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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에 여러 신 함께 모셔…중국엔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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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화교들은 매년 춘절(春節)이면 중국식 사당이자 절인 ‘의선당’에서 제사를 지낸다. 지난 8일 화교들이 제단에 향을 올리고 있다. [사진 최모란 기자]


조선시대 고종 재임 19년인 1882년 제물포(현재의 인천) 항구. 임오군란이 발생해 조선 정부가 참전을 요청하자 당시 청나라 장수 이홍장(李鴻章·1823~1901년)이 군부대를 이끌고 한반도에 발을 들여놨다. 청나라 상인 40여 명도 함께 왔다. 상인들은 조선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서 집을 얻어 한국 땅에 정착했다. 이들이 한반도에 들어온 화교(華僑) 1세대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하면서 40여 명이던 중국인 수는 1890년대 1000여 명으로 급증했다. 대부분 산둥(山東)성 출신이었다. 이들이 주로 고향과 가까운 인천에 머물면서 인천은 화교의 중심지이자 한반도 화교의 출발점이 됐다.

13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인천 화교는 어느새 5세대를 맞았다. 그러나 특유의 문화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식 사당이자 절인 의선당(義善堂)과 화교 학교다.

 ◆화교 정신의 중심지인 의선당=“恭喜恭喜(궁시궁시·축하합니다)” “新年快來(신녠콰이러·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설날인 지난 8일 오전 인천시 중구 차이나타운의 의선당. 사당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마다 중국어로 신년 인사를 건넸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을 맞아 제사를 모시기 위해 모인 화교들이다. 향을 피우고, 축문(祝文)을 읽고 술을 바치는 모습은 한국의 차례 순서와 비슷했다.

하지만 제단 앞에는 조상의 위패가 아닌 다섯 신(神)과 신선이 모셔져 있다. 한국의 산신령 격인 호삼태야(狐三太爺), 바닷길을 지켜주는 사해용왕, 극락을 위한 관음보살, 재복을 주는 관운장, 바다를 지키고 가족의 평안을 관장하는 마조신이다. 도교와 불교, 민간 신앙이 한 신단에 모셔진 독특한 형태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의선당은 1893년만 해도 화엄사라는 절이었다. 고향을 떠나온 화교들이 이민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고 가족의 안녕을 빌기 위해 이곳으로 몰렸다. 종교는 서로 달랐지만 형편상 사당을 따로 지을 수 없었다.

이에 화교들이 서로 상의해 화엄사에 여러 신을 모시기로 했다. 의선당을 돌보는 강수생(姜樹生)씨는 “중국·대만이나 다른 나라의 차이나타운에도 의선당처럼 여러 신이 함께 모셔진 사당은 거의 없다”며 “그래서 사찰의 이름도 ‘서로 의롭고 착하게 협력하며 살자’는 뜻에서 화엄사를 의선당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도 독특하다. 중국 산둥성을 대표하는 명절 음식인 대추보보뿐 아니라 월병 등의 과자도 놓였다. 돼지머리와 족발, 닭고기도 올라간다. 과일은 귤·사과·파인애플만 있었다.

유창융(劉昌隆) 인천화교협회 부회장은 “(한국인 제사상에 올리는) 감(枾)의 중국어 발음은 스(shi)이고 배(梨)는 리(li)인데, 각각 ‘죽을 사(死)’와 ‘떠날 리(離)’의 중국어 발음인 쓰(si), 리(li)와 비슷해 중국인 제사상에는 놓지 않는다”며 “반면 파인애플(鳳梨)은 펑리(fengli)라고 발음하는데 첫 발음이 풍년 풍(豊)과 비슷해 풍요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제사상에 올린다”고 설명했다.

 다섯 접시씩 놓는 만두도 채식을 하는 관음보살상 앞에는 배추를 넣은 야채만두만 바친다고 한다.

  진영창(陳永昌) 인천화교협회 회장은 “대부분 가정에서 별도로 제사를 지내는 만큼 의선당에서 치르는 춘절 의식은 한국의 종친 모임과 같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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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화교학교 학생과 지역 주민의 죽마놀이 공연 모습. 1950년대로 추정된다. [사진 화교학교]


 ◆화교 문화의 중심지는 화교 학교=의선당 못지않게 화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 학교다. 초창기엔 남자들만 주로 이주했지만 1890년대 들어 가족 단위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처음 화교들은 자녀를 중국 본토의 학교로 보내거나 집에서 천자문이나 사자경(四字經) 등을 직접 가르쳤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보다 못한 인천화교협회는 협회가 있던 건물의 동쪽 건물을 학교로 사용하도록 기부했다. 이렇게 1902년 4월 인천 화교 학교(최초 학교명은 인천화교소학)가 개교했다.

 7년제 학교로 개교 당시 학교 감독은 인천 주재 영사가, 초대 교장은 부영사가 겸임했다. 이정희(중국학술원) 인천대 교수는 “화교들에게 학교는 자국의 문화와 전통 등을 후대에 계승·보전하기 위한 중요한 기관”이라며 “정부에서 파견 나온 영사가 학교 운영에 관여했다는 것은 그만큼 교육을 중시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국에서 화교 학생들이 몰리면서 화교들은 1923년 직접 모금운동을 벌여 교실 세 칸을 지었다. 주안·용현·부평에는 화교 학교 분교가 들어섰다. 이들 분교는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70~80년대에 모두 문을 닫았다. 57년과 64년엔 중·고교 과정을 신설했다. 이때부터 화교 학교엔 중산학교라는 이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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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교육 내용에 변화가 생겼다. 당초 학생들이 행사가 있을 때마다 추던 사자춤은 50년대만 해도 북방식인 베이징(北京)식 사자춤이었다. 그러나 49년 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화교들이 반강제적으로 중화민국(현 대만) 국적을 취득해야 했고 학교도 이후 대만에서 배워온 남방식 사자춤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중산학교의 국기 게양대에는 중국의 오성홍기가 아닌 대만의 청천백일기가 걸려 있다.

[S BOX] 1960년대엔 토지 소유 금지, 짜장면 값 통제 등 화교 차별 정책

한국 화교는 그동안 외부에 문을 닫고 살아왔다. 1961년 제정된 외국인 부동산 소유 금지법으로 토지 소유가 불가능했다. 짜장면 가격 통제, 중국집의 쌀밥 판매 금지령 등 화교에 불리한 정책들이 시행됐다.

이런 화교 사회가 마음의 문을 연 계기는 화교를 이해하고 연구하려는 사람이 늘면서다. 특히 인천대와 인천문화재단은 이방인이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화교를 바라봤다.

인천대는 2014년 중국학술원(원장 정종욱)을 개원하고 중국과 화교 문화를 함께 연구하고 있다. 중국학술원 회원인 송승석 인천대 교수는 “화교는 가장 가까이에서 중국을 연구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인천문화재단은 아예 화교 사회와 함께 문화사업을 펼쳤다. 최근 발간한 『114년의 기억, 한국 인천화교 중산중·소학 1902~2015』가 대표적이다.

1920년대부터 최근까지 화교 역사 사진 270여 장과 졸업증서 등 각종 자료를 실었다. 화교 학교 교사와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화교 사진모임 ‘선린동 사진 구락부’ 회원 10명이 직접 나서서 자료 수집을 도왔다.

정지은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과장은 “2013년부터 인천화교협회와 손잡고 기록 보존 작업을 진행한 결과”라고 말했다. 한편 선린동 사진 구락부는 오는 23일 인천 차이나타운 에서 출판기념회와 사진 전시회를 연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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