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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쉽게 지금 자리 올랐다"···더민주 간 '증권가 돈키호테' 주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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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증권가를 뜨겁게 달궜던 지난해 6월, 두 회사의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을 제기한 리포트가 나왔다. 그때까지 증권가엔 두 회사의 합병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긍정적인 내용의 보고서뿐이었다.

어마어마한 자금을 굴리는 삼성그룹은 증권사의 주요 고객이기도 했다. 그런데 “합병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보고서가 나온 거다. 보고서를 낸 곳은 한화투자증권. 보고서를 쓴 애널리스트도 대단하지만, 제지하지 않고 그대로 승인한 대표의 배포도 놀라웠다. 그게 바로 주진형(57) 대표다.

그는 이미 업계 ‘유명인’이었다. 증권가에선 찾아볼 수 없는(어려운 게 아니라 없다) 매도 리포트(특정 종목을 팔라고 조언하는 보고서)를 의무화하고, 지점 직원들이 고객에게 한 종목을 계속 사고 팔게 해 수수료를 챙기는 식의 영업을 제한(과당매매 제한) 한 게 그다. ‘돈키호테’란 별명까지 붙어 있었다.

돈키호테가 누군가. 기사(騎士) 이야기에 심취한 나머지 정신 이상을 일으켜 풍차가 거인인 줄 알고 말을 타고 돌진하는 남자. 돈키호테는 ‘증권가 미친 놈’이라는 은유를 담은 별명이었다.

문제의 보고서는 결국 주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 언론사 인터뷰를 고사해오던 그는 그해 9월 다급하게 연락해왔다. “그룹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뜻한 바가 있어 임기를 꼭 채워야겠다”던 주 대표는 몇몇 언론사와 만나 인터뷰를 가졌고 자리를 보전했다.

그렇게까지 임기를 보장받아야겠다던 그가 임기를 한 달 여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했다. 총선정책공약단 부단장으로 말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8일 국회 더민주당 총선정책공약단실에서 그를 직접 만났다.

◇“윗선 요청에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그룹과 갈등한 얘기부터 하자. 당시 그룹 측에선 “사퇴 압력 넣은 적 없다”고 항변하더라.
내 임기가 6개월 넘게 남았는데 차기 사장으로 지목한 사람을 이사회 이사로 선임했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것 아닌가. 그 무렵은 서비스선택제란 제도가 도입될 때였다. 영업 사원이 불이익을 볼 수 있는 제도라 반발이 적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차기 사장이 이사회 ‘낙하산’으로 내려왔다. 어느 직원이 내 말을 듣겠나
당시 만난 직원들은 당신의 리더십을 문제 삼던데.
그룹이 반발을 부추겼고, 나의 리더십을 흔들었다
그렇게까지 그룹과 갈등한 이유는 뭔가. 세간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무산 가능성을 제기한 보고서와 회사 전산 업무를 맡던 협력업체를 그룹 계열사인 한화S&C(※김승연 회장의 아들 3형제가 지분을 100% 보유한 회사)에서 IBM으로 바꾸려고 한 게 발단이 됐을 거라고 알려져 있다.
둘 다 일수도 있고 둘 중 하날 수도 있다.
삼성 관련 보고서 건으로 김연배 당시 한화생명 부회장이 당신을 찾아갔다. 그룹에서 불편해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건가.
그런 류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다시 그런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뭐라고 했나.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한화증권은 6월 첫 보고서를 내고 다음달 초 두번째 보고서를 냈다. 두번째 보고서 역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담고 있었다. 이 보고서는 결국 틀렸다. 두 회사는 그해 7월 17일 성공적으로 합병했다.)
전산 업무를 맡겼던 회사를 한화S&C에서 IBM으로 바꾸려던 것도 결국 하지 않았다.
수의계약하듯 매년 한화S&C에 맡기던 걸 공개입찰로 바꿨고 IBM이 참여했다. 하지만 이후 내가 그룹과 갈등하면서 이 문제가 불거지자 IBM이 먼저 빠지겠다고 했다. 한화 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도 비즈니스를 해야 하고, 다른 대기업과도 거래를 해야 하니 그런 거 아니겠나.

◇“하려던 거 다 했다. 위험 관리 못한 건 내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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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증권 대표 임기가 다음달 18일까진데 벌써 국회로 왔다.
임기를 보장 받으려고 했던 건 하려던 걸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게 다 됐다.
그게 뭔가.
생산성에 연동한 보상제, 연봉제다. 한국의 인사·보상 제도의 기원은 군대다. 직급이 올라가면 임금도 올라가는 구조다. 개인의 생산성을 평가해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구조 또한 투명하지 않았다. 당연히 비효율적이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직원을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먹여살린다.
제도가 살아남은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 가장 근대화된 조직이 군대였다. 해방 이후에도 미군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바로 이런 보상제가 우리 사회 이중화(※그는 양극화란 말대신 이중화란 말을 썼다. 미국처럼 최상위 부유층과 일반인 대부분의 격차가 벌어지는 게 양극화고, 이런 양극화에 더불어 일반인 사이에도 대기업·공기업 등에 속한 근로자와 그렇지 못한 근로자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점에서 이중화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를 심화시켰다.
재벌이 시장을 독과점한 상태에서 노동운동이 거세지면서 이들 기업에 속한 근로자와 그렇지 못한 근로자 간 격차가 커졌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보상이 많아지는 구조는 양육비와 교육비 같이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기업에 부담 지우는 데 용이했다.
지적한 대로라면 사회보장제도가 갖춰진 후에 연봉제를 해야는 거 아닌가.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안 되어 있다고 기업이 손 놓고 있을 수 있나.
사장이 바뀌고 나면 제도가 유지될까. 신임 사장은 당신과 달리 그룹과 각별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나. 그렇게 쉽게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거다. 기업의 생산성을 더 높이는 제도인데, 왜 돌아가겠나.
처음 대표직을 맡았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할 만큼 했다.
지난해 한화증권이 적자를 냈는데도 그렇게 평가하나.
홍콩H지수가 급락하면서 주가연계증권(ELS) 평가손실이 커졌다.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건 내 잘못이다.

