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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삶의 주인 되라"···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 포스텍 명예박사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19일 포스텍(POSTECH·포항공대)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날 오전 경북 포항시 포스텍 체육관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홍 회장에게 명예공학박사(전자전기공학)를 수여했다.

김 총장은 학위수여식에서 “홍 회장은 전자공학과 출신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창업자·학자·언론인·행정가·기업인 등 여러 분야에서 사회 발전에 공헌해왔다”며 “진취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온 모습이 학생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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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19일 포스텍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김 총장은 “이 시대 청년들은 저마다 열정과 꿈을 갖고 있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두려워하고 있다”며 “홍 회장의 도전 정신과 유연한 사고 방식이 포스텍 인재들의 미래 진로에 있어 중요한 가르침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1986년 개교한 포스텍이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 건 이번이 네 번째다. 지금까지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로데릭 매키넌 록펠러대 교수와 김종훈 전 벨연구소 사장, 피터 김 미국 머크연구소 사장 등 3명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대한민국 국적자는 홍 회장이 처음이다.

홍 회장에 대한 명예박사학위 수여는 전자전기공학과 교수 전원의 추천과 대학원위원회 심의 등을 거쳤다. 대학원위원회 위원장인 김병현 대학원장은 “홍 회장의 업적은 학문적 성과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에 공헌하는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겠다는 우리 대학의 건학 이념에 부합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홍 회장은 수락 연설에서 졸업생들에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라”고 조언했다. 홍 회장은 후배 공학도들에게 좌우명인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중국 당나라 임제선사의 설법)’을 소개하며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나 주인 의식을 갖고 대처해 나가면 어떤 어려움도 즐거움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전문가들의 비관적인 예상을 뒤엎고 포스코(포항제철)의 성공을 이끈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태준 명예회장을 사례로 들면서 “인생의 고비마다 고독한 ‘역발상의 리더십’이 필요하고, 그런 지도력이 현실의 벽을 넘어 미래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이어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짧은 길을 오는 데 한평생이 걸렸다’는 김수환 추기경의 말을 인용하며 “나누는 삶을 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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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박사학위를 받은 포스텍 졸업생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김성룡 기자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난 홍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산업공학석사와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세계은행(IBRD)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1994년 중앙일보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세계신문협회장·한국신문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미디어 업계의 발전과 중앙·지역언론 협력 등을 위해 노력해 왔다. 또 주미대사를 지내는 등 국가 간 조정자로서 역량을 펼쳐왔다. 포스텍과는 2001년 대학 법인이사를 맡아 학교 발전에 기여한 인연이 있다.

포항=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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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포스텍 총장, 장옥자 여사(고 박태준 포스텍 설립이사장 부인), 권오준 포스텍 법인 이사장,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왼쪽부터)이 학위수여식을 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고있다. 김성룡 기자

 

◇포스텍 명예공학박사 수락 연설 전문

졸업생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대단히 반갑습니다.

오늘 저는 세계적인 대학 포스텍, 한국 최고의 대학 포스텍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연단에 서니 설레고 흥분이 됩니다. 분에 넘치는 ‘명예공학박사학위’를 받게 돼 영광입니다. 졸업생 여러분들에게 몇 마디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을 준비하면서 지난 몇 주간 보람차지만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새해에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졸업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참으로 고민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머리와 총명함을 갖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는 여러분들 지식의 바다에 떨어지는 몇 방울의 물에 불과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주 오래 전에 여러분처럼 졸업식에 섰던 때를 상상했습니다. 제가 서울대학을 졸업할 때나,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할 때의 식장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조금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 때 어느 분이 연설을 했는지, 연설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부끄럽지만 제가 기억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무슨 말씀을 드리든 여러분들이 제 말을 기억하실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을 돌아보면서, 제 나름의 절실한 경험을 몇 가지 들려드린다면, 여러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저는 언론사의 회장입니다. 인문학을 전공 했냐구요, 아닙니다. 문과 출신이냐 구요, 아닙니다. 저는 공대출신입니다. 여러분과 같은 공학도입니다.

제가 공과대학을 갔던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연유는 저와 저희 가족이 겪었던 아주 어려운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1960년, 4·19 학생혁명이 있었습니다. 선친께서는 당시 법무, 내무장관으로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내각에서 재직하셨습니다. 그 격동 속에서 정부의 모든 장관들, 자유당중진들과 함께 저희 선친께서도 구속이 되었고 3년 반 동안 옥고를 치루셨습니다. 저희 집안에 불어 닥친 정치광풍의 여파는 엄혹했습니다.

