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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이한구 충돌 관전법, 그들은 개혁하려 하는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간의 충돌은 한마디로 우리나라 정치가 갖고 있는 근본 문제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우리 국민은 다음의 질문에 대한 진정한 답을 해야 할 때가 왔다. 국회의원의 원초적 의무가 자신을 뽑아 준 지역구민에 대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속한 정당에 대해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시나리오다. 수도권의 A 지역구에 재건축이 절실히 필요한 아파트들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그 지역구의 주민들 간에는 재건축을 자유롭게 해서 삶의 질도 높이고 재산도 늘리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널리 퍼져 있다. 이 지역 출신인 여당의 K의원은 어떻게든 지역구민의 이 열망을 이뤄주고 싶고, 또 그것이 자신의 소신과도 합치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A지역구 옆의 B 지역구 출신 P의원은 K의원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나라 전체로 부동산 투기에 대한 우려가 있고 또 A지역구의 재건축을 억제함으로써 그 자금이 B지역구의 신규 아파트 건설로 유도되기를 원한다. P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해 중앙당이 재건축을 제한하는 법안을 당론으로 성안해서 국회에 발의시켰다.



이 경우 K의원은 어떻게 투표를 해야할까? 당의 의견을 따라 이 법안에 대해 찬성하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지역구민의 열망을 반영하여 반대하는 것이 맞는가? 만일 국회의원의 우선적 의무가 당에 있다면 그 법안에 찬성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 의무가 당이 아니라 지역구민에 있다면 반대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정치 교과서적인 답은 이미 나와 았다. K의원은 그 법안에 반대해야 한다. 법안이 의원 자신의 개인적 소신에 어긋나지 않는 한 무엇보다 지역구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대통령 중심제 하 국회의원의 우선적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국민들이 자신의 뜻을 국정에 반영할 길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국회의원들이 지역구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투표하면 국회는 항상 국민의 뜻이 비례적으로 반영되는, 문자 그대로 진정한 민의의 전당이 된다. 국민의 다수가 찬성하면 그 법안은 통과되고 다수가 반대하면 부결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이 정치의 진정한 주역이 된다. 대통령제의 표본인 미국의 정치가 저렇게 스무스하게, 몇 백 년 동안 몸싸움 한 번 하는 일 없이 굴러가는 이유는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책무를 지역구민의 뜻을 정치에 반영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한마디로 의원과 국민 사이에 정당이 끼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당론’이라는 게 없고 의원들에게 진정한 재량권이 주어져 있어서다. 즉, 정당은 이념의 틀만 제공하고 개별 의안에 대해서는 의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 기구’로서 완전한 재량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정치의 3대 기능 중 선거기능과 충원기능만 정당이 행사하고 개별 ‘정책기능’은 국회의원 개개인에게 완전한 재량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도 의원들 한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구’라고 선언함으로써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는 미국과 달리 왜 이렇게 맨날 싸움판일까? 그 이유는 국민과 국회 사이에 불필요하게 정당이 끼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정당이 ‘당론’이라는 것으로 국회의원들을 꽁꽁 묶어 그들로 하여금 자기 지역구민의 의사가 아니라 당의 보스들의 의사를 따르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돼버렸을까? 그것은 개발 독재시대의 잘못된 유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민도가 낮은 상황에서 경제개발의 염원에 불탔던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근대화 계획을 일사불란하게 지원하는 국회가 필요했다. 그것을 그는 여당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특별한 방법’으로 이루었다. 즉 정치체제는 대통령제로 하면서 정당은 내각제식으로 짬뽕 운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무슨 말인가? 대통령제와 내각제는 정당이 운영되는 방식이 다르다. 내각제에서는 의원들이 하나로 뭉쳐 단일 체제로 움직여야 한다. 그 이유는 국민이 당에게 정권을 맡겼고 당이 전체적으로 국정에 대해 궁극적인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각제에서는 ‘당론’이 있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시된다. 그러나 대통령제는 다르다. 당이 집권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개인’이 집권하는 제도다. 그리고 그 대통령은 임기를 보장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국회, 즉, 국회의원의 가장 큰 임무는 각 법안의 찬반에 대해 지역구민의 뜻을 국회에서 대변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으로 국민에 의한 지배가 가능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제 하에서 정당이 ‘당론’이라는 것을 통해 국회의원의 행동을 제약하면 그것은 당연히 국민의 뜻이 국회에 반영되는 것을 막는 결과를 가져온다.



대통령제를 하면서 정당 운영에서 ‘당론’이라는 제도를 둠으로써 우리 국민은 자신의 뜻을 정치에 반영할 기회를 빼앗겨 버렸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국민은 미국 국민에 비해 너무 불쌍하다. 개발독재시대라면 몰라도 민도가 높아진 오늘날에도 그런 제도를 계속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이 ‘당론을 통한 의원 통제’를 가능케 하는 핵심적 요인이 바로 ‘하향식 공천제’다. 당론을 따르지 않았다가는 다음 선거에서 공천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하향식 공천제는 이렇게 볼 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위배하는 ‘암적 존재’다.



김무성 대표의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주장은 우리 정치의 모든 질곡을 정통으로 겨냥하는 획기적인 개혁이다.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그 개혁안이 지금은 너덜 너덜 걸레같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목적이 진정한 정치 개혁에 있다기 보다 그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있다는 의심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된 바, 정치 신인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획책한 듯 보이는 각종 꼼수들을 보면 도저히 그 개혁 의도의 순수성을 믿기 어렵다. 참으로 비통하고 한탄스런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김 대표와 이 위원장은 기득권과 정파적 이익을 던져버리고 이번 기회를 우리나라에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맞는 정치제도와 문화를 정착시키는 진정한 정치개혁을 이루는 역사적 계기로 만들기 바란다.



 



전성철세계경영연구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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