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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옥새 전쟁

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이정민입니다.



소설에나 나올법한 얘기지.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나겠어?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일이 현실로 나타날 때의 당혹스럼을 경험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20년 가까이 정치권을 취재하면서 몇 번 그런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해내는' 한국 정치인들의 놀라운 재주에 탄복하곤 하는데, 그중 백미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민주당의 옥새(玉璽) 전쟁이 아닐까 싶습니다.(당시 저는 민주당 반장으로 현장을 취재했습니다.)?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과 당 내분사태로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침몰 위기에 처한 민주당에 '추다르크'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했습니다. 추 위원장은 등돌린 민심을 뒤돌리기 위해 조순형 대표가 미는 구주류 중진 4인(박상천·김옥두·유용태·최재승 전 의원)의 비례대표 공천을 백지화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조 대표는 단독으로 비례대표 명단을 선관위에 등록하려 했고, 추 위원장이 이끄는 선대위는 '개혁 공천자'라며 별도로 선정한 비례대표 후보들에게 공천장을 주려던 참이었습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옥새 전쟁이 시작됩니다.?공천자 명단을 제출할 때 당인(黨印·당의 도장) 과 함께 대표자의 직인(職印·대표 도장)을 찍은 추천서를 제출하도록 선거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인데, 추 위원장 편에 섰던 총무국장이 당 대표 직인을 슬쩍 감춰버린 겁니다. 격노한 조 대표는 총무국장을 해임하고 경찰에 직인 도난신고를 냈습니다. 대표 직인 변경신청을 내고 새로 판 도장을 찍어 비례대표 명단을 제출했습니다. 추 위원장도 40명의 '물갈이' 명단을 따로 선관위에 등록했습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진 겁니다. 졸지에 2개의 비례대표 명단이 제출되고, 옥새도 2개가 돼버린거죠. 당혹스러워진 건 선관위입니다. 격론끝에 선관위는 "조순형 대표의 직인변경 신청은 적법하다"며 조 대표의 손을 들어줍니다. 공천권은 추 위원장에게 있지만 공천장을 내는 법적 자격은 당 대표에게 있다는 논리가 압도했기 때문입니다.?아시다시피 결과는 민주당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민주당은 교섭단체 요건에 못 미치는 9명의 당선자를 내는데 그쳤고 옥새 전쟁의 주역인 조 대표와 추 위원장은 갈라섰습니다. 한때 대권 주자 반열에까지 올랐던 추 위원장은 낙선의 고배를 마시며 추락합니다. 옥새가 빚어낸 참극이랄까요. ??'옥새=황제'로 받아들여 옥새를 신성시해온 전통은 중국에서 비롯됐습니다. 중국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승상 이사(李斯)를 시켜 도장을 만든 이래 왕조에서 왕조로 대물림돼 왔습니다. 옥새를 손에 넣는 건 집권의 정통성을 보장해주는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군사 쿠데타로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옥새에 집착했던 것이나, 일제가 친일파를 앞세워 옥새를 손에 넣기 위한 치밀한 궁중 공작을 편 것도 조선 강제합병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죠. 반정(反政)세력일수록 옥새는 꼭 손에 넣고싶은 탐나는 존재로 여겨졌을테니까요.?옥새는 신화입니다. 그것을 가질만한 그릇이 못되는 자가 옥새를 탐하다가는 도리어 화(禍)를 입게 된다는 신화의 원형이 스며있습니다. 옥새가 단순한 도장을 넘어, 신비한 힘을 가진 존재로 인식되는 이유죠. 여기엔 삼국지의 영향도 있어 보입니다.?후한(後漢)말,환관의 난으로 세상이 어지러워지면서 옥새가 홀연히 사라집니니다. 정사를 그르친 무능한 영제(靈帝)마저 죽자 권력은 동탁(?卓)의 손으로 넘어가고 이에 맞서 각지의 군웅들이 궐기합니다. 오나라 사람 손견(孫堅)은 우연히 불타는 낙양(洛陽)의 우물가에서 옥새를 발견합니다. 자신이 한나라의 법통을 이을 적자라고 확신한 손견은 반동탁 연합군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본거지로 돌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이를 저지하는 형주의 유표(劉表)군과 전투가 벌어지고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황제의 꿈'은 아들 손책(孫策)이 이루게됩니다. 손책은 아버지의 친구 원술(袁術)에게 옥새를 맡기고 수천명의 군사를 빌려 훗날 강동의 패자가 됩니다.'신화적' 장치는 이 과정에서도 작동됩니다.'황제의 꿈'에 부푼 원술이 옥새를 돌려달라는 손책의 요구를 거절하고 옥새를 부둥켜안고 있다가 결국 과욕으로 인해 패망의 길을 걷게 됐다는 식의 결론 말입니다. ??4·13 총선을 50여일 앞두고 또 한바탕 '옥새 전쟁'이 일어날 참입니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전략공천을 둘러싸고 난타전을 벌이고 있습니다."대표가 공천룰에 개입해선 안된다"는 이 위원장과 "선거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전략공천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는 김 대표의 갈등은 2004년 민주당의 공천 전쟁을 떠올리게 합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공공연히 "옥새 전쟁 불사"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고요.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사람들이 원내 제1당, 그것도 집권세력의 지도부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죠. 국민은 안중에 없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세력 불리기에만 혈안이 돼있는 친박계-비박계간 권력 다툼에 유권자들의 분노가 극에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이번 주 중앙SUNDAY는 정글의 싸움터를 연상케하는 무법천지,패닉의 선거 현장을 고발합니다.선거구도,경선룰도,공천방식도 확정되지 않았지만 여야 각 당은 이미 공천 신청자를 마감했습니다. 경기규칙도 없고 트랙을 구분할 선조차 그어져있지 않은 커다란 운동장에 마구잡이로 선수들을 몰아넣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라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렇게 해서 뽑힐 '선량'들이 꾸려갈 20대 국회,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관련 기사]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CEO가 말하는 조선산업 부활의 해법 "허우적대는 조선민국(造船民國),서비스업 융합 체질 개선을"



