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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을 적신 책 한 권] 아이·남편·부모 앗아간 쓰나미 뒤…‘짐승의 시간’ 견디며 얻은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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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파도
소날리 데라냐갈라 지음
김소연 옮김, 나무의철학
280쪽, 1만3000원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서 진도 9.3의 강진이 발생했다. 곧이어 엄청난 규모의 지진해일이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의 여러 해안들을 덮쳤다. 그 날 쓰나미로 사망한 사람은 약 23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 운명의 날, 런던대학에 경제학을 가르치는 소날리는 스리랑카 남동부의 휴양지 얄랴의 작은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스리랑카 출신으로 남편 스티브, 사랑스러운 두 아들, 부모님과 함께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는 중이었다. 남편은 욕실에서 여유를 즐기고 아이들은 베란다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풀고 있었을 때, 소날리는 파도가 흰 거품을 일으키며 백사장으로 밀어닥치는 모습을 목도한다. 파도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창문을 향해 진격해 온다. 왜 달리는지도 모르는 채 부부는 아이들을 품에 안고 정신없이 도망친다.

 그렇지만 파도가 이겼다. 쓰나미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소날리는 혼자 살아남았다. 아이들과 남편, 부모를 동시에 잃었다는 것은 상상조차 힘든 비극이다. 잔혹하고 처참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고통 안에서 소날리는 ‘나는 왜 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에 골몰한다. 약과 술을 동시에 들이켜고, 매일 인터넷으로 자살하는 법을 찾고, 버터나이프로 허벅지를 찌르는 짐승의 시간들을 보낸다. 가족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을 런던의 집에는 몇 해 동안 돌아가지 못한다.

 오랫동안 소날리를 지배한 감정은 ‘다 끝났다, 이젠 어떻게 하지?’ 뿐이었다. 이 책은 그랬던 그녀가 아주 천천히 변해가는 과정의 기록이다. 사고 후 5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우리가 살던 이 집은 지금도 변함없이 빛나고’, 함께 했던 소소한 기억의 편린들이 존재하는 한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나와 함께 있다는 신비를 깨닫는다. 거실 벽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아이들이 키를 잰 눈금들은 더 늘어나지 않겠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2004년 그 날 이전의 시간들을,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비로소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일인칭으로 담담히 적힌 이 회고록은 그 혹독한 ‘상실감의 증류과정’이다.

 ‘우리가 지금껏 읽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책’이라는 뉴욕타임스의 평에 동의한다. 아마도 그녀의 고통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본인의 표현대로 ‘이쪽의 삶과 저쪽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을 헛디’디며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어떤 순간에도 스스로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은 정말로 존엄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려 주었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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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은

1972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2년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계간지 ‘문학과사회’ 통해 등단. 소설집 『말하자면 좋은 사람』,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 등. 현대문학상·이효석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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