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한결 가까워진 ‘동주’ 발자취 더듬기 한창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우리는 모두 이 시가 누구의 작품인지 알고 있다. 허나 우리는 하늘이 무엇인지 바람과 별은 또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비록 그는 “시는 단어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읽는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정작 우리는 그의 ‘서시’를 외우며 ‘국민시인’이라 떠받들면서도, 인간 윤동주(1917~1945)는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16일 윤동주의 71주기를 맞아 개봉한 영화 ‘동주’는 바로 이 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준익 감독은 “일제 식민지 시대를 반드시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며 “많은 인물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살아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사후에는 시를 남긴 윤동주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고종사촌 송몽규(1917~1945)를 함께 끄집어냈다. 동주가 시를 쓸 때 총을 들고 속으로 삭힐 때 겉으로 울분을 토하던 인물을 통해 선명한 대비 구도를 만든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영화는 “70%가 사실이고 30%는 허구”라고 경고하지만, 철저한 고증에 따라 두 사람의 연대기를 구축한다. 1917년 만주 명동촌에서 태어난 이들은 함께 학교를 다니고 함께 꿈을 꾸며 문학을 논했다. 하지만 몽규가 19세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동안 동주는 묵묵히 글을 썼다. 같이 일본 교토로 건너간 뒤에도 몽규는 제국대에 입학했지만 동주는 떨어져 다시 도쿄 릿쿄대로 가야 했다.


그런 순간들에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라고 ‘자화상’의 한 구절이 내레이션이 되어 흐른다. 그토록 사무쳤던 부끄러움의 감정에 시대적 상황뿐만 아니라 개인사가 겹쳐져 있음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일순간 마음에 와닿을 수밖에.


숨겨왔던 열등감이 드러나면서 위인 윤동주는 범인 동주가 된다. 역사가 찬양하는 먼 인물이 아니라 내 주변에 한 명쯤 있었을 법한 인물로 변모한다는 얘기다. 이는 관객이 한층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문학은 세상을 움직이는 도구가 될 수 있는가? 시는 생각을 펼치기에 적합한 형태인가? 다소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질문들이지만 만약 내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바람이 자꾸 불어올 때 어느 길에 섰을까 하고 스스로 되뇌이게 만드니 말이다.


영화가 선택한 아날로그 장치도 주효했다. 그의 모습은 흑백 영화에서 한층 더 정갈하게 다가온다. 세로형 원고지에 연필로 슥슥 써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나즈막이 읊조리는 시를 듣고 있노라면 제대로 된 시를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다. 마침 이달 출판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소와다리)는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7위에 올랐다. 1955년 정음사에서 출간했던 증보판의 디자인을 활용하고 육필로 쓴 원고가 그대로 담겨있어 한층 읽는 맛을 더한다.


70년 만에 처음으로 영화화되며 주목받고 있는 그의 발자취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이 밖에도 많다. 윤동주의 육촌 동생인 가수 윤형주는 21일 일본에서 처음으로 ‘윤동주 시 낭송대회’를 연다. 26일 서울극장에서 이준익 감독ㆍ김태형 시인이 함께하는 시네마살롱도 마련돼 있다. 다음달 20~27일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서울예술단이 제작한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가 공연 예정이다.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당분간 행복한 시간이 이어질 듯하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