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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재가동돼야…생필품 지급하면 전용 문제 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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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호 전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5일 “북한 근로자 임금의 전용을 막기 위해서는 쌀과 같은 생필품을 지급하면 된다”며 “개성공단은 재가동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사진 전민규 기자]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도 12년간 가동되면서 남북 교류의 마지막 보루로 통했던 개성공단.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때에도 끄떡없던 이 개성공단이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돌연 폐쇄됐다. 평화의 상징이었던 이곳이 돌연 핵무기·미사일 개발을 위한 검은돈의 창구로 낙인찍히면서 천덕꾸러기로 변했다. 역대 정부 모두 뻔히 알면서 천문학적인 자금 유입을 방관해 첨예한 정치 현안으로도 떠올랐다. 하지만 하루 빨리 공단을 재개해 꺼져 가는 대화의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뭐가 문제였고 어떻게 해야 하나. 김정은 정권이 일방적으로 가동 중지를 단행했던 2013년 4월,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켰던 홍양호 전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난 15일 만나 이번 사태의 진단과 해법을 들었다.

[남정호의 직격 인터뷰] 끝까지 현장 지켰던 홍양호 전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위원장

-정부의 갑작스러운 폐쇄를 어떻게 보나.

“정부가 가장 신경을 쓰는 건 국민의 신변 안전이다. 중동에 가지 말라고 해도 우리 국민이 말 안 듣고 갔다 사고가 나도 챙겨야 하는 게 정부다. 그러니 정부로서는 개성공단 관계자들이 가장 많이 귀향했던 구정에 맞춰 단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개성공단이 각종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돌아간 까닭은.

“북측에서는 최고지도자인 김정일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회담해 성사시켰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의미다. 개성공단으로 남쪽의 시장경제가 들어오면 주체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2000년대 들어 어떻게든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경제 특구를 만든 것이다. 외화벌이와 함께 남쪽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작용했을 거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나는 공교롭게도 공단 안에 있었다. 갑자기 김 위원장이 사망하는 바람에 공단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지 모른다고 걱정했었다. 하지만 공단 내 북측 인사들은 ‘김정일 장군님이 만든 것이라 새 젊은 지도자(김정은) 도 계속 운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최고지도자의 작품이라 누구도 함부로 손을 못 대는 것이다. 상당 기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북한 근로자들은 매일 한 번씩 빈소에 참배한 뒤 계속 일을 했었다. 그런 면에서 개성공단은 북측에도 중요하다.”

-개성공단을 통해 우리가 얻는 거라면.

“다양한 분야에서의 남북 교류는 정치적으로도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경제 채널을 통해 남북 접촉을 하면 북한의 적대감을 해소하고 변화를 유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개성공단이라는 경제적 협력체가 생기면 여러 긍정적 효과가 생길 것으로 봤다. 우선 휴전선 인근에 공단을 만들면 긴장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경제적으로도 국내 중소기업들이 가파른 임금 상승으로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나가야 할 상황에서 개성공단이라는 활로가 생긴 셈이다.”

-북한 군부의 불만은 없었을까.

“금강산 관광도 그렇지만 개성공단도 막강한 권력의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군부를 설득해 내놓은 작품이다. 군부로서는 내심 불만도 적지 않았겠지만 최고지도자가 결심한 것이어서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웠을 거다. 군부는 무엇보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빼앗긴 데 대해 불만이 많았을 거다. 금강산 근처 장전항도 원래 군항이었고 내금강에도 포대가 있었다. 그러니 남측 관광객이 오는 터라 포대를 뒤쪽으로 물려야 했다. 개성공단 역시 중간중간에 포대 등 군사시설이 있었다. 이 역시 군사시설을 뒤쪽으로 이동시키거나 숨겨야 했을 것이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홍 위원장은 2013년 4월 북한의 일방적인 공단 폐쇄 이후 다른 인사 6명과 마지막까지 공단에 남아 이들과 함께 ‘최후의 7인’으로 불렸다. 이들은 미수금 지급 등 ‘공단 뒤처리’ 문제를 놓고 북측과 담판을 지어 5개월 뒤 개성공단이 무리 없이 재가동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2013년 공단이 폐쇄됐을 당시 북에서 철수 시간을 얼마나 줬나.