◇“멈춘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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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부터 당신이 정치할 거란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이 맞았다.
멈춘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지 않나.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에서 제안을 받은 건 맞다. 그때부터 고민을 했던 것도 맞고. 하지만 그 전엔 정치엔 관심도 없었다.
정치하려고 튀는 행보를 했던 거 아닌가.
나는 선거에 안 맞는 사람이다. 삼성전자에 있을 때 황영기 지금 금융투자협회장 밑에서 일했다.(※1996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04년 삼성증권을 끝으로 삼성을 나왔다.) 그때 가까운 친구들이 이렇게 말했다. ‘너 같은 사람을 부하직원으로 뒀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은 대단하다’라고 말이다. 남의 눈치 보고 비위 맞추느라 할 말 참는 성격이 못된다. 그런 나를 아래 둔 것만으로 훌륭한 상사라는 얘기였다.
왜 정치인가.
현 정권이 무능해서다. 경제성장률이 3%도 안 된다. 3%만 돼도 다행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경제성장률이 낮아졌을까. 소비 침체 때문이다. 그럼 왜 소비가 침체됐을까. 과도한 부동산 대출 때문이다. 빚이 있으니 다들 소비를 안 하는 거다. 이번에 우리 회사 젊은 직원들이 여의도 근처에 살다가 다 외곽으로 이사 갔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주택담보대출 기준을 느슨하게 하면서 너도 나도 대출 받아 집을 사게 했다. 그렇게 집값, 주거비가 오르니 젊은층이 외곽으로 밀려난 거다.
부동산 문제가 이번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긴 하다. 노무현 정부 때도 심각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문제를 풀어야 했다. 하지만 다들 다음 정권으로 미루려 했다. 손 쉽게 대출을 늘려 집값을 띄우는 식으로 경기를 부양했다. 최 전 부총리가 마지막 칼춤을 췄다.
더민주당 말고 다른 야당으로 갈 수도 있지 않나.
정권교체를 해야 하는데 다른 야당으론 어렵지 않겠나.
김종인 비대위 대표를 보고 왔다고 말했는데.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국민연금 제도가 가장 궁금했다.(※그는 1985년부터 10년 간 세계은행에서 일했다.) 너무 중요한 거 같은데 경제학자 중엔 아는 사람이 없더라. 딴에 시간을 들여 혼자 공부했는데 그때 김 대표를 만났다. 그는 다 알고 있더라. 김 대표만큼 한국의 이중화(양극화) 문제를 깊이 고민한 분이 없기도 하다. 얘기를 해보면 안다.
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도 일했다. 만약 그때 도와 달라고 했다면 응했을 거 같나.
그때도 도와 달라고 했었다. 거절했다.

◇“요즘 돈키호테는 똑똑해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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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란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누군가 진실을 말하면 처음엔 조롱하고 다음엔 반대하지만 결국엔 당연한 진실이 된다고 말이다. 돈키호테는 내가 지적하는 문제와 진실을 회피하려는 사람이 그 진실을 보지 않게 하려고 붙인 별명이다.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요즘 돈키호테는 똑똑해졌나 보다.
대기업 사장, 특히 이직이 잦은 증권사에선 그룹과 대립각을 세우기가 어려웠을 텐데.
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하면서 살아왔다. 부러질지언정 휘는 성격이 아니다.

◇“50대는 쉽게 지금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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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이스북에 고속 성장 시기에 쉽게 높은 자리 오른 사람들이 자기보다 뛰어난 후배를 지휘하고 있다고 썼다. 젊은 후배를 발탁하고 이끌어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어서 새로운 세대가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50대를 거의 못 봤다.
우리 세대는 (학생)운동한다고 공부 안 했는데도 좋은 회사 들어갔고 어렵지 않게 높이 올라갔다. 고속성장의 수혜자다. 하지만 저성장에 직면한 지금 젊은 세대는 그렇지 못하다. 취직하기도 어렵다. 우리 세대가 이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 정치판에 들어온 건 젊은 세대를 위해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기도 하다.
50대는 요즘 젊은 세대가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런 생각이 소수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니 아니었다.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소수더라. 하지만 젊은 세대에 미안함을 가진 50대도 있다. 내 주변엔 많다. 미안해서 말하지 못할 뿐이다.
 
 
 
글=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촬영·편집=이진우·공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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