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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호흡으로 생긴 탄산칼슘이 눈·입 갖춘 생물 진화의 ‘어머니’

삼엽충 화석. 5억4100만 년 전 지구 생명체에 생긴 최초의 눈인 삼엽충의 눈은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방해석으로 만들어졌다.


카오스(혼돈)로부터 가이아(대지)가 태어나고 다시 가이아로부터 우라노스(하늘)와 폰토스(바다)가 탄생함으로써 혼돈의 시대가 끝나고, 땅과 하늘과 바다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이 탄생했다. 하지만 태초의 하늘은 자신의 어미인 대지와 분리돼 있지 않았다. 땅과 딱 붙어 있었으며 그 사이에는 어떤 공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라노스는 끊임없이 가이아에게 정기를 흘려 보냈다. 가엾은 가이아는 끊임없이 잉태하고, 고통 속에서 열두 명의 거인족 티탄을 낳았다. 티탄은 태어나기는 했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어머니 가이아의 뱃속에 갇혀 있는 묘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 아버지 우라노스가 가이아를 덮고 있어서 빛의 세계로 빠져나올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1 낫을 든 크로노스. 크로노스가 낫으로 아버지 우라노스의 남근을 베어내자 땅과 하늘 사이에신과 생명이 살 공간이 생겨났다.


그리스의 신화와 풍광을 낳은 ‘백악’우라노스의 욕정은 식을 줄 몰랐다. 그러던 중 키클롭스 삼형제와 헤카톤케이레스 삼형제라는 괴물이 태어나자 마침내 가이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우라노스를 제거하기 위해 자신이 품고 있던 철로 낫을 만들었다. 형들이 겁에 질려 있을 때 티탄 족의 막내 크로노스(시간)가 나섰다. 욕정에 한껏 부푼 우라노스의 기둥이 가이아에게 다가올 때 크로노스는 품고 있던 낫으로 베어 버렸다. 우라노스는 고통에 겨워 세상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더 이상 땅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하늘이 된 것이다.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가 멀어지면서 드디어 신들과 생명들이 활개치고 살 공간이 생겨났다.


우라노스는 쫓겨나면서 크로노스에게 “너도 너의 아들에게 이렇게 쫓겨나게 될 것이다”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불안해진 크로노스는 아내 레아에게서 자식이 태어나는 족족 삼켜버렸다. 마지막 아들 제우스가 태어났을 때 레아는 가이아의 도움을 받아 크레타(Crete)의 한 동굴에 아이를 숨긴다. 이렇게 하여 제우스를 중심으로 엮인 그리스 신화가 시작된다.


 

2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 우라노스의 저주에 겁을 먹은 크로노스는 아들이 태어나는 족족 잡아먹었다.


제우스를 숨겼던 크레타 섬은 지중해에 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집들이 그림 같은 풍경을 그려낸다. 그리스 신전 역시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크레타라는 이름은 백악(白堊, chalk)이란 뜻이다. 플랑크톤인 유공충과 조개껍데기 등이 쌓여서 된 암석으로 가볍고 연한 것이 특징이며 주성분은 칼슘이다. 그런데 이 많은 백악은 다 어디에서 왔을까.


지구 지각을 구성하는 원소 중 양이 가장 많은 것은 산소다. 산소-규소-알루미늄-철-칼슘 순서로 많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칼슘은 지각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원소다. 당연히 38억 년 전 초기 바다에도 엄청나게 많이 녹아 있었다. 최초의 생명은 수많은 칼슘 이온이 떠 있는 바다 속에서 살았다. 당연히 세포 안에도 칼슘 이온이 많았다. 생명은 칼슘을 굳이 제거하려 들지 않았다. 칼슘이 있다고 해서 딱히 좋을 것도 없지만 칼슘을 제거하느라 에너지를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35억 년 전 광합성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들이 등장하고, 25억 년 전부터 바다에 산소의 농도가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하자 생명들은 위기에 빠졌다. 산소가 독으로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진화의 역사에서는 늘 그렇듯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산소 환경에 적응해 산소 호흡을 하는 생명들이 등장하면서 칼슘에 얽힌 이야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산소를 사용하자 세포가 사용하는 생활에너지(ATP)의 생산이 급격하게 늘었다. 산소 없이 호흡하던 생명들은 포도당 분자 하나를 분해해서 ATP 두 개를 생산할 수 있었지만, 산소로 호흡하는 생명들은 포도당 분자 하나를 태워서 ATP 34개를 생산했다. 에너지 효율이 17배나 높아졌다. 에너지 생산성이 높은 생명들은 더 많은 자손을 남기면서 점점 더 늘어났다.


