·김치찌개를 잘 끓인다. 돼지고기 목살에 소맥 한 잔 하면, 캬∼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도 좋아한다. 2013년 추석에는 한 종편채널 프로그램에 나가 박지윤의 ‘성인식’에 맞춰 섹시 웨이브를 췄다.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목이 쉬어 정작 방송에서는 망신을 당할 뻔 했다.


복싱은 딱 30세까지만 할 생각이다. 은퇴한 뒤에는 성형도 하고 싶다. 얼굴에는 손대지 않겠지만 칼을 대고 싶은 부위가 한 군데 있다.


지난해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를 졸업했고, 지금은 고려대 세종캠퍼스 대학원(사회체육학·지도) 석사과정에 다니고 있다. 난 여자 복서 1세대다. 아직 국내에는 여자 복싱 코치, 국제심판, 해설위원이 없다. 박사과정까지 마친 뒤 이 모든 것을 다 해보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는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다.


매일 두 시간씩 하는 복싱 연습은 정말 재미있다. 제일 하기 싫은 건, 아침마다 천호대교∼워커힐 구간 10km을 뛰는 로드워크다. 그래도 무조건 나간다. 출발만 하면 언젠가 돌아오게 돼 있으니까.


링에 올라 애국가를 들으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눈물 한 방울 흘려주고는 기도를 한다. 이기게 해 달라고는 하지 않는다. ‘제가 준비한 것을 다 보여줄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한다.


남자친구? 지금은 없다. 전에는 아버지 몰래 만나곤 했다. 좋아하는 스타일은? 체격이 좀 있고 남자다운 스타일이다. 김수로 같은. 그러고 보니 김수로님도 5년 전 연극 ‘이기동 체육관’에서 복싱 선수로 출연했다. 아,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다. 난 남자는 안 때린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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