“그해 4월 3일 ‘지금부터 남에서 북으로 사람과 차가 들어올 수 없다. 하지만 남으로는 얼마든지 갈 수 있다’고 했다. 일단 공단에서 나가면 들어올 수 없게 된 거다. 또 화물차가 없어 그 많던 원부자재를 거의 가져올 수 없었다. 전체 물품의 5%만 건진 것으로 추산된다. 철수가 완전히 끝난 한 달 뒤까지 5%만 가져왔으니 4~5시간 만에 철수했던 이번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양만 챙겨 왔을 것이다.”

-폐쇄 기간 동안 시설은 제대로 관리됐었나.

“공단 재개 후 되돌아가서 보니 설비들을 잠그고 붙여놨던 봉인이 그대로였다. 북한 측이 경비를 세워 나름대로 재산상 손실이 없도록 배려한 셈이다. 하지만 폐쇄 기간이 우기여서 많은 장비에 녹이 심하게 슬기도 했다. 녹 제거 후 사용 가능한 건 그대로 썼지만 상태가 나쁜 것은 새 설비로 바꿔야 했다. 이번에도 북측은 일정 기간 봉인 상태로 놔둘 것이다. 하지만 얼마 후 원부자재와 설비들을 하나 둘 빼내 자신들이 쓸 가능성이 크다. 과거 경수로 사업 중단 때에도 공사에 사용됐던 몇 억원씩 하는 중장비들이 오랫동안 벌판에 방치됐다 하나 둘씩 없어지는 게 관측됐었다. 이번에도 때가 되면 북측에서 잔류 시설들을 자신들이 이용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길 거다.”

-손실을 입은 기업들엔 어떻게 보상해야 하나.

“2013년에도 입주 기업들이 손실 신고를 했었다. 그 당시 신고액은 1조원 이상이었다. 자체 투자비 5000억원에 두고 온 원부자재와 기일을 못 맞춰 생기는 클레임 부담 등을 합친 액수다. 하지만 정부 측에서 구체적인 증빙자료를 요구해 결국 보상 규모는 7000억원 정도가 됐다. 이번에는 그때보다 설비 투자가 더 이뤄진 데다 물품을 거의 못 빼왔으니 클레임까지 생각하면 그 신청 액수는 훨씬 더 될 거다. 특히 기업들은 ‘이제 완전히 망했다’고 한탄한다. 기업으로서는 객관적인 자산 가치 외에도 영업력이 중요한데 이번 일로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 치명적인 피해를 보았다는 게 기업 측 주장이다. 정부에서는 세금 면제, 보험금 및 경영안정자금 지급 등을 통해 신속하고 충분히 보상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법규와 기준을 따져 받는 게 실질적 손해에 훨씬 못 미친다고 생각할 게 뻔하다. 정부의 결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그 피해가 너무 크니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5개월 만에 공단 문을 다시 연 2013년과는 달리 이번에는 재가동이 어려울 거라는 분석이 있다.

“기업이란 언제든지 입주했다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업 안정성이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지난번에 당하고 이번에도 이런 일이 생겨 관두겠다는 기업이 속출할 수 있다. 또 원청업체가 주문을 안 주면 개성공단에 돌아갈 수 없지 않나. 공단을 재가동한다 해도 다시 영업을 하겠다는 기업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얼마 만에 여느냐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한두 주 내에 돌아가 제품을 만들면 클레임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재개가 힘들어질 것이다. 일부 기업들은 핵실험 직후부터 이미 물품 주문을 못 받았다고 들었다. 원청기업들이 ‘남북관계가 악화돼 물품 주문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신용 관계가 끊어지면 기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공단은 만들기는 어렵지만 깨기는 쉬운 것이다.”

-개성공단 자금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전용될 것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지 않았나.