세포나 자동차나 똑같다. 자동차가 기름을 산소로 태워서 추진력을 얻을 때 부산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듯이, 세포도 포도당을 산소로 태워서 생활에너지를 얻을 때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바다에 살고 있는 생명들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바다에 떠다니던 칼슘 이온과 결합했다. 그 결과가 바로 탄산칼슘. 탄산칼슘은 물에 잘 녹지 않고 자기들끼리 엉겨서 바닥에 가라앉는다. 퇴적된 탄산칼슘은 암석을 형성한다. 백악·석회석·대리석의 주성분이 탄산칼슘이다. 석회암 동굴의 종유석과 석순도 탄산칼슘의 침전으로 생성된 것이다.


바다에 녹아 있던 칼슘 이온이 줄고 탄산칼슘 암석이 늘어나는 것은 생명들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세포 안에도 이미 많은 칼슘 이온이 있다는 것이다. 세포가 산소 호흡을 하는 동안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세포 안의 칼슘과 반응해 탄산칼슘이 생겼고 이것들이 서로 엉겼다. 단단한 탄산칼슘 때문에 세포는 뻣뻣해지면서 유연성을 잃었다. 활동성도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세포막을 사이에 두고 외부와 분자 교환이 어려워졌다. 환경과의 소통이 막힌 것이다. 결국 산소 호흡은 에너지 효율은 높였지만 생명의 지속가능성은 떨어뜨린 셈이 됐다. 그렇다면 생명들은 다시 무산소 호흡으로 돌아갔을까.


새로운 환경에는 새로운 생명이 등장한다는 법칙은 어김이 없다. 고에너지 효율의 단맛을 본 생명은 산소호흡을 포기하는 대신 어떻게든 탄산칼슘을 처리할 방법을 찾았다. 생명은 생성된 탄산칼슘을 한곳에 모았다가 적당한 크기가 되면 약간의 에너지를 사용해 세포 밖으로 내다버리는 전략을 세웠다.


해로운 부산물을 몸 밖으로 버리는 것은 꽤 좋은 전략이기는 하지만 최선의 전략은 아니다. 최선의 전략은 부산물마저 자기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다. 25억 년 전 시아노박테리아는 새로운 방식으로 탄산칼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시아노박테리아는 35억 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전세계 바다와 민물에 살고 있는 광합성 미생물이다. 시아노박테리아는 탄산칼슘으로 세포와 세포 사이를 연결하여 군체를 형성했다. 군체는 하루에 한 겹씩 늘어났다. 안쪽에는 죽은 세포들이 쌓이는 동안 바깥쪽에는 새로운 세포들이 태어나서 광합성을 이어갔다. 이것을 스트로마톨라이트라고 한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 가면 소청도에서 채취한 10억 년 전 시생대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볼 수 있고 영월에서 채취한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만져볼 수도 있다. 서호주의 샤크만(灣)에서는 지금도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할 수도 있다.


탄산칼슘을 버리는 대신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한 생명은 그 사용법을 다양화 했다. 일부 유공충은 자신의 몸을 단단한 탄산칼슘으로 감쌌다. 탄산칼슘으로 온몸을 덮은 게 아니라 구멍이 숭숭 뚫린 탄산칼슘 옷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탄산칼슘의 용도는 여기까지였다. 이렇다 할 경쟁도 없고 피식자와 포식자의 관계도 없는, 평화롭지만 지루한 생태계에서 탄산칼슘은 특별한 필요가 없었다.