?중앙SUNDAY는 2001년부터 10년간 현대중공업을 이끌었던 민계식 현대학원 이사장의 애정이 담긴 쓴소리를 보도했습니다. 민 이사장은 한때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한국의 조선산업이 위기에 처하게 된 근본적 원인을 기업가 정신 부재 때문이라고 보더군요. 조선업=세계 1위라는 성적표에 우쭐해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안일해졌고, 그 사이 중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게 된 것이라며 업계 내부로 1차적 화살을 돌렸습니다. 또 정부의 역할 실패도 지적했는데 "기업이 잘 못해서 부실해진 건 무너지게 둬야 한다. 좀비기업은 퇴출되는게 건전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다. 억지로 구조조정 기업이라고 낙인 찍지않더라도 알아서 무너진다"고 한 대목은 정책 담당자들이 경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오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내놓은 민 이사장의 해법에 눈길이 갑니다."지금까지 조선업은 제조업이었다. 조선업을 서비스업과 제조업을 융합한 산업으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 선박을 건조하고 인도하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미 판매한 배의 고장 징조를 미리 파악해 배를 수리해주는 서비스를 융합해야 한다"는 거죠.



[관련 기사]역대 선거 데이터로 본 총선 (상) 유권자 성향 분석



?최근 7년간 있었던 각종 선거 데이터를 토대로 '표밭 분석'을 한 새로운 유형의 기사에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각종 선거에서 1위 득표자와 2위 득표자와의 격차,지역구 출마 후보자와 비례대표 후보에 대한 투표(정당 투표) 결과를 분석해 격전지를 분류해낸 기사입니다.1,2위 득표차가 작을수록, 지역구 후보에 대한 투표와 정당 투표 성향이 엇갈릴수록 격전지라고 할 수 있겠죠. 서울·경기 지역을 분석해보니 일반의 상식을 깨는 결과들이 적잖게 나왔습니다. 새누리당이 이른바 '험지'로 분류해서 오세훈·안대희 후보의 출마를 권유했던 종로·마포갑이 알고보니 '당선 불모지에 가까운 험지'가 아니라 '충분히 해볼만한 격전지'로 나왔더군요. 앞선 총선에서 두 지역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된 것만을 보고 '험지'운운했던게 얼마나 피상적 판단에 따른 것인지를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유권자 투표 성향 분석을 통해본 표밭 분석이 선거에 출마하려는 예비후보들은 물론 유권자들에게도 유용한 정보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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