그 고통을 겪으신 할머니께서는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네가 무슨 공부를 해도 좋다. 그러나 절대로 법과 대학은 가지 말라. 이 세상에서 가장 의리 없고 인간미 없는 사람들이 검사와 판사들이다.” 그 말씀을 거의 세뇌 수준으로 저에게 반복하셨습니다. 그 시절은 아득한 옛날이지만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응답하라! 나의 학창 시절' 그랬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은 저의 잠재의식에 깊숙하게 박혔습니다. 저도 졸업생 여러분처럼 부모님 덕분에 좋은 머리를 갖고, ‘한 공부’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느 대학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했지만 저는 일치감치 법과대학은 제쳐놓았습니다.

1960년대 중반 김완희 박사라는 선각자가 등장합니다. 컬럼비아 대학 전자공학과 교수였던 그분을 박정희 대통령은 초청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못 먹고 사는데 나라를 일으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요지의 대통령 편지를 받고 김완희 박사는 감동했습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의했고, 대한민국의 전자산업 육성에 온 몸을 바쳤습니다.

1967년 모든 신문에 김완희 박사의 공학도적 애국심, 선구자적 열정과 신념이 크게 보도됐습니다. 그분의 의지와 헌신은 고등학생이던 저의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저는 전자공학을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무렵 한국에 전자공학의 붐이 일어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서강대 전자공학과 1970년 학번이시지요. 그 시절의 공과대학의 선풍, 전자공학과의 인기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때 인재들이 훗날 한국의 반도체 신화를 쓰는 주역이 됩니다. 공학도의 꿈은 넓고 찬란했습니다. 그 시대 공학도는 기술 입국, 부강한 대한민국 만들기에 앞장섰습니다.

자랑스러운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들도 여기 포스텍에서 갈고 닦은 실력과 열정, 비전으로 나라를 바꾸고 새로운 번영의 대한민국을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공과대학을 마친 뒤 경제학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경제학 박사를 하고, 세계은행, 재무부, 청와대, KDI, 기업을 거쳐 언론에 몸담게 되었습니다. 저는 언론의 혁신과 신문의 변화를 위해 전심전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그 삶은 할머니의 바람과 달랐습니다. 할머니는 집안의 장손인 제가 평탄하고, 정치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1999년, 저는 예기치 않게 정치바람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저는 아버지가 겪었던 것과 같은 가시밭길을 걷게 됩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옥고(獄苦)를 치르게 됩니다. 할머니의 염원과 다른 길을 찾았던 운명의 함정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 고통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말과 글로써 다하지 못하는 아픔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 때 제 머릿속에 솔로몬 왕의 혜안이 떠올랐습니다. 솔로몬은 반지에 이런 글귀를 새기라고 했습니다.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 고통의 시기는 지나갔고, 고난은 새로운 삶의 씨앗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틀을 넘어서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해 고민하고 상념에 젖게 하는 세월이었습니다.

그 고난은 저를 세계 언론계의 유명 인사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 신문협회장이 됩니다. 또한 2002년 중앙일보의 중립적 대통령선거 보도가 씨앗이 되어 저는 노무현 정부에서 주미대사로 임명을 받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반전(反轉)의 절묘한 드라마였습니다. 미국 대사직과 함께 차기 UN 사무총장 후보 내정의 약속을 갖고 워싱턴에 부임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업보와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번보다 몇 배 힘든 시련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7개월이라는 짧은 대사 재임을 마치고 유배 아닌 ‘셀프 유배’로 1년여를 지냈습니다. 그 칩거생활은 저를 다시금 유불선과 기독교의 정신세계로 이끌었지요. 자연과 벗 삼는 귀거래사의 멋스러움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언론 본업으로 복귀했습니다. 오피니언 리더들을 위한 중앙Sunday를 창간했고, 젊은 세대들이 가장 좋아하는 JTBC 설립을 주도하게 됩니다. 그 시기에 저는 운명의 힘 같은 것을 절감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마음의 평정심을 찾으려고 서예에 흠뻑 빠졌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9년 유배가 없었다면 추사체가 나올 수 없었습니다. 저 역시 큰 시련이 없었다면 저의 날카로운 성정(性情)을 부드럽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봅니다.

