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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처럼 군주로 국가 경영…제갈량 같은 책사로도 활약 “천하 제패 대리만족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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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오른쪽)와 장비.


“어제 두 시간만 자고 출근했더니 오전 내내 멍하네요. 그래도 오늘까지만 달리면(게임을 계속하면) 두 번째 천통(천하통일)이니까요.”

  지난 15일 만난 한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 일하는 김모(38) 과장은 핏발 선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누렇게 뜬 얼굴에선 피로보다 득의만만한 만족감이 읽혔다.

지난달 28일 컴퓨터게임 ‘삼국지 13’이 발매되면서 김 과장은 일과 연애를 후순위로 미뤘다. ‘삼국지 12’ 이후 4년 만에 다시 ‘게임’이 일상 속 최우선순위가 됐다고 한다. 밸런타인데이이자 일요일이었던 전날(14일), 그는 “밀린 회사 일이 있다”며 여자친구를 일찍 보낸 뒤 집으로 돌아와 게임 삼매경에 빠졌다.

 돌아온 ‘삼국지’에 ‘삼폐(삼국지 폐인)’들이 열광하고 있다. 일본 고에이사가 ‘삼국지 1’의 발매 3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이번 게임은 출시 한 달 만에 인터넷 게임 유통시스템 ‘스팀’을 통해 국내에서만 1만 개가 팔렸다.

일본어와 중국어 버전만 나온 데다 다른 인기 게임들의 두 배 가격(9만70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판매량이라는 게 게임계의 평가다. 한글판 출시는 5월로 예정돼 있다.

삼국지 이용자들의 네이버 카페 ‘삼국지 도원결의’(회원 수 35만3000명) 게시판에는 구글번역기와 문의 등을 활용하며 게임을 하는 삼폐들의 ‘눈물겨운’ 노력기가 하루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일본 고에이사가 1985년 처음 내놓은 이 게임은 중국 나관중의 역사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조조·손권·원소 등 주요 군주를 선택해 도시나 국가를 경영하며 천하를 제패하는 과정을 다뤘다.

기존 게임은 주로 전투만 즐기도록 돼 있었지만 고에이의 삼국지는 경제·외교·인사 등 실제 국가를 경영하는 여러 요소를 다룰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일본은 물론 한국·대만 등에서 ‘대박’을 치며 30년에 걸쳐 시리즈가 나온 비결이다.

 국내에선 이 게임이 처음 들어온 90년대 초반 20대 이상 성인 남성들에게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반채홍(45·회사원)씨는 “대학 시절 삼국지로 밤을 새우다 시험을 망친 학생이 적지 않았다. ‘방학이 시작돼 삼국지를 하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게임을 마치니 방학이 끝났더라’는 우스개가 유행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당시만 해도 게임은 청소년층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언론 기사로 다뤄지기도 했다.

 “‘삼국지’ 3, 4편이 대학생과 30대 직장인들에까지 파고들고 있다. 게임을 하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고 삼국지를 탐독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동아일보 96년 2월 28일자)

 삼국지는 신작이 발매될 때마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 이용자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신군주’ 시스템이다. ‘삼국지 3’부터 가상의 군주를 등록시켜 삼국지 속 인물들과 공존·경쟁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면 광개토대왕이라는 군주를 새로 만들어 여포와 하후돈을 부하로 두고 천하를 통일시킬 수 있다. 물론 이용자 자신이 군주가 될 수도 있다. 직장인들의 경우 회사 동료나 상사를 신장수로 등록해 삼국지를 즐기는 경우도 많다.

‘삼국지 7’부터는 장수제가 도입돼 선택의 폭을 넓혔다. 유비·조조 같은 군주가 아니라 장비·제갈량 같은 일반 장수나 책사를 선택해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다. ‘삼국지 8’부터는 등장인물 간 결혼도 가능해졌다.

 20여 년간 지속된 삼국지의 인기 비결에 대해 게임동호회 ‘리케리온’의 김영중(32) 간사는 “삼국지를 새롭게 각색함으로써 얻는 대리만족”이라고 꼽았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를 기반으로 했지만 전혀 다른 스토리로 전개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관우가 여몽에게 사로잡히는 굴욕도 피할 수 있고 실패한 제갈량의 북벌도 성공시킬 수 있다. 유력 인물 대신 소설 속 악인이나 존재감이 미미한 인물을 택해 소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김 간사는 “소설에선 존재감이 약한 인물을 군주로 선택해 천하통일을 이루도록 하는 등 새로운 이야기를 무한정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삼국지 게임의 독보적인 매력”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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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