“개성공단을 처음 시작할 때는 워낙 인건비가 싸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1인당 월급이 50달러였으니 묵인할 수 있던 수준이었다. 그러니 공단 초기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남북 경제협력을 하면 북한도 변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2000년대에는 북한을 도우면 핵무기 개발에 대한 생각이 바뀔 거라는 낙관론이 깔려 있던 셈이다. 게다가 나중엔 5만 명을 넘었지만 처음 출발할 때는 15개 기업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가 1만 명이 채 안 됐다. 큰돈도 안 되고 해서 이렇게 해야 북한이 변화해 정상국가가 될 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 기대를 저버리고 빳빳한 달러 신권으로 준 5억6000만 달러를 이용해 핵무기를 개발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민생에 집중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올 들어 핵실험에 미사일 발사까지 해 공단이 폐쇄된 것이다.”

-개성공단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

“개성공단의 장점도 분명히 있지만 문제점도 있다. 무엇보다 정치·군사적 안보위기에 취약하고 다음으로는 북한 땅에 위치해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간 3통(通), 즉 통행·통신·통관과 관련된 문제가 존재해 경제 흐름에 방해가 됐다. 자유롭게 오가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휴대전화·인터넷도 안 되고 통관 시 선별 검사를 해야 하는데도 전수 조사를 해왔다. 우리가 계속 문제 제기를 해도 북측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해주겠다’고 말만 할 뿐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노무 관리도 마찬가지로 기업 측에서 직원들을 직접 관리해야 하는데 여전히 북한 관리인들이 대신 맡아 한다. 이번에 그간의 고질적 문제가 터진 셈이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장점도 분명히 있어 개성공단의 국제화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공단의 제3국 내 설치 등도 고려해볼 만한 대안이다.”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 합작 시설은 북한 노동자가 쉽게 오갈 수 있게 휴전선 부근에 둬야 하지 않나.

“앞으로 새로운 남북 합작시설을 만들려면 중립지대나 중국 동북 3성 등에 설립하거나 그도 안 되면 외국 기업들도 참여하는 국제적 공단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국처럼 만만히 볼 수 없는 나라의 기업들이 참여하면 북한도 멋대로 굴 수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남북 양쪽만이 있는 바람에 이번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런 제안을 한 적은 없나.

“2013년 재가동 때 내세웠던 요구사항 중 하나가 개성공단의 국제화였다. 북측에서는 ‘해보려면 해봐라’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북한이 필요한 건 공단 재가동이었다. 결국 북한은 나중엔 ‘우리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돌아섰다. 북측과 일하다 보면 일단 기업을 유치한 뒤 제대로 챙기지 않아 피해가 생기는 일이 적잖다. 과거 조총련 기업이 그랬고 요즘은 중국 기업들이 당한다고 한다.”

-공단 재가동이 바람직하다고 보나.

“긍정적 효과가 적지 않으니 재가동되는 게 좋다는 게 내 의견이다. 다만 북한이 두 번 다시 안보위기를 조성하지 않아야 한다.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완전히 닫을 수밖에 없다. 원청업자 입장에서는 북한 정세가 불안하면 주문을 안 하게 되고 결국 공단 입주 기업들은 고사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개성공단이 잘 돌아가려면 북한이 안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본질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달러 현금을 주면 자금 전용 문제가 계속되는 것 아닌가.

“나진·선봉에 진출한 중국 기업 중에는 임금을 돈이 아닌 쌀을 주는 회사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만 되면 자금 전용 문제는 사라질 거다. 꼭 쌀이 아니라도 북한이 필요한 생필품을 줄 수 있다. 때로는 북한 스스로 돈 대신 자신들이 필요한 물자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양쪽이 어떻게 협상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글=남정호 논설위원
사진=전민규 기자


홍양호는…

경북고와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1977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총무처·해운항만청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하지만 83년 당시 국토통일원으로 옮긴 후에는 2010년 통일원 차관으로 나올 때까지 27년간 통일 문제를 다뤄온 남북 문제 전문가다. 통일부에서는 경수로기획단 정책조정부 부장, 기획관리실장 등 두루 요직을 거쳤다. 이 같은 전문성이 인정돼 2011년부터 3년간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미국 조지아대에서 석사, 단국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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