졸업생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새로운 인생 무대로 나갑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삶에도 다양한 드라마가 전개될 것이라는 예고입니다. 성취와 좌절, 기쁨과 비탄, 역전과 반전으로 점철되는 드라마 말입니다. 인생 선배로서 제 삶에서 터득한 몇 가지 교훈과 지혜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자기 내면에 숨겨져 있는 자기만의 삶의 뜻, 즉 천명(天命)을 찾아야 합니다. 천명은 무엇입니까. 무언가 뚜렷이 드러나진 않지만, 이루고 싶은 꿈같은 겁니다. 자신만의 가치와 장점, 자신의 정체성, 자기만의 비전과 목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면의 뜻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공자도 오십이 되어서야 지천명(知天命), 그 뜻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자가 그 뜻을 실천한 것은 그로부터도 18년이 지난 나이 68세 때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기 인생의 뜻(天命)이 저술과 후학을 키우는 교육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5년의 짧은 세월에 공자는 자기의 지혜와 경륜을 담은 저술활동을 합니다. 공자는 73세에 돌아가실 때 ‘하늘이시여, 내게 5년만 더 허락해 주시옵소서’라는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봐도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삶을 찾아 일생을 매진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런 사람은 그 일이 무엇이 되었든 성공을 이룰 확률이 높습니다.

두 번째는 주체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만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말을 소개합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9세기 중국의 당나라 때 임제 선사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서나 주인의식을 갖고 대처해 나가면 어떤 어려움도 즐거움으로 바뀐다.”는 뜻입니다. 자기의 삶에 주인이 되십시오. 수처작주의 정신으로 자기 삶을 스스로 경영하십시오.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주역이 됩니다.

글로벌 경쟁시대입니다. 세상의 변화는 급격하고, 시대의 흐름은 예측하기 힘듭니다. 삶의 무대에는 영광과 환호가 있고, 크고 작은 많은 실패와 난관이 놓여 있습니다. 수처작주는 용기와 열정을 생산합니다. 수처작주의 자세는 장애물을 돌파하고 자신이 세운 뜻을 꿋꿋이 밀고 나가게 해줍니다.

졸업생 여러분, 무슨 일을 도모하든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주인의식으로 평소에 내공을 쌓아 준비한 사람은 세 번의 기회 중 한 번을 낚아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회는 앞에만 머리가 나있고, 뒤는 대머리”라고 합니다. 전광석화 식 개혁을 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즐겨 인용했던 말입니다. 얼른 잡지 않으면, 뒤돌아서면 늦는다는 뜻이죠. 수처작주의 주인 의식은 그 기회를 신속하게 잡게 해줍니다.

수처작주는 개인의 삶에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역사의 긴박한 전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의 통일이 좋은 사례입니다. 잠시 열린 기회의 창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보수와 진보 모든 정권이 20년 이상 일관되게 동방정책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서독의 역대 정권은 역사의 주인의식으로 준비했습니다. 그 결과 동·서독이 한마음이 됐고 국제사회를 내 편으로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에 방한했음에도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는 “남북한 통일이 독일보다 더 빠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독일 통일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기적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대학 포스텍의 훌륭한 전통 속에는 수처작주의 정신이 살아 숨 쉽니다. 박태준 회장을 빼고 포스텍을 생각할 수 없고, 포스코를 뺀 포스텍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포스코 하면 박태준, 박정희 두 분을 빼고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포스코, 포항제철을 건립할 당시 전 세계의 철강 전문가들은 미친 짓이라고 손사래를 내저었습니다. 역사의 주인의식은 도전과 결단, 상상력과 야망을 분출시킵니다. 철강 없이 중공업 입국은 없고, 중공업 없이 경제발전과 국가안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박정희 대통령의 뜻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수처작주의 정신은 낡은 관습과 평범한 상식, 대중영합적인 방식을 거부합니다. 그런 자세가 콘트래리언 리더십(contrarian leadership)입니다. 발상의 전환을 바탕으로 통념에 역행하는 지도력입니다. 그 역발상의 리더십은 고독한 결단을 요구합니다. 그 지도력은 현실의 높은 벽을 넘어 미래를 만들어갑니다. 포스코의 건설은 콘트래리언 리더십의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고비마다 고독한 결단의 콘트래이언 리더십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수처작주의 지혜와 용기로 무장하십시오.

세 번째는 공부하는 자세입니다. 옛 성현들은 세 살 어린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변화와 경쟁의 세상에서 공부 줄을 놓는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졸업생 여러분,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나누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삶을 영위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성공에 갈채를 보내십시오. 그 것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인생입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말년에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짧은 길을 오는 데 한 평생이 걸렸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머릿속의 작은 이기적 계산보다 이웃과 고락을 함께 한다는 큰 마음이 소중합니다. 머리와 가슴이 함께하며 부지런한 발로 실천해 나간다면 여러분의 앞날은 탄탄대로를 걸을 것입니다.

졸업생 여러분, 인생의 희망찬 출발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삶의 주인이 되십시오. 어느 순간 성취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존경하는 김도연 총장님과 교수님들, 자랑스러운 졸업생들, 그리고 학부형과 가족 여러분 저에게 이러한 기회를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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