 

크레타 섬의 동굴. 크레타 섬의 백악 지층에는 천여 개의 해안 동굴이 있다. 레아가 막내 아들 제우스를 동굴에 숨겨 살림으로써 그리스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산화탄소 줄어 지구기온 떨어지기도지금부터 5억4100만 년 전 전혀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빨과 촉각, 발톱과 턱을 가진 동물들이 갑자기 등장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모든 동물문(門)들이 갑자기 딱딱한 껍데기를 갖게 되었다. 각 동물문이 부드러운 몸 형태의 벌레 모양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복잡한 생김새로 바뀌었다. 이 갑작스런 사건의 한복판에 탄산칼슘이 있다.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방해석은 삼엽충의 눈이 되었다. 지구에 드디어 눈이 탄생한 것이다. 또 탄산칼슘은 단단한 입이 되었다. 그전까지는 여과 섭식을 했다. 마치 현재의 수염고래나 고래상어 그리고 조개와 홍학처럼 벌린 입으로 들어오는 플랑크톤이나 부유생물을 여과해서 먹었다. 하지만 눈과 입이 생기자 쫓아가 잡아먹기 시작했다. 포식자들은 헤엄기술을 발달시켰다. 피식자들은 포식자들은 감지할 감각기관과 위장술을 발달시켰으며 단단한 갑옷을 만들어 입었다. 눈과 입 그리고 갑옷의 재료는 바로 탄산칼슘 한 가지였다.


 

도버 해협의 백색 절벽. 길이 16킬로미터 높이 1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백색 절벽은 중생대 백악기 수중 생물의 잔해가 쌓여서 만들어진 암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고생물학과 생물학의 지식은 5억4100만 년 이후의 일이다. 우리가 사라진 생명을 이야기할 때 등장시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크로칸토사우루스, 긴털매머드, 삼엽충과 암모나이트 같은 것들은 기껏 해야 최근 5억4100만 년 이내에 살다가 사라진 것들이다. 탄산칼슘이야말로 지구 생명의 다양성을 일궈낸 핵심요소다. 탄산칼슘이 없었다면 아름다운 지구 생명체는 없었다.


쓸모 없던 탄산칼슘이 생명들로부터 각광을 받게 되자 바다에는 칼슘과 이산화탄소가 점점 줄어들었다. 생명체가 흡수한 탄산칼슘은 다시 이산화탄소와 칼슘의 형태로 바다에 돌아와야 했지만 상당량의 조개껍데기와 산호가 짓눌러서 백악과 석회암이 되고 열과 압력을 받아서 대리석이 됐다. 요즘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악명이 높지만 이산화탄소는 온실효과를 통해 지구의 기온을 지켜주는 귀중한 기체다. 이산화탄소가 탄산칼슘 형태로 생명체 안에 축적되자 대기 속의 이산화탄소가 줄어들고 온실효과가 떨어지면서 지구의 기후는 점차 추워졌다. 이 추위는 화산활동으로 이산화탄소가 다시 배출될 때까지 계속됐다.


영국과 프랑스를 가르고 있는 도버 해협의 영국 쪽 남쪽 입구에는 16㎞에 이르는 백악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백색 절벽이 요새처럼 서있다. 이 백악층은 중생대의 마지막 시대인 백악기(Cretaceous period, 1억4500만 년 전~660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이다. 당시 영국의 남쪽 지역과 지중해의 크레타 섬은 얕은 열대 바다 속에 잠겨 있었다. 백악은 천천히 쌓였고, 이후 융기작용에 의해 수면으로 100m 이상 융기돼 절벽과 섬을 이루었다.


백악기 지층에는 아크로칸토사우루스,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를 비롯한 우리가 잘 아는 공룡들이 살았다. 그리고 아마도 이때 제우스가 크레타 섬의 동굴에서 목숨을 구했을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시대에 다행히 아직 사람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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