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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시각각]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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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영화감독 홍상수의 작품에는 조미료가 없다. 할리우드나 홍콩 영화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스케일이 크지도 않다. 그저 10여 명의 배우들이 나와 소소한 일상을 소소하게 보여줄 뿐이다. 영화의 뒷맛은 맨송맨송하다.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은 것처럼. 그저 멍하게 영화를 쳐다보게 하는 것이 그만의 매력인 것 같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강원도의 힘’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밤과 낮’ ‘북촌 방향’ 등 다소 특이한 제목의 작품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최근에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Right now, Wrong then)’를 통해 일상에서의 작은 모티브가 결과를 뒤바꿔 놓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 기존의 영화와는 다른 특이한 구성과 형식을 통해 일상의 변주곡을 들려주려 했던 게 그의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영화에선 역경과 고난의 삶을 격정적으로 표현했던 베토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누구의 딸도 아닌 혜원’의 배경음악)

 그가 주장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는 수많은 말과 행동을 통해 ‘지금 그리고 여기(now and here)’의 상황에 맞는 결정과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지금의 판단은 세월이 지나면 맞을 수도 있고, 전혀 엉뚱 방향으로 튈 수도 있다. 홍상수는 인간의 이기심에 초점을 두고 사물에 대한 인식을 최대한 단순화하려 하고 있다. 영화에는 고현정·김민희 같은 유명 배우들이 나와 평소 스크린상의 화려한 모습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그들과는 영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소 덜 떨어진 모습일 때도 있다. 나는 여기서 일상의 중요성을 간간이 발견한다. 홍상수의 영화 기법을 현실에 적용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인지부조화가 떠오른다. 자신의 신념과 실제로 사물을 보는 것이 일치하지 않거나 일관되지 않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각 배역진은 저마다 다른 꿍꿍이 셈을 갖고 상대를 대한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선술집 등에서 연신 소주와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면서 상대의 속을 떠보기도 하고, 자기식으로 해석을 해버리는 것이다. 신념 따로, 생각 따로, 행동 따로인 셈이다.

 올 초 북한이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자 이 정부는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테러방지법 제정을 위해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 관료들의 인식과 야당의 생각은 정반대로 가고 있고, 헷갈린 국민들은 유치한 무협 활극을 보는 심정일 수밖에 없다. 북한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테러 및 납치 대상이 됐다는 우리나라 고위직 인사들의 명단이 나오지만 정작 간첩단 사건을 조작했다는 논란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다. “우리는 맞고, 당신들은 틀렸다”인가.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코앞에 두고 선거구 획정조차 하지 못한 국회를 향해 경제 관련 입법을 함께 요구하는 것은 몽니로도 볼 수 있다. 법이 만들어지면 경제가 저절로 좋아지나. 일의 선후 관계를 자신 위주로 판단할 때 나오는 모순인가.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귀납법의 오류’를 처음으로 주창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 경험론에 의존할 경우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고의 진리인 것 같지만 “까마귀는 검다”라는 명제가 진리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일천한 상식과 재량에 의한 판단보다는 진정성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멕시코 방문 중에 자신을 잡아당겼던 한 시민을 향해 화를 낸 사진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시민 때문에 한 아이가 다칠 뻔하자 교황은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말라(Don’t be selfish)”고 말했다. 2년 뒤면 새 정부가 들어설 것이다. 여야를 떠나 차기 정부는 이 정부에 대해 또 다른 평가를 내릴 것이다. 그러고는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렸다”고 말할지 모를 일이다. 그 평가의 기준은 아마도 “누구를 위한 정치였고, 정책이었냐”일 것이다. 홍상수 영화의 강점은 주인공들의 뜻밖의 모습일 것이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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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