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매거진M] 실패해도 괜찮아요 진심은 반드시 통하니까요

기사 이미지

사진=라희찬(STUDIO 706)

거대 상업영화들이 점령한 설 연휴 극장가, 어린이 관객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영화가 있었다. ‘번개맨’(2월 11일 개봉, 조근현 감독)이다. 1999년 EBS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에서 출발해, 2012년 뮤지컬로 만들어지며 여전히 어린이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캐릭터 ‘번개맨’이 주인공이다. 걸그룹 에프엑스(f(x))의 메인 보컬이자 뮤지컬 배우인 루나(본명 박선영)는 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가요계·뮤지컬·TV에 이어 스크린으로 돌아온 당찬 스물세 살 배우의 이야기를 들었다.

‘번개맨’의 말괄량이 소녀 한나(루나)의 소원은 한 번만이라도 하늘을 날아보는 것이다. 직접 비행 장치를 만들 정도로 열성이지만 번번이 실패해 번개맨(정현진)에게 구조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나는 계속해서 날기를 꿈꾼다. 잘난마왕(송욱경)은 이런 한나의 꿈을 이용해 번개맨의 능력을 빼앗으려는 음모를 꾸민다. “촬영할 때도 늘 궁금했어요. ‘왜 아이들은 왜 번개맨을 좋아할까?’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번개맨은 아무리 못된 악당이라도 용서해주는, 친한 오빠 같은 수퍼 히어로더라고요. 슈퍼맨이나 배트맨도 악당을 용서하진 않잖아요. 어린이들이 영화를 보고 ‘번개맨처럼 상대를 용서하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돼야지’ 하고 느꼈으면 해요.” 이미지 관리가 생명인 아이돌 가수가 하필 영화 데뷔작을 어린이영화로 택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뜻밖에 어른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왜 성숙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장르가 멜로이기도 하고(웃음). 하지만 제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에프엑스의 컨셉트나 음악 스타일로는 10대 이하의 어린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요. ‘초통령(‘초등학생들의 대통령’을 줄인 말)’이라는 말처럼(웃음) 어린 관객에게 친근한 누나 혹은 언니로 다가가고 싶었죠.”

그가 카메라 앞에 배우로 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TV 드라마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2011~2012, TV조선), 웹 드라마 ‘점핑걸’(2015, DAUM TV팟)을 통해 특유의 명랑하고 쾌활한 매력을 뽐냈다. 하지만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연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처음엔 어린이영화의 캐릭터임을 의식해 일부러 더 귀엽고 과장되게 연기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린 조카들과 얘기해 보니 요즘 아이들은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고 싶어하더라고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고 세련된 취향을 가졌어요.” 예쁜 아이돌 출신 연기자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선영이’를 보여주는 것. 루나가 ‘번개맨’을 촬영하며 세운 목표였다. “한나는 그냥 제 자신이에요. 어딜 가든 싹싹하고 고집 세고 장난기도 많고(웃음). 그런데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불어나더라고요. ‘사람들이 나를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란 생각도 자꾸 들고. 가수든 배우든 늘 평가받는 직업이잖아요. 좀 더 일찍 영화에 출연하고 싶었지만, 평가받는 게 무서워 오래 고민했죠. 그런데 한나를 연기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영화 속에서 한나는 끊임없이 실패하거든요. 심지어 영화 끝까지 하늘을 날지 못하죠. 무언가에 도전했을 때 ‘실패해도 된다’라는 메시지를 어린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어요.”
 
기사 이미지

영화 `번개맨` 스틸컷

루나는 2010년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로 뮤지컬 배우로 데뷔했다. 가수 활동으로 단련된 춤 솜씨와 가창력으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뮤지컬 ‘하이스쿨뮤지컬’(2013)과 ‘인 더 하이츠’(2015)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금발이 너무해’는 제겐 ‘인생의 복권’이었어요. 갑자기 성대 결절이 생기면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을 때 그 작품을 만났죠. 처음엔 쉽게 생각했는데 연기와 안무, 노래를 같이하려니 체력적으로도 무척 도전이 되는 무대였어요. 그 작품이 없었다면 배우 루나는 없었을 거에요.” ‘금발이 너무해’는 루나에게 더 깊이 있는 연기에 대한 갈증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더 이상 이렇게 연기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2012년 중앙대 연기과에 입학해 현재 4학년(휴학 중)이다. 하면 할수록 연기가 재밌다는 그는 “언젠가는 전도연 선배처럼 배우가 느끼는 감정을 똑똑하고 풍부하게 연기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 전 루나는 에프엑스 콘서트를 마쳤다. 2009년 데뷔 후 7년 만에 가진 첫 단독 콘서트다. “토할 정도로 연습했어요. 서른여덟 곡을 두 시간 반에 걸쳐 선보여야 했거든요. 7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주려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죠.” 공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모습은 그와 에프엑스 멤버들에게 가슴 벅찬 보람을 안겼다. “에프엑스라는 이름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죠. 그만큼 팀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이 커요. 멤버들과 항상 마음이 맞진 않지만 7년 동안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이에요. 각자의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 지금은 진심으로 서로 잘 되길 빌어주고 있어요.”

가수로, 또 배우로서 숨 가쁘게 달려온 지금, 이제껏 그를 지탱하게 해준 믿음은 무엇이었을까. 잠시 생각하던 루나가 눈을 빛내며 답한다. “전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믿어요. 10대에 데뷔해 늘 누군가에게 채점당하고 꾸중 들으며 어른의 세계를 일찍 경험했죠. 나는 정말 진심으로 웃고 말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그게 전부 가식으로 오해받아서 상처 입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죠. 바르고 예쁜 마음만 계속 갖고 있다면 언제든 누군가는 알아줄 테니까요. 꼭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요. 내가 이미 ‘진심’을 가진 사람인데. 아직도 전 그렇게 믿어요.” 이렇게 대답하는 중에도 루나는 슬며시 자리를 뜨려는 스태프에게 “안녕히 가세요”라는 살가운 인사를 잊지 않는다. 과연 우리가 익히 알고 듣던 대로의 루나였다. 웃을 때나 말할 때나 춤출 때도 그 안의 ‘진심’이 느껴지는.

글=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