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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홍석재의 심야덕질] 과격하고 불편해서 자꾸 생각나는 너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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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쇼트` 스틸컷

‘빅쇼트’(1월 21일 개봉, 아담 맥케이 감독)는 전통적인 영화 연출을 공부한 입장에서 보면 ‘또라이’ 같은 영화다. 시작하자마자 라이언 고슬링의 방백으로 제4의 벽(배우와 관객 사이의 가상의 벽)을 부순다. 영화 중간엔 극 전개와 완전히 무관한 홈쇼핑 풍의 설명 장면이 등장한다. 뜬금없이 찔러 넣은 뮤직비디오 클립에, 챕터의 구분점에 삽입되는 실제 현실의 사진은 또 어떤가. 페이스북에서 긁어온 것 같은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해진다. 신기한 건 그 이미지들이 이 영화의 창을 열고 ‘현실’이란 찬 공기를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화적 몰입을 완전히 거스르는 전략이자 연출이다.

영화는 그 자체의 고유한 울타리를 쌓아야 한다. 현실과 구분되는 환상으로써 말이다. ‘빅쇼트’의 제작진은 보통 할리우드 영화처럼 현실의 부조리를 환상으로 봉합하거나, 상영 시간 동안 관객이 팝콘이나 먹길 원하지 않았다. 이들은 영화 자체에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켜, 관객이 당황하고 충격에 휩싸인 채 극장을 나서길 바랬다. 확실히 근래 들어 이토록 잔상이 오래 남는 영화는 없었다.

‘빅쇼트’는 나에게 아주 부드러운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처럼 느껴졌다. 적국의 스파이를 세뇌시키기 위해 CIA가 강행한 마인드 컨트롤 실험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새로운 정보를 각인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바로 ‘쇼크’다. 관객은 영화 초반 15분에 걸쳐 마이클 버리(크리스천 베일)를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관한 최소한의 세팅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흐름을 따라가기가 가장 힘들었다. 마이클은 관객이 따라가기 쉬운 캐릭터가 아니다. 다른 주인공들과 달리, 마이클에겐 상호작용하는 상대가 없다. 그는 고립된 채 숫자와 씨름한다. 영상과 편집은 그의 내면을 듬뿍 맛보라는 듯하다. 맥케이 감독은 ‘빅쇼트’의 레퍼런스로 ‘본’ 시리즈(2002~2012)를 언급했다. ‘빅쇼트’의 촬영감독 배리 애크로이드는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세 번이나 합을 맞춘 경력이 있다. 편집자 행크 코윈은 ‘올리버 스톤의 킬러’(1994, 올리버 스톤 감독) ‘트리 오브 라이프’(2011, 테렌스 맬릭 감독)를 편집한 실력자다. 덕분에 촬영은 사납고 편집점은 불편하다.

하지만 이 부분을 넘기면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을 따라가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우연히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부채담보부증권) 시장에 대해 알게 되는 마크와 그의 동료들은 이 세계에 무지한 관객이 편하게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다. 만약 내가 이 영화를 각색했다면 처음 등장하는 인물은 당연히 마크였을 것이다. 그러나 맥케이 감독은 초반부를 의도적으로 불편하고 과격하게 배치했다. 관객은 초반의 톤 앤 매너(Tone & Manner)를 받아들이면 중반에 그보다 무리한 시도가 끼어들어도 영화적 스타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영화는 여러 가지 쇼크로 관객의 뇌를 ‘지진’ 다음, 대놓고 경제 용어를 설명한다. 세계적인 요리사 안소니 부르댕과 배우 셀레나 고메즈가 각각 요리와 도박 같은 ‘신박한’ 비유로 직관적인 이해를 유도한다. 너무 노골적이라 뇌리에 잘 박힌다. 전형적인 마인드 컨트롤 수법이다. 극 중 금융업계 인물들은 하나같이 멍청하다. 치우치고 과장돼 사실성에 의심이 갈 정도다. 그럴 때마다 제4의 벽을 깨고 라이언 고슬링이 말한다. “실제로도 이랬습니다.”

현실 고발물이거나 풍자 코미디 혹은 재난 호러로 보일 수 있는 이 영화가 내겐 어쩐지 프로파간다물로 여겨졌다. 금융 자본주의에 깊은 불신과 경계를 품게끔 정교하게 고안된 선전물인 셈이다. 영화를 함께 본 일행은 처음엔 너무 아방가르드하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난 그는 이 영화가 계속 떠오른다고 했다. ‘삐라’의 속성이 그렇다.

이러면 마치 ‘빅쇼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읽힐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모든 영화는 프로파간다의 성격을 띈다. 영화 연출은 기본적으로 선전·선동술과 궤를 같이한다.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해서 나쁜 놈을 무찌르고 싶게 만드는 것. 그것이 대다수 이야기의 본질이다. 중요한 건 ‘빅쇼트’가 현실을 호도하고 거짓을 향해 눈 돌리라는 선전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 자본 시스템은 영원히 구를 수 있다는 환상을 우리에게 심어준다. 그것이 점점 불어날 거라는 환상도 함께. 그러다가 우리가 굴러 떨어질 수 있다는 건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이 ‘빅쇼트’가 하는 이야기다.


글=홍석재 영화감독. ‘소셜포비아’(2015) 연출. 타고나길 심심한 인생인지라 덕질로 한풀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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